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잡아 실밥이 터진 옷을 꿰맨다. 바지 끝단, 옷자락 등 그동안 꿰매야지 꿰매야지 하면서도 좀처럼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바느질을 한다. 적당한 크기의 바늘과 옷에 맞는 실을 골라 꿰매는데 바느질하는 나의 어떤 손놀림에서 갑자기 울컥했다. 전혀 예기치 못했다. 어린 시절 익히 보았던 엄마의 손놀림을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느덧 돌아가신 엄마의 1주기가 되었다.
엄마는 언제나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매일 틈틈이 꿰매야 할 것들이 많았다. 그런데 바늘귀에 실을 끼는 모습도 아니고, 골무를 낀 왼손도 아닌, 바늘을 잡고 천에 넣었다 빼는 손동작에서 엄마의 모습을 보았다. 바늘귀에 실 끼는 작업은 참 많이 도왔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바늘 잡은 오른손 엄지 손가락 모습에서 엄마의 모습을 본 것이다.
어린 시절 나는 바느질하는 엄마 옆에서 엄마의 모든 손동작 하나하나를 꼼꼼히 보고 있었던 것이로구나! 그렇다고는 해도 나의 손동작이 엄마의 손동작과 이리도 똑같을 수가! 놀라고 또 놀란다.
바느질하는 내 손가락 속에 엄마가 살아있다. 엄마와의 유대는 일상생활 속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당연한 일이지만.
계속 꿰매야지 꿰매야지 하면서도 미루고만 있었던 옷들을 꿰매고 나니 홀가분하다. 이게 무슨 큰일이라고 나는 그렇게 미루었을까. 바느질 속에 엄마가 살아있는데도. 아끼던 옷이 이렇게 깔끔해지는데도. 바느질을 통해 좋은 발견 하나 했다. 엄마의 유산이 내 안에 살아있음을 알았다. 엄마가 일상 속에서 자주 했던 바느질만큼이나 나는 지금 내 손으로 무슨 일을 하나, 내 손을 들여다본다. 내가 주로 쓰는 이 오른손이 하는 일, 그 일이 책장을 넘기고 글을 읽는 일이었으면 좋겠다. 엄마가 한 땀 한 땀 천에 실을 꿰었듯 한 장 한 장 넘기며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꿰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