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로 떠나는 내면 여행 2탄-한국&일본 동화읽기➅>

by 강이랑

세상일은 언니와 여동생 모두에게 공평하다

『레기, 내 동생』(최도영 글, 이은지 그림, 비룡소, 2019)


1. 버려질 위기에 처하다

여기, 동생을 쓰레기라고 생각하는 언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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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기, 내 동생』(최도영 글, 이은지 그림, 비룡소, 2019)에서 동생은 자고 일어나 보니 정말로 쓰레기봉투로 변신해 있고, 이 모습을 목격한 언니는 기겁을 하고, 동생은 버려질 위기에 처한다.


어느 날 하루아침에 자신의 몸이 냄새나는 통통한 쓰레기봉투로 변한 실체에 맞닥뜨리는 것도 큰 공포이지만, 타자에게 향한 자신 내면의 원망(怨望)이 현실화된 모습에 대면하는 것 또한 공포이다.


2. 버리고 싶은 존재가 있다면?

누군가를 버리고 싶다는 것은 이미 그 존재와 깊은 관계 설정이 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런 관계가 아니라면 굳이 버릴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레기, 내 동생』에서는 그 관계 설정이 자매로 나온다. 언니와 여동생이 여러 의미에서 서로 비슷하여 합이 잘 맞는다 하더라도 주변의 다양한 관계나 상황으로 수많은 변수가 이 두 사람 사이에 얽히고설켜 든다.

특히 자매라면 한 방에서 지지고 볶을 확률이 높다.


『레기, 내 동생』에서 언니 리지와 동생 레미도 같은 방, 이 층 침대를 쓴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은 사사건건 부딪힌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겪어도 각자 다른 반응으로 표출된다. 즉 언니한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동생한테는 큰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동생한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언니한테는 큰 스트레스가 된다. 이 점은 자매 모두에게 공평하다. 나만 느끼는 불편한 감정이 아닌 언니도 겪고 동생도 겪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버리고 싶은 존재가 있다면, 어쩌면 그 존재 또한 어느 시점에서 날 버리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3. 설마가 사람 잡는다

『레기, 내 동생』에는 노트에 증오하는 사람의 이름을 적으면 그 대상이 죽는 일본의 공포 만화 『데스노트』에서의 ‘데스노트’와 유사한 장치로서의 마법의 수첩이 나온다. ‘데스노트’가 죽음이라고 하는 요소를 극대화하여 나타내는 것에 비해, 『레기, 내 동생』에서의 마법의 수첩은 희로애락의 여러 감정과 소망을 폭넓게 포괄하고 있어 아주 극단적이지는 않다.


설마설마했던 일이 현실화되었을 때의 공포는 바로 이 경우를 말하는 것일까. 어떤 뜻밖의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을 때, 우리는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느낄 때가 있다. 하지만 『레기, 내 동생』에서 여동생이 쓰레기봉투로 변하고 마는 그 배경에는 언니의 어떤 구체적인 행동이 직접적으로 작용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레기, 내 동생』의 언니는 자신이 한 행동과 관련이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으악, 으아앙!”

레미의 울음소리. 아, 정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레미가 쓰레기로 변한 것이다!(…)

어지러웠다. 어젯밤 낄낄거리며 쓴 ‘내 동생 쓰레기’라는 여섯 글자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정말이지 나는 레미가 쓰레기가 되라고 쓴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쓰레기라고 썼다고 쓰레기가 되다니, 그게 말이 되나.

이건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자꾸 마음이 켕겼다.( 『레기, 내 동생』, p23-26)


설마 했던 일이 실제로 현실화되고 만 이 상황은 결국 동생뿐만이 아닌 언니에게도 큰 시련으로 작용한다. 이런 점에서도 자매는 공평하다.


4. 동생을 등에 업은 언니

결국 언니 리지는 쓰레기가 된 동생을 등에 업는다.

우리 예전의 모습을 돌이켜 볼 때 딸 자매를 줄줄이 둔 집안에서 언니는 동네에서 친구들하고 고무줄놀이를 하고 놀아도 동생을 등에 업고 놀아야 했다. 이를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받아들이고 순응하는 언니도 있었겠지만, 어떤 언니들에게는 이 상황이 엄청난 부담과 짐과 장애로 작용했을 수도 있었으리라. 자신이 지금 등에 업고 있는 그 존재를 그냥 어디다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었으리라.


『레기, 내 동생』에서 언니는 쓰레기봉투가 되어버린 동생을 업고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는 부모에게 들키지 않고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고군분투한다.

어느 날 갑자기 동생이 실제로 쓰레기봉투가 되어버린 이 상황은 어쩌면 언니 리지 안에 있는 어두운 그림자가 동생 레미에게로 투사된 모습이라고도 볼 수도 있겠다.

따라서 쓰레기봉투는 바로 나 자신이 직시하고 싶지 않은 내 내면의 그림자와 같은 수많은 어두운 감정을 상징한다.


5. 서로가 부럽다

『레기, 내 동생』에서 언니 리지는 사사건건 동생이 아니꼽다. 동생 레미는 피자를 먹다가 접시를 깨뜨리고, 깨진 접시 조각을 치우다 손을 다친다.


여우 같은 동생이 그걸 놓칠 리 없다. 레미는 작정하고 울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가장 가여운 아이의 얼굴로. 엄마가 손가락을 호호 불어 줄 때까지 울음은 계속됐다. 나보다 겨우 한 살 어릴 뿐인데, 아홉 살이나 된 아이를 저렇게 오냐오냐 기르다니, 엄마도 참 문제다. (『레기, 내 동생』, p10)


그렇다, 드디어 본질에 다다랐다. 언니 리지가 동생 레미를 증오하고 쓰레기처럼 생각하는 근원에는 ‘엄마’나 ‘아빠’와의 관계가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언니는 자기와 달리 귀엽고 애교가 많은 여동생이 사고를 치자 엄마에게 혼날 것을 기대한다. 이런 기대와 달리 엄마는 다친 동생을 염려하는 것에 더해, 애먼 불똥을 언니에게 떨어뜨린다. 언니 입장에서 보면 설상가상이고, 상처 난 곳에 소금을 들이부은 겪이다.

하지만, 언니 리지만 그런 것이 아니다. 동생 레미 또한 같은 감정이다.


“그러는 언니는? 날 그렇게 갖다 버리고 싶었어? 내가 뭐가 그렇게 미워?”

“넌 맨날 엄마, 아빠한테 살살거리기나 하고, 잘못하고도 얄밉게 빠져나가잖아. 그런데도 엄마랑 아빠는 너 귀엽다 하고.”

“흥! 언니야말로 맨날 잘난 척만 하잖아. 그런데도 엄마랑 아빠는 언니 칭찬만 하고.”(『레기, 내 동생』, p87-88)


부모와의 관계에서 언니는 동생이 부럽고, 동생은 언니가 부럽다. 이런 면에서도 자매는 공평하다.


6. 내 안에 있는 언니, 언니 안에 있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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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세 명의 언니가 있다. 우리는 네 자매이다. 연령 면에서 큰 언니와 작은 언니가 서로 가깝고, 셋째 언니와 내가 서로 가깝다.


어릴 때 내게 있어 외지로 일하러 나간 큰 언니는 그 누구보다도 그립고 크나큰 존재였다. 내가 살갑게 대하고 가깝게 대할 존재가 아니라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유난히도 차분하고 공부를 잘하던 작은 언니는 집안의 보배 같은 존재로 든든한 조력자였다. 내가 어렸을 때는 나를 업고 나를 돌보아 주던 엄마와 같은 존재였다.


셋째 언니는 나와는 전혀 다른 부류의 존재 같았다. 『레기, 내 동생』에서 리지가 레미를 바라보듯 내게는 셋째 언니가 그런 존재였다. 하지만 셋째 언니 입장에서 보면 나라는 존재가 그러했을 것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언니 속에서 날 발견하고 언니는 내 모습 속에서 자신의 어떤 모습을 발견했을 것이리라.


7. 동지로서의 자매

『레기, 내 동생』에서 리지와 레미는 서로를 시기하고, 부러워하고, 그리고 서로에 대한 근본적인 믿음을 갖고 있다.


큰 언니와 둘째 언니보다 셋째 언니는 ‘언니’라는 명칭이나 나이를 떠나 어딘가 나와 같은 정신연령의 존재로 보았던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어렸던 내가 어린시절에 바라보던 큰 언니와 둘째 언니는 아주아주 크나큰 존재였다. 그런데 지금 우리 네 자매는 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중년의 여성들이다. 따라서 지금의 나는 언니답게라든가 동생답게라든가 식으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한 부모를 둔 근원적인 동지로서의 자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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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때로 언니들을 아니꼽게 생각할 때도 있었으며, 또한 아무것도 아닌 일로 원망을 할 때도 있었으며, 내가 여러 면에서 가장 의지하는 존재들이기도 했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서로가 자신 안에서 처리하지 못하고 버리지 못한 여러 감정의 쓰레기를 서로에게 버린 적도 있었다. 각자의 내면 안에 있는 쓰레기를 다른 자매에게 버리고, 자신들의 어린 시절의 상처를 서로에게서 보상받으려 한 적도 있었다. 이런 면에서 내게 있어 우리 자매는 내면 투쟁이란 전장에서 한 동지였으며, 그 전장을 해쳐 나오고 앞으로도 해쳐갈 든든한 우군인 셈이다.


8. 부러운 존재,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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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세 명의 언니를 어렸을 때부터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한다. 하지만 한때는 미운 감정을 가진 적도 있었고, 그들이 마냥 부럽기만 한 적도 있었다. 내가 그런 것처럼 어쩌면 우리 언니들도 어떤 면에서는 같은 생각을 나한테 투사했을 수도 있었으리라.


두 살 터울이 지는 바로 위 셋째 언니는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아름답고, 센스도 좋고 멋쟁이인 데다가, 청결하고 프로 요리사 버금가는 음식 솜씨를 지니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인 알프레드 아들러는 『삶의 과학』(정명진 옮김, 부글북스, 2014)에서 ‘부러움’과 ‘질투’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부러움은 인생에 유익하게 작용해야 한다. 부러움이 일과 지속적 노력, 문제 해결의 결과를 낳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경우라면 부러움은 절대로 쓸모없는 것이 아니다.

반면 질투는 훨씬 더 어렵고 위험한 정신자세이다. 유익하게 쓰일 수가 결코 없기 때문이다. 질투심에 불타는 사람이 유익한 경우는 절대로 없다.(『삶의 과학』, p135)


“질투는 나의 힘!”이라고 말하며 분발하는 사람을 목격할 때가 있는데, 너무 지나친 질투는 본인에게 해가 될 것 같다. 『레기, 내 동생』에서 동생 레미에 대한 질투심에 사로잡힌 리지가 자신의 감정의 쓰레기를 동생에게 투사함으로써 결국은 실체화된 쓰레기 더미를 등에 업고 밖을 헤매며 방황하는 장면은 그래서 굉장히 상징적이다.


9. 든든한 심리적 단련의 장이 되어준 자매관계

사회에 나와 보니, 나는 수많은 여성들 그룹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지금의 나는 이들과의 여러 관계 속에서 기쁨을 느끼고 삶의 보람을 느낀다.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만난 나의 언니들은 지금 내가 관계하는 많은 여성들과 잘 관계하며 살 수 있도록 든든한 심리적 단련의 장이 되어주었다.


아들러는 『삶의 과학』(정명진 옮김, 부글북스, 2014)에서 “응석받이로 자라면서 언제나 도움을 바라기만”하고, “혼자서 독립적으로 일할 준비가 되어있지”않던 한 사람의 경우를 예로 들며, “우리는 모든 아이들을 독립적인 존재로 키워야 한다. 우리가 아이들이 자신의 생활양식에 나타나는 실수들을 제대로 이해하도록 만들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그런 식으로 성장하는 아이는 무엇인가를 하도록 훈련을 받을 것이며, 혹여 잘못한다 하더라도 형제자매들 앞에서는 부끄러워할 이유가 하나도 없을 것이다. (p102)”라고 말한다.


비록 실수를 해도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안전한 심리적인 울타리 작용을 해준 형제자매들 덕분에 나는 지금의 오늘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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