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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랑 Nov 13. 2023

분꽃 화분 2년 차 반성기

하루와 하루 사이+그림책

처음으로 분꽃을 키운 작년 1년 차 때내가 사는 다세대 주택 주인 어르신이 어린 모종을 두 그루 건네주셔서 키우기 시작했다. 단 두 그루였지만 나름의 정성을 다한 덕분에 노란색, 진분홍색, 무지개색 색색의 많은 꽃들과 씨를 얻었다.


그리고 올해 4월 중순에 씨를 뿌려 분꽃 재배 2회 차를 맞이했다.


시작은 좋았다. 화분에 심은 씨앗이 다 싹이 튼 느낌이 들 정도였다. 옳거니, 하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서툴지만 나름 분갈이도 했다.


작은 숲처럼 분꽃잎이 무성했고 이윽고 하나씩 꽃망울도 피어올랐다.


분꽃은 예뻤다.


그러자,  찰스 키핑의 그림책 《조지프의 마당》에서 조지프가 시행착오를 거쳐 다시 되살아난 장미를 꺾지도 않고, 가만히 가만히 지켜보자 벌레들이 찾아오고, 새들이 찾아오고, 고양이 찾아온 것처럼 나의 분꽃 화분에도 어린 사마귀가 나타나고 거미가 알을 까고 송충이가 잎사귀를 갉아먹었다.

잎사귀 위 어린 사마귀
거미의 알집
잎사귀를 갉아먹고 있는 송충이

어린 사마귀가 잎사귀를 갉아먹은 자국을 발견하고, 송충이의 똥을 발견했을 때는 정말이지 "허걱"했다.


길길이 날뛰며 찾아온 손님들을 내쫓아낸 조지프처럼 나의 내면 또한 불꽃이 일었다.

어떻게 알고 찾아왔을까. 나는 나의 분꽃 정원에 침범한 벌레들이 잎사귀를 갉아먹어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소심한 나는 어린 사마귀와 송충이를 죽일 수도 없었다. 비닐봉지에 담아 넓고 넓은 야생 들판에 옮겨놓았다.

조지프는 벌레와 새와 고양이로부터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외투로 감싸는데, 이는 결국 바람과 햇빛과 비마저 차단하고 만다. 위하고 보호한다는 행동이 결국은 나무를 시들게 하고 죽이고 만다. 나의 분꽃 또한 애지중지했다고 스스로는 생각했지만, 뿌리내릴 만큼 화분이 깊은 것도, 제때에 분갈이를 제대로 잘 한 것도, 영양가 있는 거름을 준 것도 아니었다.


조지프는 곰곰이 생각하면서 잘못을 뉘우치지만 난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도 없을 정도로 내 잘못이다. 나의 분꽃은 힘이 없어서 아침 6시에 일어나 나가보면 이미 져있고, 꽃은 작았고, 금방 시들었다. 수십 송이가 한꺼번에 화려하고 또 화려하게 만발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척박한 환경에서도, 나의 분꽃은 예뻤다. 모든 게 착오일지라도 피어난 나의 분꽃은 예뻤다. 그리고 그 예쁜 아이들이 스스로 내일로 이어지는 씨앗을 품었다. 참으로 장하고도 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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