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로 떠나는 내면 여행 2탄-한국&일본 동화읽기➄

by 강이랑

‘형제’를 체험하고 타자화 한다는 것
『마법의 빨간 부적』(김리리 글, 이주희 그림, 창비, 2018)


1. 앙숙이다

내 가까이에 있는 근원적인 인간관계의 하나인 형제자매.


서로 우애가 깊다면 형제자매처럼 의지가 되고 일상을 공유하는 좋은 상대는 달리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혹여 서로 합이 맞지 않거나, 그다지 우애가 좋지 않다면 그보다 더 큰 고역 또한 없을 것이다.

『마법의 빨간 부적』(김리리 글, 이주희 그림, 창비, 2018)에는 서로를 앙숙으로 생각하는 형제 이야기가 나온다. 형과 동생은 나이가 세 살 터울이다.


2. 형 안에 동생 있고, 동생 안에 형 있다

세 살이나 나이 차이가 나지만 동생은 결코 형에게 지지 않고, 형은 결코 동생에게 양보하지 않는다.

『마법의 빨간 부적』에서의 형은 책임감이 있고 동생을 챙기며, 동생보다 힘이 세고 지능적이라거나, 동생은 형을 의지하고 따르며, 제멋대로인 데다 약하고 미숙하다거나 하는 식의 코드는 쓰지 않는다. 둘 다 악바리이며 둘 다 자기중심적이며 둘 다 다혈질이다. 그러니 사사건건 부딪힐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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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경쟁 상대이다

『마법의 빨간 부적』의 4학년 형 초록이와 1학년 동생 연두는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싫어하지만, 반려견 치와와 ‘달래’한테는 둘 다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다. 형제는 ‘달래’를 쟁취하기 위해 애쓴다.


그날도 초록이와 연두는 달래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달래는 윤기 나는 검은색 털에 툭 튀어나온 커다란 눈을 가진 호기심 많은 치와와다.

“달래, 이리 와.”

초록이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안 돼. 달래, 이리 와.”

연두도 지지 않고 손을 내밀었다.(『마법의 빨간 부적』, p10-11)


둘은 반려견 달래의 마음을 차지하고 싶다. 『마법의 빨간 부적』의 형제는 결국 좋아하는 대상이 동일하다.


“봤지? 달래가 너한테 안 가잖아. 달래는 코딱지나 파는 꼬맹이는 싫어하거든.”

초록이가 비아냥거렸다.

“흥, 형한테도 안 가잖아. 달래는 발 냄새 지독한 형을 무지무지 싫어하거든.”

연두도 콧구멍을 넓히며 씩씩거렸다.(『마법의 빨간 부적』, p11-12)


좋아하는 대상을 독차지하고 싶은 형과 동생은 그야말로 유치한 모습을 전면에 드러낸다. 이 정도면 서로에 대한 폭로전이나 다름없다. 형제고 뭐고 없다. 경쟁이다. 그리고 이 형제는 둘 다 강한 기질을 지녔기에 역시 호락호락 물러서지 않는다.


4. 동일한 대상을 욕망하는 형제

형제는 자신들이 욕망하는 존재를 얻기 위해 원색적인 말을 주고받으며 싸움을 벌이고, 그로 인해 엄마에게 된통 혼이 나고, 둘은 동시에 집을 뛰쳐나간다.


프랑스의 문학평론가이자 사회인류학자인 르네 지라르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르네 지라르, 김진식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4)에서 “개인들은 날 때부터 이웃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욕망하는 성향이 있거나 단순히 욕망하기에, 인간 집단 가운데에는 아주 강한 경쟁적 갈등의 성향이 있다.(p21)”라면서 아래와 같이 말한다.


사람들은 욕망이 객관적이거나 아니면 주관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욕망은 사실 그 대상을 가치 있게 만드는 타인에 근거하고 있는데, 이 타인은 곧 가장 가까이 있는 제삼자 즉 이웃이다.(『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p22)


『마법의 빨간 부적』에서는 이러한 ‘이웃’을 내 가장 가까이에 있는 형제로 대치할 수 있다. 르네 지라르는 계속해서 “적대 관계가 격화될수록 그 적대자들은 역설적이게도 점점 더 서로를 닮아간다.(p26)”라고 하는데, 『마법의 빨간 부적』에서의 형제 또한 점점 서로를 닮아간다. 따라서 형과 동생은 전혀 다른 개성을 지닌 존재 같지만, 형 안에 동생 모습이 투영되어 있고 동생 안에 형의 모습이 들어 있다.


5. 그 누구도 선택하지 못한다

형제는 이처럼 한 명의 멋진 존재인 ‘달래’를 동시에 좋아한다.

반려견 달래를 둘러싼 형 초록이와 동생 연두의 관계는 삼각관계를 형성한다. 우리가 익히 아는 삼각관계는 화합과 조화보다는 경쟁과 갈등을 유발한다.


초록이는 씩씩거리다가 보란 듯이 달래를 번쩍 끌어안았다.

“봤지? 달래가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웃기지 마. 달래는 나를 더 좋아해.”

연두가 달려가서 달래 다리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초록이는 달래의 목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마법의 빨간 부적』, p12-14)


정작 달래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겠지만, 어쩔 수 없다. 이 정도로 달래는 죽지는 않을 것이며, 또한 이러한 상황을 초래한 것은 달래에게도 그 원인이 있다. 달래는 “두 사람 중에 한 명만 선택하라는 건 엄마 아빠 중 누가 더 좋은지 결정해야 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달래는 끄응 소리를 내며 결국 꼬리를 내리고 주저앉았다.(p11)”라며 둘 사이에서 망설인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김석윤 연출, 이남규·김수진 극본, JTBC, 2019.2.11~3.19)를 보면, 강아지 밥풀이를 놓고 극 중 준하와 혜자가 신경전을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준하와 혜자는 서로가 애착하는 밥풀이를 쟁취하기 위해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다. 그리하여 밥풀이가 준하와 혜자 둘 중 누구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밥풀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어느 한쪽을 선택한다.

부딪혀야 할 때가 되면 부딪혀야 하고, 선택할 때가 되면 선택해야 한다. 따지고 말 것이 없다. 하지만 『마법의 빨간 부적』에서의 달래는 그 누구도 선택하지 못한다.


6. 형제가 상징하는 것

즉 달래 입장에서 보면 초록이와 연두는 둘이 아닌 하나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 동화에서 형제가 상징하는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마법의 빨간 부적』 에서의 초록이와 연두는 서로 다른 둘이지만 아직 분화되지 못한 ‘1’인 하나를 상징한다. 초록이와 연두의 눈에는 서로가 아직 타자화가 되지 않은 존재인 것이다. 서로 각자 다른 둘을 직시하고 인정하는 것이 아닌 아직 분화되지 않은 하나로써의 둘인 것이다.


『자연, 예술, 과학의 수학적 원형』(마이클 슈나이더 글, 이충호 번역, 경문사, 2002)을 보면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을 인용한 다음의 문장이 나온다.


서로 반대되는 것은 유익하다. 서로 다른 것들로부터 가장 훌륭한 조화가 나온다. 모든 것은 투쟁을 통해 태어난다. (『자연, 예술, 과학의 수학적 원형』, p21)


저자 마이클 슈나이더는 “차갑고 건조한 공기가 따뜻하고 습기 찬 공기와 만날 때 비가 내린다.”, “날실과 씨실이 교차하는 곳에서 천이 짜인다.”라고 말한다.

『마법의 빨간 부적』의 초록이와 연두는 아직 분화되지 못한, 아직 타자를 타자로서 인식하지 못한 미분화된 단계에 있는 두 존재로 보인다. 따라서 초록이와 연두는 다른 하나와 또 다른 하나로서 서로 마주하는 둘이 되기 위해서, 대지를 적시는 비로 쏟아지고 천을 직조하는 창조적인 실체를 이루기 위해 지금 서로 부딪힐 때인 바로 그 시기에 직면한 것이다.


7. 상처를 주고받은 기억이 있다

형제는 각자 서로 주고받은 상처의 기억이 있다.

형 초록이는 “갑자기 이마에 있는 상처가 욱신거리는 것 같았다. 2년 전 연두가 던진 팽이에 맞아서 생긴 상처였다(p18)”라며 동생한테서 입은 상처의 기억을 떠올린다.

동생 또한 “연두는 생각할수록 억울했다. 갑자기 엄지발가락이 쿡쿡 쑤셨다. 3개월 전, 형이 공구함을 떨어트려서 엄지발가락을 다쳤다.(p25)”며 형한테 입은 상처의 기억을 떠올린다.


팽이로 이마를 맞은 초록이나 공구함으로 엄지발가락을 찍힌 연두나 엄청나게 아픈 기억이 확실하다.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 하는 존재일수록 서로 일상을 공유하기에 예기치 않게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무엇보다 우리는 좋은 추억보다는 나쁜 추억을 오래도록 기억한다. 그리고 내가 상대에게 끼친 상처는 깨닫지 못하고 내가 상대에게 당한 상처의 아픔은 생생하게 기억한다.


무의식 속에서 나의 또 하나의 분신이라고 생각하는 존재일수록 나와 타자를 분리하지 못하고 있다가, 서로에게 끼치는 상처를 통해 비로소 타자가 나와 다른 또 다른 존재라는 것을 인식한다.


8. 반으로 찢어져 날아든 부적

집 밖으로 뛰쳐나간 형제는 부적을 발견한다. 한 장에서 반으로 찢어져 날아든 부적은 하나는 형 초록이의 이마에 부딪히고, 하나는 동생 연두 볼에 부딪힌다.

그러자 초록이는 “제발 얄미운 연두가 사라지게 해 주세요!(p22)”라고 빌고, 연두는 “제발 형이 사라지게 해 주세요!(p27)”라고 소원한다.

그리고 몸과 정신이 뒤바뀐 초록이와 연두는 각각 같지만 다른 모험을 시작한다.


우리는 가끔 초록이와 연두만큼은 아니어도 세상을 살면서 괜히 얄미운 존재와 맞닥뜨릴 때가 있다. 초록이와 연두의 관계에 견주어 볼 때, 세상에서 만난 얄미운 존재 속에 내 모습이 있고, 내 모습 속에 얄미운 타자의 모습이 들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사실이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내가 내 모습을 직접 보지 못 하고 거울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처럼, 타자를 통해서 내 모습을 직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9. ‘이마고’로써의 형제

『에크리 라캉으로 이끄는 마법의 문자들』(김석, 살림출판사, 2007)에서 저자 김석은 “원래 ‘거울단계’라는 개념은 프랑스 심리학자 왈롱에 의해 제안된 용어로 아이의 성장 과정에서 거울 속 이미지가 자아 형성의 토대가 되면서 외부 세계와의 소통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는 심리학적 진화론을 말한다. (p146)”라며 라캉의 거울단계에서의 ‘이마고’의 역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타자적인 이미지에 자신을 일치시키는 것은 주체 구성 과정에서 불가피한데, 주체가 자신을 알아보는 것은 이미지의 매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런 타자적인 이미지의 역할에 대해 라캉은 ‘이마고’라는 명칭을 붙이는데, 그것은 한편으로는 주체를 소외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아 형성을 도와준다. 이마고는 거울에 비친 모습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가 마주하는 어머니의 얼굴이나 자신의 능력과 모습을 거울처럼 확인시켜주는 모든 대상이 이마고가 될 수 있다.(『에크리 라캉으로 이끄는 마법의 문자들』, p148)


『마법의 빨간 부적』에서는 형제가 ‘이마고’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김석은 계속해서 “라캉은 상상계, 상징계, 실제계의 세 가지 구분을 강조하면서도 그 모든 것이 필연적인 상호 연관을 이루고 있다고 강조한다. 상상계는 주체가 자신의 이미지와 맺는 이자 관계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주체에게 완전성과 통합의 환상을 주며 세계에 대해 생각할 때 모든 것을 대상화하는 표상적 태도를 갖게 만든다.(p150)”라고 설명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주체는 거울단계를 거치면서 나와 너라는 상호 주체성의 구조에서 가시화되는 주체성을 획득한다. 이 가시화된 주체성은 자아 혹은 에고라 부를 수 있다.(…)

주체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형상과 그 옆에 자리 잡고 있는 타자의 모습을 확인한다. 주체가 타자의 몸짓 혹은 표정을 통해 타자가 상대하는 이미지가 바로 자신임을 발견하는 순간이 가시적 공간에서 주체성이 실현되는 최초 순간이다. 그 이전까지 원초적인 신체 감각에만 사로잡혀 있던 주체는 비로소 자신을 외화된 이미지 속에서 알아보며 이것에 동일시하는 것이다. 이것이 자아가 형성되는 과정이며, 자아가 형성되면 자아에 의해 외부 세계와의 대상적 관계가 본격적으로 가능해진다.

하지만 자아 형성은 거울단계에서 보듯 타자적인 이미지의 개입에 의해 가능해진다.(『에크리 라캉으로 이끄는 마법의 문자들』, p152-153)


『마법의 빨간 부적』에서의 초록이와 연두가 겪는 분리와 통합은 형제라고 하는 근원적인 이자 관계를 통해 각각의 존재가 고유의 주체성을 획득하고 타자를 인식하는 과정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10. 형제를 체험하고 타자화 한다는 것

『마법의 빨간 부적』은 초록이와 연두라는 형제가 부적의 힘을 빌러 각자 몸이 뒤바뀌는 과정과 그 소동을 담고 있다.

한 개의 부적이 반반으로 나뉜 것은 그동안 서로를 각자 또 다른 하나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초록이와 연두가 비로소 서로를 타자화 하는 체험을 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마이클 슈나이더는 『자연, 예술, 과학의 수학적 원형』에서 “재앙을 피하려면 우리는 달리 생각하는 법과 일상생활 속에서 양극화의 함정을 피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p26)”라고 말한다.

나 스스로가 저절로 타자의 마음을 헤아리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런 분리나 양극화의 경험을 우리는 안전한 관계망 속에서 한 번 몸소 경험해봐야 한다.


따라서 형제를 체험하고 타자화 한다는 것은 내가 앞으로 걸어가면서 사회 속에서 만나는 다양한 관계와 그 관계와의 부딪힘에 직면할 각오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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