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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랑 Mar 21. 2024


‘꿈’이란 말.


어린 시절에 참 많이 들었었지, “네 꿈은?”하고.

어른이 되어서도 꿈모임 동무들 자주 주고받는다. “무슨 꿈 꾸어?”하고.


나는 지금도 여전히 두 개의 꿈을 꿈꾸며 산다.


한때는 여군이 되고 싶었고, 기자를 꿈꾸던 시기도 있었고, 고등학생 때부터는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찌 되었거나 지금 글 쓰는 일을 하는 나는 꿈을 이루며 사는지도. 10대 후반부터 추리소설을 습작하고, 문예창작과에 들어가 합평을 하고, 20대 후반 무렵부터 동화를 써서 직접 작은 책자로 꾸며보기도 했다. 그 자체로 참 즐거운 작업이었다.


지금 내 꿈은 에세이 작가로 성과물을 만들어 대중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그래서 작년부터 투고노트까지 준비해 본격적으로 투고 작업을 시작해 현재 백 군데 넘게 투고했다. 투고 작업을 통해 많은 사회 경험을 하고는 있지만, 은근히 힘들다. 하지만 내가 두드리지 않으면 저 멀리 있는 출판사는 나에 대해 알리 없으니 궁한 내가 문을 두드릴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다.


어린 시절의 꿈은 동경에 가까웠다. 그래도 마냥 허황된 꿈만은 아니었는지, 지나고 보니 나도 모르게 꿈에 방향을 맞추며 나름의 과정을 거쳐왔다는 생각이 든다. 금 다시 꿈꾸는 이 꿈이 나를 나아가게 하고 사회 속 다양한 한 명의 구성원으로 자리하게 하리라는 걸 안다. 그래서 더 꿈을 이루고 싶다.   


동음이의어, 또 하나의 꿈. 어린 시절에는 밤 새 꾼 꿈을 실제 내가 겪은 현실이라고 착각할 때가 있었다. 나도 모르게 기억에 왜곡이 생기며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회상할 때 꿈에서 겪은 일을 마치 실 체험처럼 말하기도 했다. 꿈이 한 인간의 내면에 끼치는 영향은 참으로 큰 것 같다.  


20대 전후 사회 속에 발을 디디며, 현실을 살아가는데 급급해 한동안 잊고 살았다. 다시 꿈이 찾아온 건 일본에 있을 때였다. 박사 논문을 제출하고, 심사를 받으러 가는 날 새벽에 꿈이 찾아왔다. 항상 꿈을 꾸었는데, 이날부터 다시 꿈을 기억하기 시작했다는 말이 맞을지도. 이렇게 다시 시작된 꿈은 중년 이후 인생의 알 수 없는 여러 일들을 경험하며 근 십여 년간은 꿈을 살피며 의지해 살았던 것 같다. 가끔 막막하고 길을 잃고 헤맬 때 꿈이 위로하고 방향을 재정비해준다.


정말이지 ‘꿈’이란 동음이의어는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서로 보완하는 복된 낱말이다. 기약이 없고 함의를 읽어내기 힘든 날들이지만 나만 포기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내 꿈을 방해하거나 뺏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가 꿈꾸는 길 위에 서서, 두 개의 꿈을 꿈꾸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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