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이유 없이 누가 날 미워한다면?

조원희, 『미움』(만만한책방, 2020)

by 강이랑

<그림책 한번 읽어볼까?>

조원희의 『미움』


아무 이유도 없는데 갑자기 누군가에게 “너 같은 거 꼴도 보기 싫어!”라는 말을 들었다면, 잠 못 잔다. 그냥 없던 일로 넘길 수가 없다.


조원희의 『미움』은 어느 날 갑자기 그런 상황에 직면한 소녀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녀는 밥을 먹으면서도 “꼴도 보기 싫어!”라는 말이 생선 가시처럼 목에 탁 걸려 넘어가질 않는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자신에게 그런 말을 내뱉은 안경 낀 소년처럼, 목에 걸린 생선 가시는 안경 낀 시뻘건 얼굴로 똑같은 대사를 쏟아낸다. 살짝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그나저나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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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 가시는 수 셈을 하는 소녀의 머리 꼭대기에서도, 배드민턴을 칠 때는 공이 되어, 목욕탕에서조차 나타나는가 싶더니, 자신의 애착 인형인 토끼 얼굴마저 안경 낀 소년의 모습으로 나타날 지경이 된다.


그리고 짐작대로 소녀는 ‘미움’이라고 하는 감정에 지배당하며 죄수처럼 미움이라는 감정에 갇히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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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영향력-그들의 생각과 행동은 어떻게 나에게 스며드는가』에서 저자 마이크 볼드는 “인간이 분노와 불안 같은 심정과 기분, 또는 만족감이나 슬픔처럼 더욱 지속적인 심리 상태를 전염시킨다는 개념은 과학적으로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문희경 옮김, 어크로스, 2015, p33)”라고 말하는데, 주인공 소녀는 어느 날 갑자기 ‘미움’이라는 감정에 전염되는 상황에 봉착하고 만다.


그렇다면 우선 여기서 뜬금없이 소녀를 향해 “너 같은 거 꼴도 보기 싫어!”라고 윽박지르고는 다른 아무 말도 안 해주고 휑하니 돌아서 가버리는 소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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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그림책 첫 장면에서 등장한다. 얼굴은 분노에 차오른 듯 온통 새빨갛고, 양 눈썹은 사선으로 치켜 올라가 있고, 이빨은 생선 이빨처럼 날카롭다. 벌린 입 속은 새카맣고, 커다란 안경알에 가려져 소년의 눈은 볼 수 없다. 소년의 눈은 끝내 아무도 볼 수 없다. 전혀 그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소년이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런 심한 말을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소년은 눈앞에 누가 서있는지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 없이 전혀 엉뚱한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고, 자신의 내면에 차오른 분노를 아무나 보고 내뱉어버린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것이 아니고 그 무엇이란 말인가.


주인공 소녀에게는 이보다 더 심한 재난이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소녀는 어느 날 갑자기 벼락같이 내리친 재난을 마주한 것이다.


이런 상황이고 보니 소녀는 배드민턴을 쳐도 집중할 수가 없다. 어떻게 집중할 수 있단 말인가. 시뻘건 분노의 말을 내뱉으며 공이 날아오고, 네트는 찢겨 있다. 소년이 일으킨 분노의 감정이 소녀에게로 전염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엄청난 위기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그림책을 보면 미움의 감정은 점점 거세져 소녀는 잠을 자면서 소년을 미워하고, 결국 꿈속에서까지 미워하면서 소녀는 정말 사로잡힐 지경에까지 이른다. 소녀는 어떻게 미움의 감정에서 빠져나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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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조원희의 그림책『미움』에서의 새빨간 얼굴의 안경 소년처럼 아무 이유 없이 누군가가 미워질 때가 있다면 그건 내 안에 있는 어떤 마음의 병의 신호일 수 있지 않을까. 혹은 소녀처럼 난데없이 미움의 감정이란 재난을 당하면 속수무책이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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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의 주인공 소녀는 예전에 자신의 팔에 부스럼이 났을 때 엄마가 해준 말을 떠올리며 미움이라는 감정에 대면한다. 우리가 근력운동을 하듯 소녀의 내면은 이 일을 계기로 근력이 생겨 예전보다는 더 잘 대처하지 않을까. 그럴지라도 역시 힘들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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