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들고 맨발로 돌아온 아이

모리스 센닥 그림, 빌헬름 그림 글, 랄프 만하임 엮음, 『사랑하는 밀리

by 강이랑

<그림책 한번 읽어볼까?>

모리스 센닥 그림, 빌헬름 그림 글, 랄프 만하임 엮음, 『사랑하는 밀리』(김경미 옮김, 비룡소, 2006)


『사랑하는 밀리』는 빌헬름 그림의 글에 모리스 센닥이 그림을 그리고, 번역가인 랄프 만하임이 엮었다.


모리스 센닥은 일본에서 다닌 대학교 그림책 수업에서 처음 알았다. 주인공의 내면 상황과 이미지가 어떻게 유기적으로 맞물리고, 아이들이 현실 세계와 판타지 세계를 얼마나 자유자재로 오고 가는지 모리스 센닥의 그림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 『깊은 밤 부엌에서』, 『잃어버린 동생을 찾아서』를 특히 좋아했다.


그래서일까? 모리스 센닥의 그림책만 보면 가슴이 두근두근 요동친다.


『사랑하는 밀리』를 볼 때마다 한없이 아름다우면서도 슬픔이 밀려온다.

아마도 아이를 잃고 그 아이를 기다리는 엄마에게 투사되어서 그럴 것이다. 그림책 엄마에게 직접 투사가 되었다기보다는 우리 엄마의 심정이 그림책 엄마에게 투영되어 그런 것 같다. 우리 엄마는 젊었을 때 어린 아들을 잃었고, 그 큰 상실감이 엄마의 내면을 지배하곤 한다. 그럴 때 엄마는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다. 비집고 들어갈 틈이 하나도 없다. 엄마가 오롯이 슬픔 속에 있는 것을 그저 가만히 지켜볼 도리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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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화마가 불어닥치는 상황에서 자신의 딸을 지키지 못한 아이 엄마의 심정은 오죽할까? 하늘을 불 구름이 새카맣게 뒤덮고 엄청난 대포 소리가 울리자 엄마는 “오, 하느님 맙소사! 무슨 일이 벌어진 게 틀림없어! 아가, 널 살리려면 어떡해야 하지?”하며 두려움에 떤다. 엄마는 오직 아이를 살리고자 하는 심정에 “주일에 먹다 남은 빵 한 조각을 넣어주며”, “나쁜 사람들이 쫓아오지 못하게 숲 속으로 아이”를 보낸다.


엄마는 아이에게 사흘 후에 다시 집으로 돌아오라고 이르지만, 아이는 서른 해가 되어 집으로 되돌아온다.

할머니는 아이에게 입을 맞추고 꼭 끌어안았어. 그러고는 아이가 숲 속에서 성 요셉과 보낸 지 서른 해가 되었다는 말을 했지. 아이에게는 사흘밖에 안 된 것 같았는데 말이야. 전쟁 중에 겪은 온갖 무서움과 공포가 다 사라지고 엄마는 살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맞았단다.(『사랑하는 밀리』)


모리스 센닥의 『사랑하는 밀리』에는 두 개의 집이 나온다. 하나는 아이와 엄마가 사는 집, 또 하나는 전쟁을 피해 찾아간 숲에서 발견한 성 요셉의 집이다.


아이는 얇은 신을 신고 엄마가 있는 집에서 나와 숲으로 들어간다. “아이가 걸을 때마다 뾰족한 돌멩이들이 발을 아프게 찔”렀는데, 그다음 장면부터는 맨발이다. 그리고 다음 장면에서 아이의 발은 성큼 커져있다. 무서운 세상 한복판을 홀로 걸어냈기 때문일까? 아이는 그렇게 고난을 거쳐 평평한 땅에 이른다.

“이제는 가시도 뾰족한 돌멩이도 없었지. 부드러운 이끼와 풀이 상처 난 발을 달래 주었어.”(『사랑하는 밀리』)


이윽고 아이는 성 요셉이 기거하는 집을 발견한다. 성 요셉의 집은 어쩐지 엄마의 집과 비슷하다. 두 집 다 아주 작은 집이지만 한 번도 집안 내부가 드러나지 않았던 엄마의 집과 달리 성 요셉의 집은 집안 내부를 보여준다.


성 요셉의 집에는 깨끗한 물과 나무뿌리뿐 다른 먹을 것이 없다. 아이는 엄마가 준 빵 조각을 더해 음식을 만들어 성 요셉에게 자기 것보다 더 많이 담아 내준다. 그러자 초라하고 볼품없던 성 요셉의 집은 해바라기 꽃이 지붕을 뒤덮고 나리꽃, 모란, 장미 등 화사한 꽃과 잎사귀가 피어오른다.


게을러지지 않도록 성요셉이 아이를 일하러 내보내는 장면에서 아이의 발은 한 발만 그려져 있다.

우리 옛이야기 <반쪽이>처럼, 아이는 한 발로 서있다. 여기서 아이의 한 발은 무얼 의미하는 것일까? 엄마와 함께 하지 못하는 상황을 의미하는 것일까?


먹을 것을 찾아 들판을 헤매고 있을 때 아이는 “사랑스러운 금발 머리에 예쁜 빨간 원피스를 입고”, “생김새는 가여운 여자 아이와 꼭 닮았”고, “눈이 더 크고 더 빛나서 훨씬 예뻐”보이는 또다른 여자 아이를 만난다. 아이를 똑 닮은 갑자기 나타난 이 아이가 엄마의 어린 영혼 같기만 하다. 드레스 모양과 색깔도 엄마가 입은 드레스와 똑같고, 실제로 엄마 눈도 크다.


사흘 째가 되던 날, 깊은 고민에 빠져 있던 성 요셉은 “장미꽃이 활짝 피면 우린 다시 만나게 될 거란다.”라는 말과 함께 아이에게 장미꽃 한 송이를 건네주며 엄마에게 가도록 이른다.


마침내 밀리는 빵 대신에 성 요셉이 준 장미꽃 한 송이를 들고 맨발로 엄마의 집으로 돌아온다. 엄마네 집 화단은 꽃 한 송이 없이 텅 비어있다. 30년의 세월이 소요되지만 아이가 꽃을 들고 오는 장면은 간절하게 딸이 살아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던 엄마에게는 엄청난 축복이다.

저녁 내내 두 사람은 즐겁게 마주 앉아 있었어. 그런 다음 기쁜 마음으로 조용히 잠자리에 들었지. 다음 날 아침 이웃들은 죽어 있는 두 사람을 발견했어. 행복하게 잠이 든 엄마와 아이 사이에는 성 요셉의 장미가 활짝 피어 있었단다.(『사랑하는 밀리』)

달과 해도 함께 그려진 이 장면에서 엄마네 집 안마당에는 한 나무에 포도와 귤*이 주렁주렁 열려있다. 잎사귀도 풍성하다. 귤과 포도는 아이와 엄마를 상징하는 것일까? 엄마와 아이가 다시 하나인 둘이 된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이는 사흘만에 엄마를 찾지만 엄마는 딸을 찾는데 30년이 걸린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 의문에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성경에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태복음 16장 25절)”라는 말씀이 있는데, 애초에 떨어져서는 안 될 두 사람이 떨어져서 발생한 비극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고 해도 끝끝내 엄마의 빵을 성 요셉의 장미꽃으로 변환하여 집으로 돌아온 아이, 그 험난함과 그 위대함에 숙연해진다.


*귤로 보았지만, 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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