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이랑 Feb 29. 2024

계단


전철을 탈 때마다 습관처럼 계단으로 향한다.


일상적으로 군중의 발길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 전철. 내게는 그 전철로 향하는 계단이 단단한 집단 공동체의 또 다른 현현으로 다가온다. 계단을 믿고 계단을 딛으며 한 계단, 한 계단, 느리지만 확실하게 그 길을 내딛는다.  


한 번에 세 계단을 오를 순 없지. 대여섯 계단은 꿈에서나 올라볼까. 한 계단씩 차곡차곡. 계단을 오르며 몸도 단련하고 정신 상태도 챙긴다.


계단은 내려갈 때가 무섭다. 마스크를 끼고 안경까지 낀 데다가 안경에 김이라도 서리면 발을 헛디딜까 긴장하며 발밑을 주시한다. 올라갈 때는 나 자신의 힘든 것만 보였는데 내려갈 때 먼지가 잔뜩 끼고, 얼룩 투성인 계단이 보인다. 때론 한쪽이 무너지고, 패인 계단도 있다. 비로소 딛으 오르고 내려가는 계단의 현실을 본다.


계단을 뒤에서 읽으면 단계. 계단(階段)과 단계(段階)는 같은 한자를 쓴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르고 내려가듯, 한 단계 한 단계 차곡차곡, 내려올 때 헛디뎌 골절상을 입지 않도록. 그래야 오르고 내려오고, 또 오르고 또 내려오고, 그렇게 삶을 속할 수 있을 테니.


오늘 올라왔던 계단을 다시 내려다. 오름과 내이 저 멀리 있지 않고 한 계단에 있음을 확인한다. 전철을 타러 계단을 내딛으며 내가 발 딛고 가는 길을 직시한다. 나 또한 군중 속 그 누군가가 내딛는 한 계단 됨을 꿈꾸며 그렇게.




  

이전 01화 흙탕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