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마를 해야 할까. 나의 극세사 머리카락, 산으로 간다. 파마를 하면 좀 더 봐줄 만할까. 다들 어쩜 그렇게 예쁘게도 관리하는지, 부럽다. 날이 흐리고 비라도 올라치면 더 감당하기 어렵다.
만약에 드라이기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렇게까지 드라이기에 의존하게 될지는 꿈에도 몰랐다. 꿈에도 몰랐던 일들이 앞으로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겠지. 오랫동안 썼던 드라이기가 망가졌다. 머리를 말리는 도중에 갑자기 불빛을 내며 터졌다. 전조는 있었다. 드라이기 줄이 풀어도 풀어도 자꾸 꼬불꼬불 꼬여 언젠가는 망가지겠지 싶었는데 막상 바로 눈앞에서 터지니 망연자실했다.
전자제품이라곤 노트북과 냉장고와 잘 쓰지 않아 어딘가에 있을 다리미와 드라이기뿐이다. 다른 전자제품은 없어도 별 불편을 못 느끼고, 아직은 살 생각도 없다.
드라이기는 즉시 샀다.
그렇다고 드라이기를 능수능란하게 잘 다루는 것도 아니다. 서툰 빗질과 드라이기 열로 어느 정도 기본을 잡고 그다음은 그날의 바람과 기온과 내 몸 상태에 맡긴다. 극세사 머리 간혹 운 좋으면 멋진 형태를 띤다. 그동안 큰 관리가 필요하지 않았다. 묶고 다니면 편했던 긴 머리카락을 지금의 단발로 자른 건 유튜브에서 ‘잉글리쉬맨 인 뉴욕’을 부르는 스팅의 뮤직 비디오를 보고 나서였다. ‘멋있다! 나도 저런 머리를 하고 싶다’란 동경심이 생겼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을까. 가정 교과서였는지 무슨 교과서였는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교과서 면지인가 본문 어딘가에 여러 형태의 단발머리 사진 이미지가 있었다. 스팅의 머리 모양에서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부터 인터넷에서 검색해 실행한 혼자서 긴 머리카락을 자르던 방식을 활용해 몇 날 며칠 다듬기를 거듭해 단발 형태를 만들었다. 보다 못해 동화작가 지인 선생님이 뒷머리를 단정하게 다듬어주시고 그 후 오랜만에 미장원 두 군데를 들러 지금의 머리 형태에 이르렀다. 동경은 했지만 내게 어울리는지 어떤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머리카락 관리가 어렵다 보니 머리에 주목하게 되고 덕분에 내 머리카락의 특성을 알아간다. 시간을 더 들이면 조금은 봐줄 만한 모습이 되겠지. 충분한 영양을 주지 않는데도 내 머리에 붙어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날이 흐리다. 봐줄 만하기는커녕 역시나 머리카락이 산으로 간다. 파마를 할지, 이 문제는 진지하게 고심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