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아이 곁에는 멋진 어른이 있다

하세가와 슈헤이, 『가슴이 콕콕』(김숙 옮김, 북뱅크, 2017)

by 강이랑

<그림책 한번 읽어볼까?>

하세가와 슈헤이의 『가슴이 콕콕』


『가슴이 콕콕』에는 친구 관계인 두 여자아이가 나온다. 화자인 ‘나’와 ‘리리’라고 하는 친구다. ‘나’는 그림책 표지에 등장하고, 친구인 리리는 뒤표지에 등장한다. 표지에 등장하는 ‘나’는 근심에 찬 표정으로 두 손으로 가슴을 감싸고 있다. 뭔가 가슴이 콕콕 쑤시는 일이 생긴 것이다.


뒤표지에 등장하는 친구 리리는 인상이 ‘나’와는 정반대로 아주 센 성격의 캐릭터로 보인다. 표지와 뒤표지에 등장한 두 인물의 모습은 이들이 판이한 성격임을 알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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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학교를 마치고 두 아이는 일요일에 만날 약속을 하고 헤어진다. 친구와 실컷 놀 생각에 ‘나’는 리리와 함께 먹을 도시락까지 준비하여 들뜬 마음으로 약속 장소로 가서 기다린다.


하지만 이날 두 아이는 못 만난다.


핸드폰이 없는 주인공 여자아이는 동물원 앞에서 40분이나 기다렸다가 집으로 돌아와 친구에게 전화하고 리리 또한 다른 곳에서 자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서로가 잘못 알아들은 것이다. 나는 이렇게 말했는데, 친구는 저렇게 알아듣고, 친구는 저렇게 말했는데, 나는 이렇게 알아듣는다. 나 또한 살면서 이런 일을 여러 번 겪어봤다. 들뜬 마음이 크면 클수록 그 속상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각자의 성격이나, 그날의 돌발적인 상황, 그날의 내 상태, 알 수 없는 연상 작용 등으로 의도치 않게 시간 약속이 어긋나고, 날짜가 어긋나고, 약속 장소가 어긋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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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콕콕』에는 이런 미묘한 친구 간의 엇갈림이 섬세하게 담겨있다. 친구 리리는 ‘나’를 향해 날것의 감정을 담아 윽박지르고, 자기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뚝 끊어버린다.


이때 주인공 여자아이는 서러움이 북받쳐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도시락을 먹는다. 이런 상황에서는 음식이 잘 넘어갈 리가 없다. 아니나 다를까 주인공 여자아이는 애써 친구 것까지 싼 도시락을 “조금밖에 먹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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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리리의 이글이글거리는 심리 표현이라든가 서글픈 ‘나’의 상황을 분명하지 않은 연필선, 연한 수채화 물감의 떨림과 번짐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다. 그 후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이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에는 각자 자신의 감정에만 빠져있기 때문에 그 후에 적절한 대처를 하기가 쉽지 않다. 서로 상대를 탓하기에 바쁘다. 주인공 여자아이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가 눈물범벅이 된 소파에서 막 깨어났는데” 눈앞에 부모님이랑 야구장에 갔던 삼촌이 앉아있다.


이럴 땐 누군가 객관적으로 들어주고 적절하게 조언해주는 존재가 필요하다. 그러한 존재가 내 곁에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진다. 이야기 속에서 삼촌이 그 역할을 멋지게 해 준다. 삼촌이 어떤 조언을 해주었는지 자세한 것은 그림책을 통해서 확인하길 바란다.


그림책 앞뒤로 삼촌 장면이 이어지는데, 아무 말 없이 멍하니 소파에 앉아있던 핼쑥한 모습의 삼촌과 조카에게 적절한 조언을 해주는 삼촌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드라마 속 주인공에게 비추는 반사판의 빛이 삼촌의 상반신에 비치며 삼촌은 마치 스크린 속 스타 같다.


삼촌은 충분히 그 역할을 했다. 반사판을 드리울 만하다.


가족 모두가 삼촌을 배웅하러 가는 길에 보여준 아빠와 엄마의 모습도 멋지다. 아빠는 조용히 있다가 일이 잘 마무리 지어질 찰나 “그래, 앞으로는 뭐든 서로 잘 확인하는 거다.”라고 조용한 한 마디를 날리고, 엄마는 “저기 좀 봐. 달이 참 예쁘다.”라며 드넓은 자연계로 시선을 돌리게 하여 모두의 긴장감을 풀어준다. 세 어른이 각각 자기 역할을 참 멋지게도 해준다.


삼촌을 비롯한 주변에 있는 멋진 어른들 덕분에 이 그림책의 주인공 여자아이는 자신이 먼저 리리에게 다가가 사과한다. 이러기 쉽지 않다. 되풀이해서 말하지만 이 아이 곁에 멋진 어른들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그러자 리리도 멋지게 받아주고, 자신이 처한 현재의 상황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바로 이 순간이 ‘나’와 리리의 친구 관계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순간이다.


‘나’와 리리 같은 친구 관계는 어디에서든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중고등학교 친구 사이에서도, 사회에서 만난 친구 사이에서도, 복지관에서 만나는 친구 사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나는 어떤 친구가 되고, 어떤 조언을 해주는 어른이 될 것인가.

하세가와 슈헤이의 『가슴이 콕콕』은 이에 대한 하나의 대처 방법을 말해주고 있는 것만 같다.


*이 글은 김영연 발행 <월간 길거리 책방 11호 ㅎㅗ랑이를 만나다>(2021.12.31.)에 게재한 글을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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