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죠리퐁은 있는데 우유가 없다》(강이랑, 좋은생각, 2022.5)를 출간하고 아버지한테서 전화가 왔다.
하시고자 하는 말씀은 “니 이름이 없다. 어디에 니 이름이 있느냐?”이다.
한 권의 책에서 나는 우유가 없다고 말하고 아버지는 내 이름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아버지 입장에서 보면 아버지가 낳고 지은 딸의 이름이 없는 것이 맞다. 나는 이번 에세이에 본명이 아닌 필명을 썼다. 그래서 아버지가 생각하는 딸은 있으면서 없다.
나는 솔직히 말하면 엄마는 많이 사랑하지만, 아버지는 살짝만 사랑한다.
우리 아버지는 경제력도 있고,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재력을 키우셨고, 그 자부심 또한 대단하다. 하지만 나는 아주 가난하다.
아버지가 아버지인 것처럼, 나는 나다.
내가 아버지를 인정하는 만큼이나 아버지도 생소한 나의 또 다른 이름을 인정할 것이다.
이 믿음만큼은 있다.
한 달 전쯤에 집주인 어르신이 준 어린 분꽃 모종을 한 화분에 심었다가 며칠 전에 두 화분으로 옮겨 심었다.
옹색하지만 한 화분 속에서 분꽃이 탄탄하게 뿌리내리고 내성을 키우기를 기다렸다. 2주가 되고 3주가 넘자 줄기가 굵어지고 잎사귀가 새로 돋아났다. 두 분꽃이 한 화분에서 잘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 같았지만 어느 정도 자라자 줄기가 휘어져있다. 말은 안 하지만 무엇인가 마찰이 생긴 것이다.
나는 며칠을 더 지켜보다가 분가를 시키기로 결심한다.
분가를 시키고 며칠이 지나 보니, 휘어졌던 줄기가 올곧게 서며, 각자의 화분 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너희들도 하나에서 둘로 분화하였구나.
나 또한 하나에서 둘로 분화하는 과정 속에 있고, 우리 아버지 또한 딸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분화시키는 과정 속에 있고, 어쩌면 나보다 더 분화하고 계실 수도 있다.
아직 아버지만큼이나 경제력이 없는 나는 연구자의 이름과 창작가의 이름이라고 하는 두 개의 이름 속에서 어디 한번 이 사회 속에서 분꽃들과 더불어 자라날 셈이다. 화려하지 않지만 그 나름의 방식으로. 작은 화분 속에서, 그렇게 자연의 힘을 빌러서 한 발 한 발 하루하루 나아가 볼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