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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랑 Mar 14. 2024

빨래


순식간이다. 수건 빨래가 쌓여간다.  전용 서랍장 열어보니 어느새 수건이 하나밖에 안 남았다. 빳빳하게 잘 마른 수건 가득 어있었는데 벌써 바닥이 보인다. 사용 속도를 빨래 속도가 따라잡지를 못한다.


마치 돈 쓰는 건 쉽고 버는 건 어려운 것처럼 애써 벌어 간신히 들어온 돈이 사라지듯 그렇게 수건이 사라진다. 다른 사람이 쓴 것도 아닌 다 내가 쓴 거다.  


이래저래 벌써 10년째 손빨래 중이다.

형제들이 선물해 준 성능 좋은 세탁기가 있었다. 좁은 집에서 좁은 집으로 이사하는 와중에 망가뜨리고 말았다. 외출복과 이불은 코인 빨래방을 활용한다.


빨래가 쌓여있는데도 손 하나 까닥하기 싫을 때가 있다. 서랍장에 새 수건이 달랑 하나가 남았을 때에야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빨래를 시작한다. 어제도 그제도 차랑차랑 밝은 햇살이 방안 가득했는데, 하필이면 빨래 한 날 뿌옇게 흐릴 때가 많다. 세상사 내 뜻대로 되는 날이 없다.


축축한 빨래가 강한 열 건조기에서 30분 만에 마르듯 그렇게 순식간에 마를리 없다. 어느 정도의 절대적인 기다림을 필요로 한다. 열받아 건조기에서 마른 수건은 맥없이 말랑말랑하고, 자연 속에서 마른 수건은 빳빳하니 아주 생기가 있다.   


어느 날은 유독 구정물이 많이 나올 때가 있다. 더러워졌구나. 수건을 통해서 안다. 내 몸에 묻은 물기지만 그냥은 못 닦아, 수건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수고를 다한 수건을 하마터면 마구 대할 뻔했다. 친숙한 관계나 공동체 속에서도 물기 묻은 축축한 감정을 살펴 닦아준 존재를 마구 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거를 아는 친숙한 관계일수록 본인도 모르게 무의식 중에. 현재가 아닌 과거의 어느 시간에 멈춘 채 반복적으로. 나 또한 그러고 있는 건 아닌지 점검하며, 서로 물기를 닦아주고 서로 생기를 주고받는 존재가 내 주변에 많으면 얼마나 좋을까 염원해 본다.


할 수만 있다면 남은 평생 내가  수건과 속옷은 내손으로 아 사용하고 싶다. 나와 내 주변 상황을 살피고, 정신을 살피며, 하나하나. 어지간히 빨래를 좋아하긴 하나 보다. 나만 행동하면 어느 결에 빳빳이 말라 개운한 날을 함께 할 것을 알기에, 빨래를 하여 널고, 마르기까지의 그 수고스러움이 좋다. 그 기다림이 좋다. 빨래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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