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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랑 Nov 09. 2023

내 안의 녹슨 고철을 생각한다

찰스 키핑,《조지프의 마당》(서애경 옮김, 사계절, 2005)

<그림책 한번 읽어볼까?>

        찰스  핑의 《조지프의 마당》 


조지프는 자신만의 마당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조지프의 마당에는 생명체가 아닌 찌그러진 양동이, 망가진 자전거 등의 녹슨 고철이 자리를 차지다.


녹이 슨 고철 무더기는 조지프의 돌바닥 마당에 방치된 채 비를 맞고 햇볕을 쬐고 바람을 맞고 눈에 덮인다. 여기서 마당은 무엇을 상징하고, 망가진 자전거 등의 녹슨 고철은 무얼 상징하는 것일까?


마당은 집으로 들어서는 첫 번째 통로이고, 아이들이 안전하게 뛰놀 수 있는 놀이의 공간이 되기도 하고, 나무와 화초 등 생명체가 움트는 생명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마당은 집에서 가장 열려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조지프의 마당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망가진 물건들이다.


불필요한 녹슨 고철이 마당을 점령해 마당이 마당으로서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조지프의 마당에는 “벌레도, 새도, 고양이도” 없다.


고철은 빨간색으로 그려졌다. 이제는 골칫거리가 되었지만 한때는 조지프에게 큰 역할을 다했다는 상징일까?

그래서 조지프 또한 버리지 못하고 방치한 것일까?

내게 녹슨 고철 같은 것은 무엇일까?

나와 함께 했지만 이제는 소용없는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일까?


어느 날 조지프는 고물을 사러 온 고물장수에게 자신의 마당에 있던 고물을 가져가 한 그루 장미 나무와 바꾼다.


마당의 깨진 돌바닥을 들어내고 조지프는 장미를 심는다.

그리고 장미가 꽃을 피우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다.


붉은 녹슨 고철은 붉은 장미로 바뀌고 그러자 마당의 상징성도 변환된다.


조지프가 자신의 마당에서 장미를 피우기까지 거치는 시행착오의 과정은 마치 사랑하는 존재를 대하는 태도 같기도 하고, 자신의 꿈이나 열망을 키워가는 과정 같기도 하다. 한편으론 너무 예뻐서 섣불리 장미를 꺾어 장미가 시들어버린다거나 너무 과보호한 나머지 장미가 죽어버리는 장면 등은 자녀를 양육하는 자세를 은유적으로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조지프는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쳐 마침내 장미정원을 갖게 되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조지프가 잘못한 것입니다.” 라며 자신의 지금까지의 시행착오를 솔직하게 시인하는 장면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꽃이 피자 벌레와 새와 고양이가 찾아오고 조지프는 행복하다.

마지막 장면에서 한 송이 장미를 바라보는 조지프의 얼굴이 평온하다. 장미와 소년이 하나가 된 것 같다.

조지프의 마당에 핀 장미는 어쩌면  한 인간의 인격을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내 마음이라고 하는 정원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나는 얼마나 내 마당을 잘 가꾸고 있는지 돌아본다. 타인에게 내어줄 꽃이 한 송이라도 나한테 있는지도 생각해 본다.


나무의 나이테 같은 무늬가 소년의 온몸을 감싸기도 하고 때때로 그림은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하다. 마치 인간 자체가 그러하듯 복잡하다.


찰스 키핑의 그림책 《조지프의 마당》에서는 봄여름가을겨울이 비중 있게 묘사된다. 사시사철 계절은 바뀌는데 그 자리 그 모습인 채로 놓여있는 녹슨 고철처럼 어느 시기에 고착된 채 놓여있는 것은 없는가 살펴본다. 나도 내 마당에 방치된 녹슨 고철을 내다 팔아 엿으로 바꾸어먹든 씨앗을 얻든 묘목을 얻든 하고 싶다. 먼저 엿 바꿔 먹을 수 있는 녹슨 고철을 알아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일이 무엇보다 먼저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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