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에는 웅덩이에서 노는 것을 좋아했다. 웅덩이 안에 하얀 구름이 담길 때도 있었고, 나뭇잎이 동동 떠있을 때도 있었다. 비가 온 뒤 웅덩이 가득 물이 차면 성큼성큼 들어가 놀았다. 신발이 젖거나 말거나 옷이 젖거나 말거나 상관없었다. 그러다 보면 웅덩이는 순식간에 흙탕물이 되었다.
한 번은 동생이 맨발로 흙탕물에서 놀다가 병조각에 발을 베어 집까지 업고 간 적이 있었다. 업고 오는 내내 동생 발에서 피가 흘러 젖은 흙길에 떨어졌다. 웅덩이에 고인 흙탕물 속에 무엇이 들어있을지 알 수 없었다. 말랑말랑한 흙길에 파인 웅덩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 속에 유리 조각을 품고 있었다.
며칠 전 비 오는 날 길을 걷는데 달리던 차가 흙물을 튕겨 내 상체 가득 튀었다.
같은 시각 같은 길거리 위를 움직이고 있었지만 자동차는 너무 빨랐다.
물리적 한 공간에 있어도 심리적 속도감이 달라서 주변 사람들을 닦달하거나 채근하는 사람이 있다.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치고 들어온 한 마디로 흙탕물을 뒤집어쓸 때가 있다. 타고난 급한 성격 때문만이 아닌 지금 그 사람 마음에 흙탕물이 고여있는 상태라면…. 이 사람은 흙탕물이 고인 웅덩이 위를 달리는 자동차 같은 사람이구나. 그때까지는 몰랐다. 그 입에서 흙탕물이 뿜어 나왔을 때에야 비로소 알아챘다.
그러면서 나 자신의 상태 또한 인식한다. 아, 나도 웅덩이가 고여있었구나. 남한테 튕기지만 않았을 뿐 내 웅덩이 또한 흙탕물이 되어가는 상황이었던 것일까. 그냥 넘겨도 좋으련만 불편하다. 너그러운 마음이 일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마음 어딘가에, 세월 어딘가에서 파인 웅덩이가 있다. 내 웅덩이는 지금 어떤 상태인가. 하늘을 담고 있는가. 흙탕물인가. 흙탕물일지라도 첨벙첨벙 놀 것인가. 어릴 때 나와 지금의 나는 너무나 달라서, 흙탕물 속에서 첨벙첨벙은 못 논다. 흙탕물 웅덩이를 피해간다. 섣불리 첨벙거려 진흙탕을 만들기보다는 가만히 스스로 정화할 때까지 기다리고 싶다. 내 흙탕물 또한 정화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