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미 웅거러의 『제랄다와 거인』은 일본에서 그림책 읽어주기 클럽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림책 읽어주기 클럽에서는 학교 아동문학과에 재학 중이거나 졸업한 스테프들이 매주 한 번씩 모여 유치원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거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그림책 바구니에서 읽고 싶은 그림책을 골라와 1대 1로 읽어주는 시간과, 스무 명 안팎의 유치원 아이들 모두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시간이 있었는데, 한 스테프가 아이들에게 『제랄다와 거인』을 읽어주었을 때의 몰입도는 놀라웠다. 거의 모든 아이들의 눈동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 그림책을 응시하고 있었다. 어찌나 조용한지 한동안 앞에서 읽어주는 대학생 스테프의 목소리만 잔잔하게 울릴 정도였다.
한두 명이 아닌, 스무 명 이상 되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줄 때는 무슨 책을 선택할 것인가가 큰 관건이 된다. 자칫 하면 고전하기 십상이다.
『제랄다와 거인』은 워낙 그림책 판형이 크고, 멀리서도 잘 보이는 뚜렷한 선과 색상의 그림책이라는 점이 우선 주효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이야기 자체의 재미, 아이들을 잡아먹는 식인 거인과 기똥차게 요리를 잘하는 제랄다가 거인을 무서워하기는커녕, 엄청난 요리 솜씨로 거인을 단숨에 사로잡는 등, 제랄드의 담대함과 특급 요리에 매료되기 때문일 것이다.
“신데렐라 식 칠면조 구이”
“‘거인의 기쁨’이라고 하는 설탕물에 졸인 과일과 숟가락 모양의 비스킷, 아이스크림 케이크”
등 요리 하나하나에 개성 있는 이름이 붙은, 제랄다가 만든 요리가 가득 차려진 장면은 특히 이 그림책의 백미로 꼽을 수 있다.
몇 년 전 도서관에서 열 명 안팎의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에게 『제랄다와 거인』을 읽어줄 기회를 가졌는데 몰입도가 역시 남달랐다. 내심 흐뭇해하며 그림책을 읽어주고 독후 활동으로 각자 그리고 싶은 요리를 상상해 그림을 그리고 이름을 지어보라고 권유했는데 얼마나 몰두해 그림을 잘 그리고 음식 이름을 고안하는지 경탄했다.
『제랄다와 거인』에서 아이들을 잡아먹는 식인 거인은 어쩌면 프로이트가 말하는 구강기에 머문 폭압적인 남성성을 상징하는지도 모른다. 지나친 거인의 식탐은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고 어른들은 아이들을 지킬 수 없게 되자 아무도 모르는 지하 비밀 장소에 꽁꽁 숨겨버린다.
엄청난 먹성에 성격이 불같고 투덜대는 거인은 거대하고 근육질의 탄탄한 몸에 비해 내면은 빈약한데 그런 심리상태의 모습은 거인을 둘러싼 주변에 그려진 굶주린 쥐, 흰 나비, 왜소한 꽃 한 송이, 바퀴벌레, 작은 새 이미지를 통해서도 유추할 수 있다.
이에 비해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깊은 숲 속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몸집은 작지만 대범하고 담대한 제랄다는 여섯 살 때부터 거의 모든 조리법을 스스로 익히고, 아픈 아버지를 대신해 마차를 몰고 시장으로 거래를 나갈 정도다. 몸은 작지만 심리적인 면이 매우 탄탄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제랄다의 주변에 그려진 존재들은 적절한 보살핌을 받은 온갖 가축들과 고양이, 당나귀, 커다란 새 등 큼직큼직한 존재들이다.
하지만 제랄다 또한 균형을 상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여성성의 과잉이 나타난다. 제랄다의 여성성의 과잉은 제랄다가 만들어준 음식을 과식하고 탈이 난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알 수 있다. 아버지는 더 이상 제랄다가 요리한 많은 양의 음식을 소화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른다.
『제랄다와 거인』은 외관상 듬직한 모습이지만 내면에 유아적인 남성성을 지닌 거인과 그와 반해 외관상 작고 어린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내면에 강한 여성성을 소유한 제랄다의 만남을 이야기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따라서 어쩌면 이 둘의 만남은 서로의 균형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거인은 내면의 허기, 즉 내면의 영양부족에 시달리고 있고, 제랄다는 내면의 과잉, 즉 내면의 영양과잉 상태이다. 한쪽은 너무 부족하고 한쪽은 너무 많은 상태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부족한 상태인 거인은 만족을 얻지 못한 상태에 처해있고, 과잉된 상태인 제랄다는 충분히 분출을 못하고 있는 상태에 처해있다.
이윽고 제랄다는 병이 난 아버지를 대신하기 위해 아버지의 뜰을 벗어나 밖으로 나온다.
그런 둘의 우발적인 마주침이 일어나는데 절벽 바위틈에 잠복해 있던 거인은 “너무나도 굶주린 나머지 허둥대다가, 그만 바위에서 미끄러져 길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이때 “발목이 삐고, 코피를 흘리며, 정신을 잃고 ”만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덕분에 거인은 제랄다가 요리한 새로운 맛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된다.
절벽에서 떨어질 때 거인은 칼을 놓친다. 『제랄다와 거인』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의 하나는 거인이 손에 쥔 술잔과 칼일 것이다. 거대한 술잔과 칼은 표지 이미지에서부터 두드러진다. 하지만 절벽에서 떨어진 이후 거인의 손에는 칼 대신 사탕이 들린다. 이로써 거인의 구강기적인 특성은 변화된 형태로 남되 외부로 표출된 폭압적인 남성성은 제어되었음을 알 수 있다.
거인이 진정한 변화를 보이는 것은 세월이 흘러 아름다운 여성으로 자란 제랄다와의 결혼을 통해서이다.
거인과 제랄다가 가족을 이루어 사는 마지막 장면은 제랄다가 만든 여러 창작 요리 장면과 더불어 그림책에서 백미로 꼽을 수 있는데, 이 장면에서 빨간 두건을 벗고, 수염을 깎은 거인은 내면의 허약함을 극복한 남성으로, 예전의 식인 거인과는 판이한 외면과 내면 모두 균형을 이룬 남성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즉 과도한 남성성은 제어되고 유아적인 허약한 내면은 충족된 모습이다. 제랄다 또한 더 이상 작고 어린 소녀의 외면이 아닌 안정감과 성숙한 여성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제랄다의 강력한 모성성은 거인만이 아닌 네 명의 아이들, 사냥견, 둘레에 피어오른 장미꽃에까지 두루두루 분출되며 조화를 이룬다.
『제랄다와 거인』은 거인과 제랄다라고 하는 과잉된 남성성과 여성성의 조화와 균형을 음식과 결혼이라는 형태를 통해 말해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