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리, 『노를 든 신부』(이야기꽃, 2019)
<그림책 한번 읽어볼까?>
오소리 작가의 그림책 『노를 든 신부』 첫 장을 펼치면 한 소녀가 나무 한 그루만이 덩그러니 심어져 있는 액자 옆에 실내화를 신고 잠옷 차림으로 의자에 앉아있다. 외딴섬에 사는 소녀의 친구들은 모두 신부와 신랑이 되어 섬을 떠나고 없다. 다음 장면에서도 소녀는 여전히 잠옷 차림이다. 그리고 소녀는 자신도 신부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고 의자에서 일어나 모험에 나선다.
마치 원 없이 의자에 앉아있었다는 듯이 이후 소녀는 두 번 다시 의자에 앉지 않는다. 그림책 속 소녀는 줄곧 걷거나 달리거나 움직인다.
오소리의 『노를 든 신부』에서 주인공 소녀는 모험에 떠나기 전에 부모에게 하얀 드레스와 갈색의 기다란 노를 받는다. 이후 소녀는 잠옷은 벗어던지고 줄곧 드레스를 입고 노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드레스는 어머니가 물려준 웨딩드레스일까? 그렇다면 소녀는 자신의 결심과 어머니의 바람대로 결혼을 하게 될까?
소녀는 집을 나와 드레스를 입고 노를 들고 웅장하게 들판을 가로질러 간다. 그리고 바닷가에 도착한다. 바닷가에는 조각배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신랑 신부들이 타고 있다. 다른 신부들은 모두 노를 두 개씩 들고 있다. 두 개의 노를 든 흰 드레스 차림의 신부들은 조각배 한쪽 끝에 앉아 노를 젓고, 검은색 옷차림의 신랑은 맞은편 끝에 앉아있다.
조각배 한 척 한 척이 저마다의 가정을 의미하는 것만 같다. 노는 신부들이 쥐고 있다. 가족을 이루어 바다라고 하는 인생의 큰 무대를 향해 항해를 떠날 때, 방향의 키를 쥐고 있는 것은 아내라는 것을 상징하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우리들의 주인공 소녀는 조각배에 탄 다른 신부들과는 달리 노를 딱 한 개만 갖고 있다.
노는 아버지가 물려준 것일까? 노는 바다에서 배를 저을 때 쓰는 도구다. 조각배는 노를 저어야만 나아간다. 노를 하나밖에 갖고 있지 않은 소녀는 아버지의 바람대로 배를 타 노를 저을 수 있을까?
소녀는 물려받은 드레스와 노에 담긴 부모의 바람대로 신부가 되어 신랑을 만나 가정을 이루어 진두지휘하며 살아갈까?
오소리의 『노를 든 신부』는 많은 의문을 던지게 만드는 그림책이다.
소녀는 첫 번째 모험인 조각배를 타기 위해 시도하지만, 노를 하나만 갖고 있던 소녀는 배를 탈 수가 없다. 섬을 돌며 자신을 태워줄 배를 찾아 헤매지만 결국 찾지 못한다. 조각배를 타지 못하면 노를 저을 수도 없고, 소녀는 바다로 나아갈 수도 없다.
그러자 소녀는 바다를 뒤로하고 산으로 진로를 바꾼다. 소녀는 신부가 되기로 한 결심을 이루기 위해 두 번째 모험에 나선다. 소녀는 산 중턱에서 엄청나게 기다란 분홍색 배에 올라탄 수많은 신부들 무리를 만나게 된다. 분홍빛 배에 탄 신부들 중에는 아예 노를 갖고 있지 않은 신부도 많다. 소녀처럼 노를 하나만 든 신부도 있다. 배의 주인은 소녀에게 “내 배에 타시지요. 절대 외롭지 않을 거요.”라고 권한다.
하지만 우리들의 주인공 소녀는 스스로의 의지로 이 배에 타지 않는다.
그리고 세 번째 모험을 향해 길을 떠난다. 소녀는 산꼭대기에 이르고 그곳에서 엄청나게 호화로운 배를 보게 된다. 소녀는 이 배 또한 등진다.
신부가 되기 위해 세 번에 걸친 시도와 시행착오를 거치고 나서 소녀는 아버지가 물려준 노를 사용해 늪에 빠진 남성을 구한 뒤, 노를 사용하는 또 다른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소녀는 새로 발견한 노 사용법을 통해 적극적으로 삶의 현장으로 뛰어들고 엄청난 성공을 쟁취한다. 이때 어머니의 드레스를 입은 소녀는 마치 아메리칸 풋볼이나 아이스하키 선수 옷차림을 연상시키며 강인하다.
이제 어머니가 물려준 드레스는 신부의 옷이 아닌 다른 용도로 소녀의 정체성을 드러내 주고, 아버지가 물려준 노는 바다로 나아가는 배가 아닌 하늘을 나는 비행기로 이끌며 웅대한 소녀의 새로운 모험 길을 열어준다.
부모가 물려준 드레스와 노는 어쩌면 부모가 소녀에게 물려준 자산이자 사회적 욕망이 투영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여기서 문뜩 부모에게 방앗간과 당나귀와 고양이를 물려받은 『장화 신은 고양이』의 세 형제가 떠오른다. 고양이를 물려받은 셋째 아들은 고양이의 지략으로 대성공을 거둔다. 아버지의 세상에서 고양이는 쥐로부터 방앗간의 곡물을 지키는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셋째 아들에게로 간 고양이는 아버지의 세상과는 다른 세상을 펼쳐 보여준다.
오소리의 『노를 든 신부』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자산을 자기만의 새로운 사용법으로 변환하여 자신의 삶을 개척해가는 소녀의 웅대한 이야기로 읽힌다.
나는 부모에게 어떤 상징적인 자산을 물려받았으며, 나는 그 자산을 어떻게 내 안의 힘으로 가져와 활용하고 있는가? 오소리의 『노를 든 신부』를 보면서 생각에 잠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