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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랑 Apr 04. 2024

신천지


‘신천지’처럼 오염된 낱말도 또 없을 것이다.


며칠 전 독서 모임이 있어서 걸어가던 중이었다. 앞에서 오던 두 여성이 난데없이 날 향해 생글생글 웃었다. 친구나 이웃도 아무 이유 없이 이런 환한 미소를 짓지 않는데, 길 가다가 처음 본 여성들이 날 향해 함박웃음을 날린다.


내가 미처 경계 태세를 갖추기도 전에  “신천지에서 나왔습니다.”며 신문을 내밀었다. 얼굴에는 여전히 웃음이 가득했다. 그러면서 “꼭 읽어보세요.” 한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 때  뉴스를 통해 처음으로 ‘신천지’란 종교단체를 알게 되었다. 나는 일본에서 공부할 때부터 이단에 관심이 많았다. 인터넷 기사나 유튜브를 검색해 신천지에 대해 찾아보았다. 따뜻한 말과 미소로 사람에게 접근하여 신천지 신도로 끌어드리는 수법이 악랄하기 그지없었다. 살펴보면 모든 이단은 돈과 우월주의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가장된 선과 친절로 타인을 위하는 척하지만 결국엔 자신들의 이익만을 생각한다.

 

엊그제였다. 나무마다 새순이 돋아나는 봄, 꽃이란 꽃이 하루가 르게 피어나는 봄날 산책로에서 산책을 하고 있는데, 어떤 두 사람이 막 파릇파릇하게 피어오른 나무의 어린 새순을 따고 있었다. 그냥 따는 수준이 아니라 갈퀴로 긁어내듯 그렇게 손가락으로 훑고 있었다. 보다 못해 산책하던 한 여성분이 내게로 다가와 “따더라도 눈치라도 보는데 저 사람들은 눈치도 안 본다.”며 그 뻔뻔스러움에 혀를 내두른다. “사나운 사람이 있어야 못 따게 말리기라도 할 텐데.” 아쉬워한다.


조금 있자 동네 아저씨가 나타나 왜 새로 난 나무 새순을 그렇게 다 따고 있냐며 그만 따라고 소리를 지른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들은 척도 안 하고 계속 새순을 땄다. “그만들 따고 이제 가세요!” 하고 강한 어조로 몇 번을 말하자 두 사람은 새순이 가득 든 봉지를 들고 마지못해 이동을 하면서 앞서 가던 여성이 “오지랖.”하고 말한다. 뒤따르던 또 한 여성이 아저씨 쪽을 바라보며 “야 니 마누라도 따.”라고 말한다.


저편에 있던 아저씨가 이 말을 못 들어서 망정이지, 나무에서 똑똑 새순을 따던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신천지 종교집단 사람들 모습과 중첩되었다. 남의 교회까지 들어가 똑똑 신자들을 따갔던 신천지 사람들. 자신들이 한 행동은 나몰라라 하고 괜한 사람까지 음해하며 마치 박해라도 받은 듯 분해한다. 지금 이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무지막지하고 폭력적인지 전혀 인지를 못하고 있었다. 금 눈앞의 이익과 안락만을 추구하고 자신을 직시하는 힘이 없는 이들이 그래서 무섭다.


 나는 이 두 사람을 좀 따라가 보았다. 그랬더니 어느 길목에서 서로 깍듯이 인사하며 웃는다. 이들은 이렇게 주변 사람들에게도 웃음을 날리고 있겠지. 신천지 사람들이 아무 이유도 없이 길 가던 내게 웃음을 날렸듯이. 웃음까지도 미소까지도 이들은 오염시키고 있었다.


신천지란 어떤 특정 교리를 믿고, 어떤 자리를 확보하고, 돈으로 산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타자의 힘든 상황이나 맹점을 기가 막히게 알아채고 파고들어 접근하는 자를 경계하고 내 감정과 내 상황은 스스로 잘 챙겨 아무에게나 쉽게 손을 내밀지 말고, 무턱대고 의지하거나 기대고자 하는 마음을 자제해야겠다. 지금 눈앞에 있지만 인지하지 못하고 있거나 곧 다가올 나의 신천지를 지키고 망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두 눈 똑바로 뜨고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어딘가에 눈 뜨고 코 베어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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