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아깝고 마음이 아깝다

에세이 하루와 하루 사이

by 강이랑

햇살 부서지는 봄날 정오, 꽃구경도 하고 야외 벤치에서 독서도 하고 도서관에도 들를 겸 집을 나섰다. 독서 하기 딱 좋은 벤치가 있는 곳을 알고 있었다.


목표 지점에 다다르자 어르신 한 분이 벤치에 앉아 쪽파를 다듬고 있다.


나는 비어있는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아래 넓은 공터에 피어있는 노란 개나리와 산수유, 바로 아래 흰색 앵두꽃, 파릇파릇 올라온 초록 잎사귀, 냉이꽃과 제비꽃을 구경하며 책을 펴고 독서를 한다.


“넘 주는 것은 안 아깝지, 버리는 것이 아까워.” 쪽파를 다듬던 어르신이 말한다. “햇살이 좋네요. 파 다듬으세요?”하고 말을 섞어본다.


“딸이 갖다 줘서 다듬는데 삼사일을 차에 넣고 다녀서 버릴 게 더 많아.”

“따님이 많이 바쁘신가 봐요.”

“바뻐요, 아주 바뻐.”


그리고 아무 말씀이 없길래 다시 책에 집중하는데,

“가을에 심어 보내주었는데 그냥 버리면 손이 아깝고 마음이 아깝지.” 그러신다.

나는 무심코 “손이 아깝다가 뭐예요?” 묻는다.

“공이 얼마나 아깝소. 씨앗을 심고 가꾼 그 공력이 아까워.

옛날 어른들이 밥 한 그릇 주는 것은 안 아깝다 그래도 곡식을 버리는 것은 한주먹도 아깝다고 그래요.”

누구한테 내 것을 내어주고, 그냥 주는 것은 아깝지 않아도, 내가 소유한 내 안의 귀한 곡식을 묵히고 활용하지 못하고 그냥 내버리는 것은 아깝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이며 나는 감탄한다. 내가 지니고 있는 내 곡식을 밥을 하고 요리도 못하고 썩히는 모습을 떠올리자 게으른 나는 너무나 부끄럽다.

“어르신께서 삶의 지혜가 담긴 말씀을 해주시네요.” 내가 말하자

“무슨.” 하시며 손사래를 치신다.


“쪽파로 해 먹을 수 있는 요리가 많죠.” 하며 나는 알고 있는 쪽파 요리를 총동원하여 이야기를 한다. 그대로 삶아서 고추장 찍어도 맛있다는 둥, 두부를 기름에 볶다가 고추장과 설탕을 물로 풀어 넣어 조린 다음 쪽파를 듬뿍 넣어 먹으면 아주 별미라는 둥 요리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술술 말한다. 그러자 어르신도 “그렇지, 그렇지. 그냥 생으로 무쳐먹어도 맛나고.” 맞장구를 쳐주신다.


잠시 후 파 다듬기를 다 마치신 어르신이 “갖고 가 해 잡술라?”하고 묻는다.


“귀하게 다듬으신 걸, 제게 주시나요?”

“귀하니까 주지.”

“어르신 감사합니다. 근데 제가 도서관에 가려고 지금 막 집을 나와서 어르신의 마음만 받겠습니다.”


하지만 어르신은 다듬은 파를 절반으로 나누더니 다시 내게 권하신다. 두 번이나 권하시는데 어찌 받지 않겠는가. 책을 빌리면 넣으려고 준비한 또 하나의 천 가방에 생각이 미친다. 나는 얼른 가방을 꺼내 어르신이 다듬어주신 파를 받아 넣는다.


나는 어르신께 아무 줄 것이 없어, 몇 번이고 감사 인사를 하며 “귀하게 요리해 잘 먹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오늘 처음 만난 어르신한테 인생의, 삶의 철학을 들은 나는 햇살을 쪼이러 나오길 잘했다고, 그 덕분에 귀한 쪽파를 얻을 수 있었음을 감사해하며, 야외 벤치에 앉아 따스한 햇살 속에서 계속 독서를 한다.


쪽파를 다듬으며 쪽파를 키워 보내준 사람의 손과 마음을 헤아리는 어르신의 마음이 게으른 오늘의 나를 일깨운다. 알 수 없는 어떤 분이 가을에 심은 쪽파가 이 따스한 봄날 내게로까지 전달된 메시지를 곱씹어보며 햇살 좋은 봄날을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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