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란 말이 이토록 무겁게 다가올지 상상도 못 했다. 어렸을 때에는 그림자밟기 놀이를 하고 땡볕 더위 땐 나무 그늘을 찾았다.
누군가의 뒤에서 묵묵히 도와주는 숨은 조력자 같은 이를 그림자라 말한다. 하지만 분석심리학에서 말하는 그림자는 또 다르다. 존 샌포드의 《융 심리학 악 그림자*》를 보면 그림자란 “우리 인격의 어둡고 두렵고 바람직하지 않은 면(p91)”을 가리키며, 이를 인지하고 의식화하지 않으면 결국 내 안의 또 다른 ‘그림자 인격’으로 남아 관계 속에서 그런 성향의 사람을 마주칠 경우 기피하거나, 열등한 존재로 여길 수 있다고 한다. 사회나 공동체에서 마주치는 어떤 인물이 이유 없이 두렵고 싫다면 그가 나의 그림자 인격의 모습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내 안의 미성숙한 모습은 봉인한 채 타자를 열등한 존재로 몰아세운 적은 없었는지 떠올려본다.
어둡고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을 생각하다가 뜬금없이 어린 시절 자기소개 때 장점과 단점을 말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단점을 알고 개선하여 장점으로 변환할 수만 있다면, 이윽고 장점화된 그 단점은 나 자신의 강력한 무기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그림자를 지니고 있다. 난감한 상황은 공동체 구성원 중의 누군가가 다른 구성원에게 자신의 그림자를 투사하면서 방어적인 태도와 공격적인 태도를 취할 때이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들이 상대에게 얼마나 무례한 행동을 하는지 모른다는 것에 있다.
숨겨진 그림자는 빛이라고 생각하는 상황이나 그런 대상을 맹종하는 순간 반대로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존재에게 향하는 태도나 어투를 통해 드러날 때가 있다. 환한 빛 속에서 검은 그림자가 또렷이 드러나듯이. 지향하는 바와 다른 존재를 비하하고 무례한 태도를 취하며 그림자를 드러낸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보면 중년의 주인공이 불확실한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로 들어갈 때 그림자를 떼어놓고 들어간다. 염려와 달리 그림자는 사회 속에서 홀로 꿋꿋이 살아남아 본체와 다시 합일로 이른다. 비록 본체가 그림자를 떼어내긴 했지만 그림자 자체를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든다.
안데르센이 쓴 <그림자>란 작품에서는 학자의 몸에서 떨어져나간 그림자가 인격화되고, 강화되며, 나중에는 본체인 학자를 죽음으로 몰고간다.
버리고 싶고, 기피할지라도 의식화하고 통합해야 할 나의 또 다른 모습으로서의 그림자. 어렵지만 그림자를 인식도 못 하는 캄캄한 상황보다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드러난 그림자를 계기로 인식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서로의 거울이 되어 그림자를 확인하고, 가뭄처럼 타들어가는 심리적 상황 속에서 서로의 그림자를 그늘 삼아 잠시 쉬면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 존 샌포드, 심상영 옮김, 《융 심리학 악 그림자》, 한국심층심리연구소, 2010
**대문이미지는 독서코칭을 다니는 작은 도서관 그림책 읽기 모임 초등 6학년 학생이 그린 그림을 허락을 받아 게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