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구원투수처럼 등장하다

김승연, 『여우모자』(로그프레스, 2009)

by 강이랑

<그림책 한번 읽어볼까?>

김승연의 『여우모자』


김승연의 『여우모자』는 아기 여우와 소녀에 대한 이야기이다.

혼자 있는 걸 가장 좋아하는 소녀가 있었다. 추운 겨울 산책에 나선 소녀는 혼자 있고 싶어서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숲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거기서 뜻밖의 존재를 만나고 뜻밖의 부탁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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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가 숲 속에서 만난 뜻밖의 존재란, 엄마 여우와 아기 여우다. 여우 엄마는 소녀에게 말한다. “난 먹을 것을 구하러 먼 길을 떠나야 해. 내가 돌아올 때까지 우리 아기 여우를 좀 돌봐줄래?” 하지만 소녀의 엄마는 동물 키우는 걸 싫어한다.


여우 엄마는 먹을 것을 구하러 떠나버리고, 홀로 남은 아기 여우는 소녀를 따라간다. 소녀는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동물 키우는 것을 싫어하는 엄마한테 혼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괴로워한다. 난처한 상황에서 아기 여우는 기지를 발휘해 소녀 머리 위로 올라가 여우 모자가 된다. 그리고 이 방법은 기가 막히게 성공하며 소녀와 아기 여우는 따뜻한 집 안으로 입성한다.


나는 최근에 우리 동네에서 11년간 길고양이를 캐어하는 분을 만났다.

이분이 어느 날 아파트 앞에서 아기 고양이를 발견했는데, 키울지 말지 망설였다고 한다. 그래서 아기 고양이와 다시 마주치면 그럼 인연이겠지, 그럼 키워야지 하는 생각을 했단다. 다음날 주차장에 갔는데 어제 만난 아기 고양이가 자기 차 앞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아기 고양이를 키우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는데, 따뜻한 소녀의 집 안으로 입성하기 위해서 모자가 된 아기 여우와 자동차 앞에서 기다린 아기 고양이가 묘하게 겹쳐졌다.


무사히 소녀의 집 안으로 들어간 아기 여우는 어떻게 되었을까. 소녀는 집 안에서도 집 밖에서도 자전거를 탈 때에도 수영장에서도 여우 모자를 벗지 않는다. 그렇게 소녀와 아기 여우는 세상에서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그리고 이윽고 먹을 것을 구하러 떠난 엄마 여우가 돌아온다.


엄마 여우는 추운 바깥에서 창문 너머로 소녀와 함께 행복하게 놀고 있는 아기 여우를 본다. 엄마 여우는 차마 아기 여우를 부르지 못한다. 애써 잡아온 물고기 두 마리를 그루터기 옆에 내팽개치고 창 너머로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엄마 여우의 뒷모습이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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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여우모자』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때 또 다른 엄마인 소녀의 엄마가 구원 투수처럼 등판한다.

소녀의 엄마는 “울지 마, 우리 딸. 아기 여우를 엄마 여우에게 보내주자.”며 소녀를 달랜다. 소녀의 엄마는 여우 모자가 진짜 여우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든 내막을 알고 있던 엄마는 결정적인 순간에 딸의 가장 소중한 친구인 아기 여우를 ‘모자’가 아닌 있는 모습 그대로인 ‘여우’로 승인한다.


고바야시 요시키는 『라캉, 환자와의 대화 오이디푸스를 넘어서』에서, “어머니에게 안긴 어린아이가 자신의 발견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처럼 그에게 시선을 보내주고 있는 어머니를 돌아본다는 점”을 강조하며, “아이가 이러한 상을 자신의 것으로서 내재화할 수 있기 위해서는 대문자의 타자(이 경우는 어머니)에 의해 승인받아야만 한다. “그곳에 비친 것이 너야”라는 식으로, 이렇게 어머니의 승인에 의해 자아가 구성된다.(p119)”라고 말한다.


집 밖에서 발견한 나의 소중한 그 무엇, 나의 소중한 가치를 엄마가 승인하고 엄마가 알아준다는 것만큼 큰 만족과 기쁨이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림책 『여우모자』에는 엄마의 승인은 애초부터 있었다. 이미 그림책 앞 부분에 그 힌트가 그려져 있다. 아기 여우를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오는 것을 엄마가 허락해 줄 것 같지 않아, “엄마에게 혼이 날까 봐 겁이 난 소녀는 한참이나 집 앞을 서성”인다. 이때 임기응변으로 “아기 여우가 소녀의 머리 위로 폴짝 올라”서고, 그때 엄마는 “우와! 우리 딸, 멋진 여우모자를 썼구나.”하고 말한다.


이때의 엄마의 말은 어디까지나 ‘여우모자’이다. ‘여우’가 아닌 것이다. 여기서 엄마는 소녀와 정면으로 응시하며 마주보고 서 한쪽 손으로 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문을 활짝 열고 엄마가 소녀를 반겨주었어요.”란 문장과 함께 이 장면의 이미지를 보면 거의 문 세 개가 열린 듯 공간이 넓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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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문을 열어젖히는 이 장면은 벽 한 면이 다 뚫릴 정도로 넓게 묘사된다. 말보다 몸짓과 눈빛, 동작으로 엄마는 이미 승인한 것이다. 어쩌면 소녀가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먹을 것을 획득하여 돌아온 여우 엄마와 아기 여우, 위기의 순간에 등판하여 승인의 말을 던지며 딸을 구한 엄마와 소녀의 결말이 어떻게 마무리 되는지는 꼭 그림책으로 한번 확인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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