돈돈돈 돈키호테 ♬

여름날, 크리스마스 ep.10

by 씨이

"아빠, 이제 우리 어디 가요?"

"우리 이번에는 '돈키호테'라는 곳에 갈 거야"

"거기 가면 제 장난감도 있어요?"

"그럼, 장난감은 물론이고 맛있는 간식도 엄청나게 많지"


어제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 보낸 열띤 하루를 블로그에 기록하느라 밤잠을 설쳤다. 쏟아지는 피곤함에 눈꺼풀이 무거웠지만, 다시 시작될 여행에 눈을 반짝이는 아이들을 보니 차마 힘든 내색을 할 수 없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오사카 근교인 나라나 교토의 고즈넉한 풍경을 눈에 담으러 떠나야 했지만, 오늘은 과감히 일정을 변경했다. 무리한 이동보다는 가벼운 쇼핑과 휴식으로 숨을 고르기로 한 것이다. 아이들은 사슴 공원에 가지 못한다는 소리에 잠시 시무룩해졌지만, 이내 나중에 더 큰 동물원에 갈 거라는 내 말에 금세 다시 들떠 올랐다.


우리는 오사카의 상징인 글리코상 근처의 돈키호테로 향했다. 숙소에서 제법 거리가 있어 아이들이 힘들 법도 했지만, 다행히 씩씩하게 발걸음을 맞춰주었다. 드디어 도착한 6층 규모의 거대한 매장. 압도적인 화려함에 놀란 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빨리 구경하자며 내 손을 잡아끌었다.


아내 덕구는 화장품과 향수를 천천히 살펴보고 싶다며 1층에 남았고,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위층으로 향했다. 아들은 눈을 부라리며 갖고 싶은 장난감을 찾아 구석구석을 뒤지기 시작했고, 예전에 먹어본 곤약젤리를 발견한 딸아이는 보물을 찾은 듯 눈을 휘둥그레 뜨며 양손 가득 젤리 봉지를 챙겨 들었다. 나 역시 덕구가 좋아하는 말차 맛 과자들을 바구니에 담으며 여유로운 쇼핑을 즐겼다.


하지만 아이들의 집중력은 그리 길지 않았다. 화려한 조명과 반복되는 로고송도 슬슬 지루해질 무렵, 딸아이가 내 바지춤을 붙잡고 늘어졌다.


"아빠아... 언제 다 봐요? 다리 아파요. 나 무서운 이야기 해주면 안 돼요?"


느닷없는 요청에 나는 쇼핑 카트를 멈추고 아이를 안아 올렸다. 장난감 코너를 서성이던 아들도 '무서운 이야기'라는 말에 자석이라도 이끌린 듯 다가와 내 곁에 찰싹 붙었다. 나는 분위기를 잡기 위해 목소리를 낮게 깔고 눈을 가늘게 떴다.


"음, 그럼 일본에 전해 내려오는 '빨간마스크' 이야기를 해줄까?"

"입이 찢어졌다고요? 왜요?"


아이들이 숨을 죽였다.


"옛날에 빨간마스크를 쓴 예쁜 여자가 길 가는 아이들에게 물어본대. '나 예쁘니?'라고. 그때 '예뻐요'라고 대답하면 여자가 마스크를 슥 벗으면서 귀밑까지 쫙 찢어진 입을 보여주며 묻는 거지. '이래도 예쁘니?'라고. 그때는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쳐야 해!"


"으아악! 아빠, 저기 마스크 쓴 사람 있어요!" 딸아이는 내 품속으로 고개를 파고들었고, 아들은 겁먹은 표정으로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무서운 이야기 한 자락에 지루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덕구가 쇼핑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아이들은 마치 아빠가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보호막이라도 되는 양 내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우리는 편의점에 들러 소박하지만 확실한 저녁거리를 샀다. 오늘 메뉴는 아이들이 그토록 기다렸던 두툼한 돈까스 샌드위치(가츠산도)였다.


호텔 방 침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에어컨 바람을 쐬며 시원한 맥주 한 잔과 샌드위치를 베어 물었다. 바삭한 튀김옷과 짭짤한 소스가 입안 가득 퍼지자, 지쳤던 몸에 다시금 활기가 도는 기분이었다.


"아빠, 우리 내일은 진짜 비행기 타고 베이징 가는 거죠?"


아들이 입가에 소스를 묻힌 채 물었다.


"그럼. 내일부터는 이제 새로운 나라, 중국이야. 거기 가면 만리장성이라는 엄청나게 긴 성벽도 볼 거야."

"우와! 만리장성은 너무 길어서 우주에서도 보인대요!"

"아빠, 베이징 가면 판다 곰도 만날 수 있어요?"


딸아이도 무서운 이야기는 잊었는지 다음 여행지에 대한 기대감으로 재잘거렸다.


오사카에서의 마지막 밤, 창밖의 화려한 네온사인을 뒤로하고 우리는 다음 목적지인 베이징의 웅장한 풍경을 상상하며 짐을 정리했다. 비록 몸은 노곤했지만, 아이들의 설렘 가득한 숨소리가 내일의 여정 또한 즐거울 것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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