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이라 하루가 멀다고 비가 온다. 비가 오는 이번 주 내내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해야 할 일이 있었는데 정신을 바짝 차리지 못했다.
한 줄이라도 시작하자는 마음에 드디어 시작을 했다. 소파 방정환 선생님이 세계 각국의 이야기 열 편을 모아 번역 동화집 《사랑의 선물》을 펴낸 것은 1922년의 일이다.
함께 공부 하는 연구자 모임에서《사랑의 선물》에 실린 이야기로 논문을 쓰고 일본어 중역본을 번역하고 있는데, 나는 내가 맡은 <한넬레의 승천> 번역을 몇 달이고 미루다가 이제야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나는 요 며칠 잠을 좋아하는 고양이 마냥 잠을 잤다. 나는 고양이만큼이나 잠을 좋아한다. 뭔가 기분이 좋지 않거나, 몸이 힘들 때 나는 잠 욕심을 내며 마치 갓난아기 마냥 잠 속으로 빠져들 때가 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나서야, 드디어 한 줄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 시작은 너무나 중요해서, 이렇게 한 발을 내딛으면 한 줄이 한 단락이 되고 한 장이 되고, 그러다 탄력을 받으면 끝을 향해 나아간다.
어머니를 잃고 의붓아버지의 학대 속에서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던 한넬레는 폭풍우가 치는 한겨울 밤, 두려움에 떨며 집 밖으로 뛰쳐나가 차디찬 연못물에 몸을 던지고 만다. 다행히 그곳을 지나던 나무꾼과 초등학교 선생님에게 구조되어, 수녀님의 간호를 받는 빈민원 장면으로 이어진다.
투두둑 투두둑 굵은 빗방울이 소강상태가 된다. 나는 어제서야 비로소 한 줄을 시작하면서 걱정은 걱정대로 하며 산책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지라, 잠시 번역을 멈추고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올 생각에 무조건 밖으로 나간다. 길을 가는 모두가 손에 손에 우산을 들고 있다.
집들도 축축하고, 길바닥도 축축하고, 풀숲도 축축하고, 나뭇잎도 축축하고, 모두가 다 축축하다.
그렇게 잘 가는 산책길로 들어서는데 어느 집 천막 지붕 위에서 길고양이 한 마리가 잠들어 있다. 마치 아기처럼 잠들어 있다. 길고양이 사진을 찍고 싶다. 하지만 내 손에는 아무것도 없다. 핸드폰도, 우산도 들고 있지 않다. 나는 한 바퀴를 돌고 집으로 돌아가 핸드폰을 챙겨 다시 축축한 길 위로 나선다.
길고양이가 같은 곳에서 아직도 자고 있다. 내가 핸드폰을 들자 인기척을 느끼고 기지개를 켠다. 그러더니 다시 잠을 잔다.
꼭 며칠 전 내 모습 같다.
길고양이 덕분에 동네 한 바퀴가 동네 두 바퀴가 되었다. 이 기운을 받아 한 줄 시작한 번역 작업을 한 장, 두 장 속도 내어볼 생각이다. 동네 한 바퀴는 내게 길고양이를 만나게 하고, 글과 번역일을 달릴 수 있도록 전환시켜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