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랑 살아갈 것인가?

전미화, 『달 밝은 밤』(창비, 2020)

by 강이랑

<그림책 한번 읽어볼까?>

전미화의 『달 밝은 밤』


전미화의 『달 밝은 밤』에서 주인공 소년은 부모가 아닌 “달과 함께 살아갈 것이다.”라고 선언한다.


소년의 아버지는 알코올 의존증이다. 아버지는 허우적대고, 소년이 부축한다. 이 장면에서 소년은 아버지 뒤에 서 있는 것이 아닌 앞에 서 있다. 마치 아버지를 뒤따르는 것이 아닌, 자신은 자신의 앞길을 나아갈 것이라는 걸 말해주는 듯이. 그럼에도 소년은 한 손으로는 갈곳 잃은 아버지의 손을 마주하고, 한 손으로는 아버지의 허리를 받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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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어머니는 밤늦게 들어와 지쳐 잠이 든다. 소년은 마치 어머니 등에 업힌 자세로 잠들어 있다. 어머니와 소년은 잠을 자면서도 한 손은 서로 부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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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달과 함께 살아갈 것이라고 선언하는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그림책은 산산조각 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아버지는 밥 대신 술을 먹으며 집에만 있고, 어머니는 집을 나가 먼 곳으로 일하러 떠났다.


소년은 “곧 데리러 오겠다는 엄마도 술을 끊겠다는 아빠도 더 이상 믿지 않는다”며 가족사진을 북북 찢어버린다. 그리고 소년은 달과 함께 살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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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엄마가 한숨을 내쉴 때마다 달을 보고, 부모가 싸울 때도 달을 본다. 그림책의 제목이기도 한 『달 밝은 밤』의 환한 보름달도 소년을 본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소년을 보지 않는데, 오직 달만이 소년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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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아버지는 여전히 술을 달고 살고, 집 떠난 어머니는 돌아올 생각을 않는 달 밝은 밤, 소년은 손을 내밀어 달을 의지한다. 소년 곁에 달이 있어서 다행이다. 소년이 달을 발견하고 달을 봐서 정말 다행이다.


『달 밝은 밤』에서 소년은 “나는 나를 믿을 것이다.”라고 선언한다. 엄청난 선언이다.


내 인생을 돌이켜 보면 내게도 달 같은 존재가 있었다. 한때는 책 속 인물들이, 한때는 노래가, 한때는 영화가 나를 지켜주었다. 또 한때는 산에 의지하고, 햇살에 의지하고, 야생 동물들을 찾고 바라보았다. 그리고 친구를 의지했다.

이들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무너졌으리라.


하지만 이렇게 무너질 것 같은 순간은 시시때때로 찾아온다.

지금 또 나는 누구랑 살아갈 것인가?


나도 『달 밝은 밤』의 소년처럼 “나는 나를 믿을 것이다.”라고 선언하고 싶다. 나도 “달과 함께 살아갈 것이다.”라고 선언하고 싶다.


가끔 누군가가 내게 “종교 있으세요?”하고 물으면, 나는 애니미즘이라고 답한다. 나 또한 『달 밝은 밤』의 소년처럼 자연계에 존재하는 그 모든 것에 생명이 있고 그들이 내 옆에 함께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도서관에서 전미화의 『달 밝은 밤』을 처음 보았을 때 소년이 “달과 함께 살아갈 것이다.”라고 선언하는 장면에서 “우아 대단하다!”라고 감탄했었다. 그런데 오늘 나는 소년의 “나는 나를 믿을 것이다.”란 말에 감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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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우주의 기운을 받은 이 소년이라면 잘 나아갈 것이라는 믿음을 준다.

이 소년이라면 휘청거리는 아버지의 손을 잡아 뚜벅뚜벅 걷게 할 것이고, 엎드린 엄마의 손을 잡아 일으킬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산산조각 난 가족사진은 과감히 버리고, 이 소년이라면 새 가족사진을 다시 손에 쥘 것이라는 믿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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