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는 유명한 길고양이어서 많은 분들이 알고 있다. 사랑이는 아주 까칠해서 웬만해서는 다가오지 않는다.
그래도 사랑이가 아주 살갑게 다가가는 분들이 있다. 나는 그런 분들을 네 명이나 목격했다. 그분들이 “사랑아!”하고 부르면 사랑이는 곧바로 다가간다. 하지만 내가 부르면 콧방귀도 안 뀐다.
그러던 사랑이가 내 바로 눈앞에서 벚나무 위로 가볍게 뛰어오르더니 내쪽을 바라본다.
때는 벚꽃이 막 지고 해가 지기 직전의 저녁 무렵이었다.
이날은 시작부터 사랑이와 인연이 있었다.
목련과 벚꽃이 지고 철쭉과 황매화가 피어오른 봄날 오후, 집에서 할 일을 마치고 급하게 산책로로 들어서는데 사랑이가 들길을 걸어가고 있다. 나는 사랑아 하고 부르며 다가간다. 사랑이는 언제나처럼 나를 본체도 안 하고 흙더미로 가더니 소변을 누고, 온갖 정성을 다해 소변 눈 곳을 흙으로 덮는다. 사랑이랑 친한 여성분이 강아지를 산책시키며 사랑이를 부른다. 예전 같으면 사랑이는 내쪽은 아랑곳도 않고 곧바로 가버린다. 그런데 뭔가 머뭇거린다. 내쪽을 바라본다. 그래서 나도 사랑아, 사랑아 하고 불러본다.
평소 나를 거들떠 보지도 않던 사랑이가 나를 뒤돌아보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나는 강아지와 여성분과 사랑이 뒤를 졸졸 따라간다.
그들이 아파트 단지 내로 들어가도 내 눈길은 연신 사랑이 뒷모습을 쫓는다. 사랑이도 연달아 뒤돌아본다. 이런 날도 오는구나, 하는 기쁨에 나는 해 질 녘까지 산책로를 씩씩하게 돌아다녔다.
그렇게 한 시간 넘게 산책을 하며 벚나무 아래에 서있는데 사랑이가 보인다. 나는 물론 하나의 망설임 없이 “사랑아!”하고 부른다. 나는 이제 사랑이와 사랑이를 닮은 고양이도 알아보는 눈이 생겨서 사랑이라는 걸 안다.
사랑이가 가볍게 벚나무 위로 올라가 나를 바라본다. 마치 “사진 찍고 싶으면 찍어, 이런 기횐 다신 없을 거야.”라는 듯이 포즈를 취하고 나를 빤히 쳐다본다. 나는 사랑이가 시키는 대로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그러자 사랑이가 나뭇잎에 고개를 수그린다. 마치 레오 리오니의 그림책 《프레드릭》에 나오는 작은 철학자 생쥐 같다. 그래서 또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사랑이는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알아서 내게 한참을 이런저런 포즈를 취해주었다. 그래서 나 또한 열심히 찍는다. 이 중에 사랑이가 나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는 사진을 카톡 프사에 올린다. 그러자 글동무 중에 꽃과 새와 나무 사진을 기가 막히게 잘 찍는 지인이 알아보고 “나이스 샷”이라고 문자를 준다.
한참을 벚나무 위에 앉아 사색에 잠겨있던 사랑이는 검정고양이 엄마와 아기 고양이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쏜살같이 땅으로 내려와 그들 쪽으로 간다.
사랑이 덕분에 인생 사진을 남기고 며칠이 지나 이번에는 벽돌 담장 위에 관록 있는 멧비둘기 한 마리가 앉아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날아갈 생각을 않는다. 무슨 고심에 찬 표정이기도 하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나는 “사진 찍을 게.”라고 말하고 사진을 찍는다. 멧비둘기도 “그래 찍고 싶으면 찍어라.”라는 듯 꼼짝을 안 한다.
그래서 찍었다. 바로 눈앞에서. 멧비둘기 눈이 지긋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뭔가 사색을 방해하는 것 같아 미안하면서도 엄숙한 기분마저 든다.
사랑이도 멧비둘기도 전혀 호락호락 하지 않은 존재들이다. 그 존재들이 바로 내 눈앞에서 포즈를 취해주었다. 이 마주침이, 이 평소와 다른 일상 속 찰나의 순간이 적막한 나의 하루에 빛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