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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랑 May 08. 2024

아침 햇볕

소요 시간: 3시간(7:00~10:00)

행선지: 동네 뒷산

방식: 걸어서


6시 50분에 눈을 떴다. 10분 만에 준비 완료하여 밖으로 나갔다. 목적은 아침 햇볕. 창밖을 보니 햇살이 너무 아름다워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바깥이 불렀다.


우리 동네 들판으로 향했다. 며칠간 내리 내린 비로 아카시아 꽃송이, 설익은 버찌, 개복숭아 열매 등이 후드득 떨어져 있었다.


이른 아침마다 길고양이 밥을 주시는 분을 만났다. 2년 전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기 길고양이 형제 네 마리가 태어났을 때 보살펴주신 분이다. 한겨울이 닥쳐 네 길고양이 아기 형제는 이분이 사시는 아파트로 들어가 살게 되었는데, 여름이만 적응을 못하고 다시 밖으로 나와 돌아다니곤 했다. 나는 그때 들판에만 가면 여름아, 여름아 하고 불렀었다.


여름이가 죽었다고 한다. 어느 날 집에 들어온 여름이는 그 후 구석에 숨어들어 좀처럼 나오지 않고 부들부들 떨며 홀쭉하게 말라만 갔는데 어느 날 스스로 나와 여성분이 목욕을 시켜 하룻밤 데리고 잤는데 엄지 손가락 물려 두 달이나 고생을 했다며, 손가락을 보여주셨다.


병원으로 데려가려고 한 그다음 날 여름이가 죽었는데, 같은 형제 길고양이 세 마리가 괴성을 지르며 울부짖었다고 한다. 이분은 집에서 고양이 17마리를 키우는데 여름이네 형제는 먹을 것도 서로 양보하고 그렇게 애틋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토록 슬퍼한 형제들도 여름이를 묻어준 다음날부터는 다시는 그런 괴성을 지르며 울지 않았다고 한다.


여름이의 죽음이 슬프다. 집고양이가 체질에 맞지 않았던 여름이가 야생 속에서 잘 지내기를 바라고 또 바랐었다.


이분 댁에 남아있는 봄, 가을, 겨울, 형제 고양이들은 아직도 여름이를 기억하고 있을까. 내색은 하지 않아도 그들이 기억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곧바로 뒷산으로 올라가지 않고, 햇볕을 따라 한참을 우회하여 생태 공원 쪽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는다. 어느 아파트 단지 앞을 지나는데 갑자기 하얀 털북숭이 강아지 한 마리가 내쪽을 향해 달려오고 바로 뒤를 가벼운 여름옷차림을 한 여성이 뒤쫓아오며 잡아주세요, 한다. 내가 손을 내밀자 강아지가 컹컹 짖는다. 결국 주인의 손에 붙잡혀 흰 강아지는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갔지만 강아지는 무슨 이유로 바깥을 향해 질주했을까.


생태 공원에는 버드나무 꽃가루가 폴폴 날다. 산으로 들어가는 계단을 올라 정상을 향했다. 그곳에 햇살이 가득했다. 산속은 하얀 때죽나무 꽃과 아카시아 꽃, 그리고 찔레꽃 향기로 세상 은은했다. 흙길에는 꽃송이 함박눈처럼 떨어져 있었다.    

나무 열매도 후드득 떨어져 있었다. 멧비둘기가 걸어 다니며 열심히 열매를 주워 먹고 있었다.

아침 햇볕을 쪼이러 간 길에서 여름이의 죽음과 형제들의 슬픔을 알았다. 유독 햇살이 유별나게 아름다운 오늘, 나는 어쩌면 여름이의 소식을 듣기 위해 그렇게 길을 나섰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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