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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랑 Mar 28. 2024

스트레스


내가 스스로 자초한 결과이다.


석 달 전이었다. 엄청나게 커다란 눈이 펑펑 내리던 날, 친구들과 함께 전시회를 보러 가기로 약속하고 제시간에 맞추어 미술관에 입성하여 막 그림을 보려 하는데 전화가 왔다. 어린이문학 관련 계간잡지 편집자 분이었다. 여름호 실릴 일본 어린이문학 관련 원고청탁하는 전화였다. 


3월 말이 마감이었다.


석 달이라는 여유가 있었는데도 내가 본격적으로 움직인 것은 한 달 전이었다. 어느덧 마감 날짜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자료는 갖춰졌다. 방법론을 정해 쓰면 되었다. 20일 전쯤부터 글쓰기에 돌입하였다. 한 줄 써놓고 3일 지나고 두 줄 써놓고 또 3일이 지났다. 그래도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계속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만 했다. 집중하고 또 집중해야만 했다.


이럴 때 왜 그렇게 동생은 전화를 많이도 하는지, 왜 그렇게 다른 일이 생기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지금 이 스트레스 상황은 다 내가 자초한 결과인 것을 잘 알고 있다. 전화를 받았던 석 달 전 그때 바로까지는 아니어도, 두 달 전에만이라도 시작을 했더라면 이렇게 안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다. 물론 전화를 받았을 때부터 어떤 식으로 자료를 확보하고, 무슨 자료를 보고, 일본의 어떤 분들께 자문을 구할지 믿는 구석은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5일 전부터 새벽 3시에 눈을 떠 바로 기상해 글을 쓰고 있다. 그러다가 시간이 되면 아르바이트를 나가고 일을 하고 공부 모임을 참석하는 날이 이어졌다. 그러다 지치면 무조건 자고 다시 3시에 눈을 떴다. 그렇게 5일째, 동생은 일일 행사처럼 기가 막히게 내가 글쓰기에 집중하는 시간에 전화를 걸어 언제나 똑같은 질문을 한다. 동생의 전화는 토요일, 일요일도 없다.


“밥은 먹었능가?”

“시간이 몇 신디 안 먹었겠냐!”

좋은 말이 안 나간다.


“건강한가?”

“갑자기? 맨날 통화하면서?”

“물어볼 수 있지.”

“지금 내가 건강한지 안 건강한지 모르겄다. 근디 밥은 잘 먹고 있어야. 먹어야 쓴게.”

절대로 좋은 말이 안 나간다.


지적 장애우인 동생은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한다. 그러다보면 나 또한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한다. 무한 반복이다.


“동생이 걱정게 물어볼 수도 있지 누나는 왜 그런가.”

“응 그런디 지금은 나도 정신이 없어.”

“누나 목소리 좀 들을라고 전화했는디 성내는가! 누나는 그래서 못 써.”

“못 쓰든 잘 쓰든 그건 됐고. 난 지금 쓰는 글은 잘 써야겠어야.”

이렇게 계속 동생이 물고 늘어진다. 안 되겠다.


“너, 3월 말까지 전화하지 마. 4월에 통화하자. 내가 말까지 원고 마감이어야.”

“그래 알았어.”

“잘 지내고 그때 다시 보자.”

“결과 좋기 바래.”

“나 하기 나름잉게, 결과는 따라주겄지. 나만 허면.”

나는 끝까지 좋은 말이 안 나간다.


다 내가 스스로 자초한 일이기는 하지만 쌓이고 쌓인다. 쉬운 일이 하나도 없다. 글이 잘 풀리면 쌓였던 스트레스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연스럽게 풀리겠지. 그렇다면 이 일을 해내야한다. 지금 이 일에 집중하고 또 집중할 도리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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