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에 놓이는 순간

에세이 하루와 하루 사이

by 강이랑

어린이들과 함께 하다보면 어느 순간 시험에 놓이는 순간이 있다.


작은 도서관에서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눈 다음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친구는 이야기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싶은 친구는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아이들은 집중도와 멀티 능력이 뛰어나서 아주 짧은 시간 안에서도 두세 가지의 일을 동시에 해낸다. 그렇게 놓여진 시간 속에서 자신의 일과 타자와의 소통을 자유자재로 해낸다. 마치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자유자재로 오고가는 것처럼, 그렇게 물 흐르듯이 해낸다.


한 여자 어린이가 내게 다가와 자신의 공책을 보여준다.

자신이 쓴 글을 지웠다.

지우개로 지운 것이 아니라 펜으로 쓱쓱 지운 것이다.

그리고 그 상황을 내게 보여주러 왔다.

이는 내 진행과 연관이 있었다.


나는 어린이들과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몇 가지 질문을 하고 대화를 나눈 뒤, 이야기를 써보도록 권장했다. 하지만 몇몇 어린이들이 쉽게 따라오지 못하는 상황인 걸 알자, 핵심 장면 중 한 장면을 자신의 이미지로 가져와 그리도록 권장했다. 그러면서 글을 쓸 수 있는 친구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친구는 그림을 그리도록 한 것이다.


여자 어린이의 공책을 본 나는 “왜 지웠어? 안 지워도 되는데.”란 말을 한다. 그러고는 곧바로 “그림을 그릴래?”하고 물어본다. 아이는그림을 그리겠다고 끄덕인다. 나는 그대로 두어도 될 것을 왜 굳이 지웠을까란 생각을 했지만, 내게 공책을 보여준 어린이는 단순히 글이 아닌 그림을 그리기로 하고, 글을 지운 것일 수도 있다. 생각해보면 자기 공책에서 자기가 쓴 글을 지우는 것도 마음대로 못 하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자 어린이가 내게 자신의 공책을 보여준 점일 것이다.


모두가 집중하는 사이, 시간이 지나고,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하나하나 아이들이 쓰거나 그린 그림을 보러 다니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는 사이에 아까 여자 어린이 책상에 그림이 하나 놓여있다.


“그림 좋은데, 왜 두고 가?”하고 물어본다.

여자 어린이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 그러자 옆에 있던 친구가 “제가 가방에 살짝 넣어둘게요.”하고 말한다.

나는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고마워.” 그 아이에게 말하고, “여기에 두고 갔으니, 내가 하는 브런치에 올려도 돼?”하고 물어본다.

그림 주인이 나를 응시하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과 함께 하다 보면 수많은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지금 이런 상황인데 어떻게 할래요? 하듯이 아이들이 나를 바라본다. 그 순간 나는 나의 체험이라든가, 나의 가치관이라든가, 나의 생각을 투영한다. 하지만 여기서 나의 생각이라는 게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지금 여기 내 눈앞에 있는 아이가 하고자 하는 걸 알아주고 인정해주는 그것만으로도 나는 내 소임을 다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거나, 브런치에 올려도 된다는 허가를 받았다.


여자 어린이가 그린 그림


우리가 함께 읽은 동화는 오카다 준이 쓰고 그린 《마녀의 슈크림》(양선하 옮김, 국민서관, 2015)이었다. 슈크림을 원 없이 먹는 걸 소원하는 다이스케라는 소년이 마녀에게 맡긴 목숨을 되찾아달라는 까마귀, 검정고양이, 두꺼비, 두더지 등 네 마리 동물들의 부탁을 받고 마녀의 집에 입성해 미션을 해결하고 동물들을 구해내는 이야기였다. 미션이라는 것은 백 배나 큰 슈크림을 먹고 마녀에게 빼앗긴 동물들의 목숨이 든 병을 여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일종의 영웅 구조를 띠는데, 아이들 쪽에서 다이스케가 마녀를 물리치는 것만이 아닌 백 배나 큰 슈크림을 두 번이나 먹어야 하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냈기 때문에 동물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는 발언을 한다. 매 번 느끼는 거지만 정말 대단하다. 이 발언 하나만으로도 나는 여기 온 가치가 있었다.


우리의 여자 어린이는 ‘마녀의 집’이 아닌 파란 지붕의 ‘햄스터의 집’을 그렸다. 《마녀의 슈크림》에서 슈크림은 지하실에 있는데 여자 어린이도 자신의 그림 속에 지하실을 그려 놓았다. 우리가 함께 읽은 동화와의 연관성 속에서 이 그림을 그린 것이다. 집과 지하실을 지키는 동물들이 있고, 굴뚝 연기가 꽃구름처럼 피어오른다. 문은 굳게 닫혀있지만 창문으로 보이는 햄스터 표정이 밝다.


마치 <헨젤과 그레텔>처럼 다이스케 소년은 그 성장 과정에서 ‘마녀의 집’을 한번 거쳐야만 했다. 여자 어린이가 그린 ‘햄스터의 집’은 계단을 오르고 올라야 하는 높은 곳에 있다. 그리고 그 집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온기가 함께 하는 곳이다.


우리는 집에 갈 생각도 않고 여자 어린이가 그린 ‘햄스터의 집’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집 앞에 우거진 식물을 한 아이가 “해바라기 꽃.”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보아도 해바라기 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나무 아닐까?”하면서 그림 주인에게 물어본다. 그러자 “해바라기 꽃.”이라고 말한다. 두 아이 다 ‘햄스터의 집’이 상징하는 상징성을 그 식물에 투사해 말한 것이다. 해바라기가 환하게 피어있고, 파란 지붕에 몽실몽실 연기가 피어나는 집, 좋다.


작은 도서관을 나와 길을 가는데, 인도에 메뚜기 한 마리가 있다.



나는 메뚜기가 어디로 튈지 몰라하지만 메뚜기는 그 나름의 뛰어갈 방향을 알고 있는 거겠지. 나나 잘 하고, 내 갈 길이나 갈지어다. 아니나 다를까 러시아워 대 시간에 전철을 탄 데다가 물 마시는 타이밍을 놓친 나는 중간에 전철을 내려 물을 사 마신다. 두 시간에 걸쳐 나는 나의 집에 도착한다. 그리고 내 가방 속에는 나갔을 때는 없었던 그림이 들어있었다.


우리 집 분꽃


keyword
작가의 이전글어린이들과 그림책 토론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