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고 있다. 한번 갈 때마다 4~6권을 읽어준다. 이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슨 책을 읽어줄 것인가이다. 그래서 주마다 적게는 한 군데 많게는 두세 군데의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선별 작업을 진행한다.
먼저 도서관 오픈 서가에서 그림책을 꺼내 하나하나 살펴보고 적당한 그림책을 빌린다. 이렇게 두세 군데의 도서관을 돌며 작업한다. 그렇게 모아진 그림책을 집에서 다시 읽어보고 살펴 두 번째 선별 작업에 들어간다. 도서관에서 보았을 때에는 좋았던 그림책도 집에서 다시 꼼꼼히 읽어보면 적당하지 않을 경우가 많다. 이런 식의 선별 작업을 거쳐 아이들과 함께 읽을 책이 정해진다. 이 과정에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인다. 실제로 이렇게 들고 간 그림책의 경우는 실패가 적다.
하지만 꼼수를 쓰거나 절대적으로 들여야 할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 역시 실패할 확률이 높다.
지난 주였다. 평소 같으면 월요일부터 동네 그림책도서관을 들러 책을 반납하고 시간을 들여 그림책 탐색을 하는데, 이날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도서관에 갈 틈이 없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인 수요일도 도서관을 갈 수가 없었다. 목요일이 되어서야 두 군데 도서관을 들렀다. 먼저 우리 동네 그림책도서관을 갔더니 관장님이 계셨다. 책을 빌리는데 다음 일정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그래서 충분한 시간을 들이지 않고 위쪽 서가에서 뭉텅이의 책을 뽑아 순식간에 8권의 책을 선별했다.
그런 나를 눈여겨본 관장님이 “오늘은 바로 빌리시네요.”하신다.
나는 “이 코너가 다 노다지네요.”하고 대답했다.
내용은 살펴보지도 않고 익히 아는 두세 명의 작가 이름과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은 장르의 그림책을 보고는 그렇게 대답한 것이다. 서둘러 집에 들러 빌린 그림책을 내려놓고 반납할 책이 있던 또 다른 도서관을 향해 달려 나갔다. 걸어서 30분 걸려 도착한 두 번째 도서관에서는 무슨 행사를 하는지 어린이 손님이 많았다. 그런데 반납만 하고 도서관 근처에서 다른 볼일이 있어서 책을 빌리지 않고 서둘러 다른 곳을 향했다.
생각은 있었다. 금요일 오전에 하는 오프라인 그림책 독서모임이 끝나고 정독도서관을 갈 생각이었다. 그래서 정독도서관을 갔다. 날은 여름처럼 더웠고, 새로 단장한 도서관을 단체로 견학온 사람들로 도서관은 북적거렸다. 게다가 나는 배낭이 아닌 가방을 들고 나왔다. 독서 모임을 위해 이미 지참한 그림책과 도서관에서 빌린 전공분야 관련 도서 무게로 새로운 그림책을 빌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금요일 밤, 동네 그림책도서관에서 노다지 코너라고 관장님께 떵떵거리며 빌려온 8권의 그림책을 하나하나 읽으며 선별 작업에 들어갔다. 노다지는 없었다. 내가 노다지라고 부른 진짜 이름은 안이함이고 착각이고 태만이었다. 평소 같으면 절반 이상의 책을 고를 수 있었는데, 이날은 단 두 권밖에 못 건졌다. 지난주에 준비해 둔 한 권을 합쳐 3권뿐이었다. 비상용으로 집에 있던 그림책 두 권을 더 챙겨 일요일 일찍이 집을 나섰다. 다행히 일요일마다 그림책을 읽어주러 가는 곳은 그림책이 많은 작은 도서관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그곳에서 3권의 그림책을 선별했다. 그림책 6권을 아이들에게 읽어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평소보다 더 반응이 좋았다. 천만다행이었지만, 이날의 나는 참으로 부끄러웠다. 노다지는커녕 스스로 부끄러움이 많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