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 나무에 비둘기 네 마리, 그리고 나

에세이 하루와 하루 사이

by 강이랑


겨울, 햇살 좋은 정오 볕이 잘 드는 산자락 아래 평상에 앉아 햇살을 쪼인다. 평소 같으면 서너 명의 어르신들이 있는데 오늘은 아무도 없다.


바람도 잔잔하고, 하늘은 맑고, 햇살은 짱짱하다.

문득 고개를 들어 목련 나무를 올려다보니, 비둘기 네 마리가 가지마다 조용히 앉아 햇살을 쪼이고 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혼자가 아니고, 비둘기들도 혼자가 아니다. 혼자라니! 나무가 있고, 풀이 있고, 고양이가 있고, 까치가 있고, 살아있는 생명체가 여기저기 한 둘이 아닌데, 나는 혼자다, 아니다란 생각을 하고 앉아있다.


비둘기는 나 같은 쓸데없는 생각 없이 저마다의 가지에 앉아 오로지 햇살에 몸을 내맡긴 채 평온을 즐기고 있다. 그 고요함이, 그 유유자적함이 멋있어 나는 한참을 비둘기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반 시간이 지나자 평상에 모이는 단골 중 한 사람이 다가오고, 또 한 사람이 오고, 어르신 두어 분이 더 온다. 나는 그들에게 평상을 내어주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조금 떨어져 길가로 내려와 가볍게 몸을 풀며 계속 햇살을 쪼인다.


목련 나무에 앉아있는 비둘기 네 마리는 여전히 그 자세 그대로다. 미동 하나 하지 않고 햇살을 쪼이고 있다.

거리두기도 더 잘한다. 지저귀는 소리도 내지 않는다. 오롯이 자신이 지금 앉아있는 나뭇가지와 햇살에 집중하고 있다.


어르신들이 자리를 잡으며 도란도란 나누는 말소리가 들린다.

“키가 크니까 높은 데로 앉아요.” “크면 아래에 앉아야지.” “누구든 높은데 앉으면 좋죠.”

가장 높게 앉아 햇살을 쪼이고 있는 것은 비둘기인데, 그 아래에서 사람들은 누가 더 높은 데 앉나, 안 앉나 하고 이야기 한다.


조금 있으니 “우리 며늘애는 나한테는 안 주고 고양이한테만 맛난 걸 줘.”하고 한 분이 말한다. “고양이가 나보다 더 상전이여.” “근데 고양이가 이쁘긴 이뻐.” “영물이라니까.”라며 한 마디씩 주고받는다.

목련 나무에 앉아있는 비둘기 네 마리는 누가 더 맛있는 것을 먹든 말든, 누가 더 상전이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햇살을 쪼이고 있다.


다시 어르신들 중 한 분이 “나는 저 아래 산책로에서 30분 걷고 저기 큰길로 나가 한 시간 반을 걸어 두 시간이나 걷고 왔다.”한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나도 여기 오기 전에 한 시간을 돌고 왔어.” 한다. 건강을 위해 스스로를 꾸준히 관리하는 모습들이 대단하다.


저 오래된 목련 나무 위에 앉아있는 비둘기들은 나는 어디 어디 숲을 몇 바퀴나 날고 왔다거나, 저 멀리 강 건너까지 갔다 왔다거나 하는 말 없이 그저 지금 이 아름다운 햇살 부서지는 정오를 즐기고 있다.

아래쪽 나뭇가지에 비둘기가 앉아있어도, 위쪽 나뭇가지에 다른 비둘기가 앉아있어도 개의치 않고 각자의 위치에서 햇살의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평온하게 앉아있다.


그래, 좋다 그럼 어디 나도 한번 움직여 볼까. 나는 햇살을 한껏 받으며 주변 둘레길을 돌며 체력단련을 한다. 한 바퀴 돌고, 두 바퀴 돌고 세 바퀴를 돌면서 많이 친해진 길고양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이의 모습을 찾아보기도 하고, 다른 길고양이들의 이름도 불러보면서 언덕 계단길도 빠르게 걸어본다. 숨이 차고 몸에 열기가 오른다. 그리고 목련 나무에 앉아있는 비둘기를 올려다본다.


그렇게 몇 바퀴를 더 돌았을 때 비둘기 두 마리가 날아오른다. 그리고 좀 있어 또 두 마리가 날아오른다.


비둘기들은 오로지 햇살에 집중하는데, 나는 비둘기도 신경 쓰이고, 평상 근처에서 담소를 나누는 어르신들도 신경 쓰이고, 고양이들도 신경 쓰이고, 새들도 신경 쓰이고, 아무도 나를 신경 안 써도 나는 신경 쓸 것이 많아 심심할 틈이 없다.


그래서 나는 나고, 비둘기들은 비둘기고, 어르신들은 어르신이다. 햇살은 우리 모두를 다 비추고도 여전히 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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