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를 보고 왔어요
에세이 하루와 하루 사이
같이 공부하는 연구자 동료가 인형극을 보러 가자고 해서 갔다 왔다. 그곳에서 인형극도 보고 ‘어린이’도 보고, 어린이의 마음을 지니고 있는 어른들도 보고 왔다.
올해는 어린이날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를 기념하여 양평에서 “소파 방정환과 함께하는 인형예술축제”가 열렸다. 연구자 동료는 인형극 축제를 이끄신 대표자 선생님과도 잘 알고 있고, 이번 인형극을 위해 방정환 선생님과 관련한 많은 기본 자료를 제공하셨다.
자동차가 없는 우리는 양평역에서 택시로 인형극이 열리는 곳으로 향했고, 이날은 비 소식이 있었다. 야외에 준비해둔 무대에는 널따란 천막이 쳐져 있어 행사 분위기가 물씬 났다. 우리는 네 편의 인형극을 관람했는데, 실내와 밖으로 이동하면서 인형극과 인형극 사이의 쉬는 시간에, 부대행사인 인형전시도 보고 중학교 학생들이 판매하는 음식과 음료도 사 먹으며 축제를 즐겼다.
첫 번째 인형극이 끝나고 비가 그치자 실내에서 야외로 이동하려는데 초등학교 중 저학년으로 보이는 여자 어린이 두 명이 “엄마가 어디로 갔어요.”라고 말한다. 엄마를 잃어버린 것이다. 나는 두 어린이에게 “응, 아마 이 근처 어딘가에 계실 거야. 너무 걱정 마.”하며 그 두 아이 곁을 지켰다. 그러자 두 아이를 아는 이웃분이 지나치다 두 아이와 인사를 한다. 이웃분을 만났으니 됐다. 나는 그분께 아이들 상황을 전하고 동료 쪽으로 합류했다.
야외무대에서 두 번째 인형극을 시작하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쉬는 시간까지 아무렇지 않다가 공연을 시작하자마자 비가 내렸다. 어린이들은 앞에 깔아놓은 돗자리에 앉고 어른들은 뒤쪽 의자에 앉아 인형극을 관람했다. 어린이들도 집중하고 어른들도 집중한다. 비는 계속해서 내렸지만 인형들의 안내를 받아 우리들은 순식간에 방정환 선생님이 남기신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휴식 시간에 다시 중학교 학생들이 구운 닭꼬치와 식혜를 먹고 있는데, 내 옆 가까이에 있던 어린이들이 나를 보고 “다미 엄마 같아.”라고 말한다. 다미 엄마가 아닌 나는 어린이들과 한 마디라도 더 하고 싶어서 “나 다미 엄마 아냐. 아이 없어. 결혼 안 했어.”라고 사실대로 말해 주었다. 그렇게 말하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는 아이들이 너무나 귀엽다.
세 번째 인형극이 시작되자 다시 비가 온다. 여기저기서 “인형극을 시작하기만 하면 비가 오네.”란 말을 한다. 세 번째 인형극은 당시 동화구연을 들려주던 방정환 선생님이 주인공이시다. 이 인형극에서는 그런 방정환 선생님을 감시하는 일본 형사가 나온다. 일본 형사가 어린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러주고 계시는 방정환 선생님을 방해하며 긴박감이 넘치는데 그때마다 천막에 고였던 빗물이 아래로 철퍼덕 철퍼덕 떨어지고 현장감이 정말로 장난 아니다. 천둥 번개만 안 쳤을 뿐이지 묘한 기후 변화 속에서 인형극을 진행해주시는 선생님의 집중력 덕분에 우리는 어린이, 어른 할 것 없이 일심동체가 되어 인형극 속으로 다시 빨려 들어갔다.
인형극 이야기에 몰입한 아이들이 저마다 소리소리 지르며 이야기에 동참하고, 천막에 고였던 빗물은 절묘한 타이밍에 철퍼덕 낙하하고, 세상사 이런저런 일을 잊고 어른들 또한 이야기와 함께 한다.
그리고 다시 실내로 이동해 진행한 네 번째 인형극은 환한 무대와 어두운 객석의 대비, 효과음이 어찌나 리얼하던지, 영화 한 편을 본 듯했다. 어린 시절 우리 학교가 아닌 다른 학교로 가서 보던 단체 영화 관람 기억이 떠올라, 나 또한 어린이가 된다.
꿈결 같은 세 시간이 지나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자, 우리는 난감해지고 말았다. 버스를 탈 곳도 모르고, 콜택시는 아예 전화가 걸리지 않고, 카카오 택시도 연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현실로 복귀한 우리 앞에는 어떻게 역까지 갈 것인가 하는 문제가 걸려있었다. 날은 저물어가고, 기차 시간은 임박한 상황에서, 다시 내리는 비를 맞으며 서둘러 우산을 펴 들고 우리는 역까지 걸어가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리고 발걸음을 떼는데 바로 뒤에서 치익하고 시동을 거는 차 소리가 들렸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그곳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자가용 유리창이 스르르 내려간다. 젊으신 엄마와 어린이가 타고 있다. 나는 “혹시 시내 쪽으로 가세요?”하고 물어본다. 어린 자녀와 함께 인형극에 오신 젊으신 어머니는 역까지 가는 행선지가 아니었지만 우리를 양평역까지 데려다주셨다. 그리고 연구자 동료는 답례로 자신이 직접 단행본으로 엮은 방정환 수필 모음집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어린이》를 건넸다.
우리는 비 오는 날, 인형예술축제를 관람했다는 그 하나만으로, 방정환의 이야기를 함께 했다는 그 하나만으로 어느새 이웃이 되어있었다. 연구자 동료의 권유로 인형극을 보러 가서 어린이도 보고, 방정환 선생님도 보고, 그리고 ‘사람’을 만나고 왔다. 그곳에 어린이가 있고 사람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