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티 크라우더, 『아니의 호수』(김영미 옮김, 논장, 2019)
<그림책 한번 읽어볼까?>
키티 크라우더의 『아니의 호수』는 엄마를 잃고 홀로 남은 주인공 ‘아니’가 우울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찾는 이야기이다. 아니의 집은 깊은 산골짜기 언덕 위에 있고, 앞으로는 호수가 내려다 보인다. 호수에는 수상쩍은 세 개의 섬이 있다.
“일 년에 한 번 오는 우편배달부까지 모든 다 지겨”운 아니는 “자다가 한밤중에 벌떡 일어나 도대체 왜 이럴까”하는 생각에 빠지기도 하지만 까닭을 알 수가 없다.
아니는 읽던 책을 방바닥에 내팽개치고 무심코 앉아 세 개의 섬이 떠 있는 호수를 바라본다. 이때 방안의 벽지는 수중 식물들로 도배되고, 방바닥은 물결이 일렁이듯 한다. 위아래, 앞뒤 사방이 온통 물, 물이다.
그렇다고 아니가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이 아니다. 아니는 물고기를 잘 잡는다. 생업을 할 때의 아니는 방 안에서 침울해 있던 모습과는 딴판이다. 노란 장화를 신고 빨간 머리를 휘날리며 그물을 치러 나서는 아니는 매우 다부지고 믿음직스럽다. 게다가 엄마가 일러준 대로 겨울에 저장하여 먹을 물고기도 능숙하게 말린다.
하지만 아니의 기분은 종잡을 수가 없다.
자다가 심장이 떨리고 숨이 막혀 더 이상 잠들 수 없게 된 아니는 무거운 돌을 발에 묶고 호수 속으로 몸을 던진다. 그 후의 이야기는 스포일러가 되는 중요한 장면이기도 해서 여기에 쓸 수는 없지만 아니의 내면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아니의 옷차림에도 변화가 일어난다.
이후의 삶은 아니가 엄마를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서사로 바뀐다.
우리 동네에서 자주 마주치는 모녀가 있다. 이분들과 난 정말 자주 마주친다. 산길에서도 잘 가는 들길에서도 수시로 마주친다. 그들은 나란 존재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오로지 내가 그들을 바라봤을 것이다.
매번 볼 때마다 노년의 엄마와 중년의 딸은 엄마가 앞서고 그 뒤를 딸이 따르며 다른 곳엔 눈길 한번 안 주고 아주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두 사람은 똑같은 지팡이를 짚고 마치 순례자처럼 아무 말 없이 한 줄로 걸어간다.
그런데 오늘은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큰 길가에서 그들을 보았다. 들길에서 마주쳤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주 빠른 걸음걸이로 엄마가 앞서고 딸이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엄마가 걸음을 빨리하면 딸도 걸음을 빨리하고, 엄마가 걸음을 늦추면 딸도 걸음을 늦추고, 엄마가 갑자기 방향을 바꾸면 딸도 금세 방향을 바꾸며 뒤쫓는다.
키티 크라우더의 『아니의 호수』를 읽는데 묘하게 그들 모녀의 모습이 내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니는 엄마를 잃고 커다란 상실감에 빠져 헤어 나오질 못한다. 나는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고, 집도 모르는 그들 모녀가 어디를 그렇게 바삐 나갔다가 저녁 무렵 똑같은 시간에 다시 돌아오는지 알 길이 없지만 왠지 아니와 아니 엄마 같기만 하다.
그런 나를 향해 “네 걱정이나 해라.”란 마음의 소리가 들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보다 더 순례자 모녀가 걱정이 된다. 그들이 하나의 끈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탯줄로 이어진 듯 보였기 때문이다.
홀로 남은 아니의 엄마를 향한 그리움, 외로움, 쓸쓸함, 허전함, 상실감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단 말인가. 어쩌면 세상을 잃은 기분이었을지도 모른다. 분석심리학자 융은 『원형과 무의식』에서 “여성은 직접, 대지인 어머니와 동일시될 수 있다.(p231)”라고 말한다. 엄청난 애착 관계로 이어진 아니에게 엄마를 잃은 상실은 땅이 갈라지고 무너지는 아픔이었으리라.
융은 또 “어머니는 아이들의 최초의 세계이면서 어른의 최후의 세계(p217)”라고 말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라는 세계’를 잃은 아니는 생명의 위기에 처하고, 위기에 처한 또 다른 존재와의 만남을 통해 그 누군가의 구원자가 되며, 결국엔 자신만의 고유한 세계를 찾아낸다. 이때 결정적인 작용을 한 것은 생전에 엄마가 아니에게 말한 ‘엄마의 말’이다.
엄마는 아니를 향해 극과 극의 두 가지 말을 한다. 아니가 지닌 외모의 특징을 꼬집어 “이리 와 봐라. 네 코에 외투 좀 걸게!”라는 고약한 말과 “네 눈은 세 개의 섬이 있는 호수처럼 깊고 아름답구나.”라며 애정을 듬뿍 담아서 하는 말이다. 아니는 이 중 후자인 “네 눈은 세 개의 섬이 있는 호수처럼 깊고 아름답구나.”란 말을 내면으로 가져온다. 그리고 이 말이 아니를 위험에 빠뜨리고 아니를 살린다.
때로 엄마의 크나큰 사랑은 딸을 위기로 내몰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것을 『아니의 호수』에서 재확인하게 되는데, 아니는 자신의 인생에서 큰 통과의례에 직면하여 “작은 자기 배에 올라 노를 저어 세 섬으로 다가가” 운명적인 만남을 이끌어내고, 어머니의 사랑을 끝내 또 다른 큰 사랑으로 풀어낸다.
엄마를 잃고 세상을 잃은 듯 우울해 있던 아니가 생명 에너지를 되찾으며 활약을 펼치는 중반 이후의 장면은 꼭 한번 그림책으로 확인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