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더 골치 아프다

by 강이랑

걸어서 30분 걸리는 동네 도서관에 들렀다. 논문에 쓸 중요한 자료를 두 개 더 찾았는데 우리 동네 도서관에 있었다. 왕복 1시간 걸리지만 운동도 되고, 도서관 근처 시장에도 들릴 수 있고, 마트에도 들릴 수 있어서 기꺼이 걸어 다닌다.


일반 자료실에서 도서를 빌린 다음 어린이실로 내려갔다. 찾는 그림책이 유아실에 있어서 들어갔다가 막 나오려던 참인데 미취학 어린이가 엄마와 함께 그림책을 펴고 영어로 숫자를 읽기 시작한다. 유아실에는 우리 빼고 다른 사람은 없었다. 영어는 아주 유창했고, 유아실 풍경과 잘 어우러져, 아름다운 울림이었다. 함께 하고 있던 어머니는 아이의 기분을 살려주면서 주변에 방해가 되지 않게 조용히 아이를 이끌었다.


어린 나이에 영어를 접하고, 피아노를 치고, 다양한 독서 체험을 하는 요즘 아이들을 내 어찌 따라갈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고작 들판만 뛰어다니던 어린이었다. 난독증으로 한글도 잘 못 읽어 3학년 때까지도 애를 먹었던 아이었다. 나는 지금의 어린이를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다.


어린이실로 이동해 노르웨이 민담 그림책을 읽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서 부부와 두 자녀가 책을 읽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두 자녀분만 책 속에 빠져있고 부부는 무슨 자료를 찾는지 서로 의논하면서 분주하다. 갑자기 한 자녀가 큰소리로 말하고 그만큼 크게 아내분이 큰소리로 말한다. 남편분이 자녀에게 작게 말하라고 하는데도 아내분은 더 큰소리로 남편분한테 뭔가를 지시한다. 아내분은 옆자리에 누가 있든 말든 전혀 개의치 않는다.


자료를 빌리러 카운터로 갔더니 카운터에 놓인 고정 전화로 할아버지 한 분이 큰소리로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핸드폰을 분실하셨나 보다. 급한 상황인 것이다. 큰소리 통화가 계속 이어지자 안쪽 카운터에서 선임 사서 분이 나오더니 밖에 있는 전화로 안내해드리겠다고 권한다. 할아버지는 전혀 개의치 않고 계속 통화한다.


공공장소에서 이런 모습을 종종 본다. 솔직히 사정없는 사람은 없다. 모두 나름의 사정 속에 살고 있다.


언젠가 전철을 탔을 때였다. 한 중년 여성이 자신이 든 짐을 사람들이 내리고 타는 문 바로 앞에 버젓이 내려놓는다. 그 무신경에 정말 깜짝 놀랐다. 또 어느 날 사람이 많은 퇴근 시간대에 전철에 탔을 때였다. 중년 남성 세 사람이 문 앞에 진을 치고서 30분 넘게 가는 내내 자신들이 관여하는 공동체 모임 회장이 공공 자금을 남겨 다시 돌려주었다며 회식비용으로 쓸 것이지 쓸 줄을 모른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말하고 또 말하고, 하도 큰소리로 말해서 듣고 싶지 않아도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공공장소나 공동체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어른들이 더 골치 아프다.


나는 도서관을 나와 시장으로 향한다. 야채 가게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전에 여기서 상추를 천 원에 사서 집에 와서 먹으려고 씻는데 정말 엉망이었다. 봉지에 담겨 있어서 몰랐던 것이다. 그런데 그 집에서 산 1,500원 하는 깻잎은 양도 많고 질도 좋았다. 하나는 나빴고 하나는 좋았다. 그래서 나는 깻잎만 한 봉지 사들고, 부지런히 걸어서 도중에 있는 동네 마트를 들렀다.



몇 달 전만 해도 천 원 하던 상추가 배가 올라 2천 원이지만 질이 좋아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구입한다. 바로 옆에 아보카도가 세 개 든 묶음이 할인 가격이 붙어 천 원이다. 최근에 다른 할인 마트에서 아보카도 하나에 천 원을 주고 샀던 참이라 살까 말까 망설인다. 앞전에 여기서 샀던 아보카도는 실망이었다. 번듯한 겉모습과는 달리 먹으려 하니 안이 엉망진창이어서 먹을 수 없을 정도였다.


잘 숙성된 신선한 아보카도는 과일처럼 그냥 먹어도 좋지만 에 싸서 먹거나 된장이나 고추와 함께 상추쌈을 싸서 먹어도 맛있고, 소면을 삶아 간장, 참기름, 상추 등과 함께 샐러드처럼 먹어도 별미라 좋아하는 식재료다.


안 좋은 경험을 한 적이 있지만 세 개에 천 원은 가난한 내게는 유혹적이다. 그냥 보기에 때깔도 좋다. 나는 결국 구입한다. 집으로 와 저녁 반찬으로 먹으려고 열어보니 역시나 엉망진창이다. 가장 때깔이 좋은 아보카도였다. 하나는 통째로 버리고 두 번째 아보카도를 열어본다. 다행히 멀쩡하다. 하나는 나빴지만 하나는 좋았다. 그럼 됐다.


다 자라고 다 크고 숙성된 것처럼 보인 아보카도도 막상 먹으려고 하면 아닐 때가 있다. 특히 공동체에서 이런 사람을 만나면 답이 없다. 겉은 그럴싸한데 알고보면 엉망진창이다. 내가 습관처럼 하는 이상한 속성이 있다면 과감히 버릴 필요가 있다. 또 다른 좋은 속성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변에서 만나거나 가까이하는 존재조차도 공동체 관계나 사이에서 민폐가 되는 이상한 속성을 되풀이할 때가 있다. 미숙한 내면의 상황 때문에 발생하는 모습인데, 결국은 공동체나 주변 존재들과의 관계에 영향을 끼친다.



이럴 때 성장과정에 있는 아이들에게는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기회나 상황이 주어진다. 하지만 어른이 이런 행동을 하면 주의를 주기도 난감하다. 스스로 깨우치면 좋으련만 그렇지도 않다. 그래서 어른이 더 골치 아프다.


때로 어린이들은 “어리니까”로 넘어갈 수 있지만 이런 경우 어른은 참 난감하다. 어리지 않으면서 어린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어른이면서 어른스러운 행동을 하지 않는 어른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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