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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애 Sep 20. 2022

조향순 시집 『풀리는 강가에서』와 놀다

시집 필사하며 놀기

1990년대 초에 서정윤의 '홀로서기'와 '만남에서 동반까지'란 시집이 마음에 와 닿아 통째로 외워보려는 시도를 했던 적이 있다. 다른 사람의 작품을 통해서나마 시적 감각이나 시심을 익혀보고 싶어서다. 그러나 생각만큼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몇번이고 되풀이해서 중얼거렸는데도 이미 외웠던 시를 까먹고 다시 외우느라 버벅대다가 10여 편 외우고는 손을 들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다 얼마 전에 조향순 시인님의 '필사의 효용'이란 글에서 시든 수필이든 필사를 하는 것이 공부의 한 방법으로 상당히 효과적이라는 말에 솔깃해졌다. 


<필사하다 보면 그 작품을 바르고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눈으로 읽거나 입으로 읽어서는 이해할 수 없었던 뜻이나 감정이 한 자 한 자 쓰는 동안에 깨달음이 오고 전달된다. 한 권의 시집을 몽땅 옮기고 나면 그 시의 내용은 물론이거니와 그 시인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사고와 잘 쓰는 표현기교, 낱말, 성격까지 파악된다. 한 사람을 깊이 알고 사귀게 되는 셈이다.>-조향순 시인님의 '필사의 효용' 중에서- 


마침 조향순 시인님의 '풀리는 강가에서'란 시집을 음미하면서 읽고 또 읽던 참이었다.

조향순 시인님이 '모방은 창조의 시작이다'란 글에서 <모든 시초는 모방에서부터이고, 마음에 드는 시를 읽다가 따라서 쓰다 보면 운율도 익혀지고 구성도 익혀져 깨달음에 가속이 붙는다>고 하신 바 있다. 또한, 시인님께서 '필사의 효용'이 습작의 한 방편이 될 수 있다고 했겠다. 맘놓고 필사해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허락을 받은 것이니 이왕이면 조향순 시인님의 시를 가지고 모방이든 필사든 날개(?)를 달아보자고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시집 한 권을 통째로 외울 엄두를 냈던 건 아니었다. 그저 작심삼일로 끝나게 되더라도 전혀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보다는 시도라도 했다는 데에 의의를 두기로 하였다.  


싸락눈/조향순 

딱하기도 해라.


이제

떨어지는 마당에 

어지간하면 풀어주고

함박눈으로 허허 웃을 것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풀리지 않던가 보네 


<풀리는 강가에서> 시집의 첫 시 '싸락눈'을 필사하면서 시가 짧아 금방 외웠는데 돌아서면 잊어버렸다. 젊었을 적엔 무척 기억력이 좋으셨던 친정 엄마가 "아야, 잊어버렸단 마다. 진짜 까맣게 잊어버렸어야."라며, 나이를 먹으니 돌아서면 잊어버린다는 말을 입에 달고 한탄을 하셨을 때 왜 금방 잊어버린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되었는데 내가 엄마의 그 나이가 되고 보니 돌아서면 잊어버린다는 말에 실감이 간다.


어떨 땐 <싸락눈> 제목도 생각이 나질 않았다. 눈은 눈인데 무슨 눈이었는지 까먹고 계속 귀에 익은 싸래기눈으로 읊조리다 겨우 싸락눈으로 바로잡았는데 이번엔 첫 행 '딱하기도 해라'를 까먹었다. 너무 어이가 없었다. 조금 전까지 외웠던 부분인데 5분을 못 버티다니. 진짜 '딱하기도 해라'라는 구절은 완전히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우여곡절 끝에 '이제 떨어지는 마당에'까지 나왔는데 그 다음에서 또 막혔다. 금방 생각이 날 듯 말 듯하면서도 얼른 그 다음 구절이 나오지 않았다. 이러다가 어느 세월에 다음 시로 넘어갈 수 있을까. 

어떻게든 다음 구절을 끌어내려고 했는데 안 되는 걸 보면 조향순 시인님이 '싸락눈'을 보면서 느꼈던 마음에 여전히 미치지 못한 탓이다.


이제 '어지간하면'까지는 간신히 풀렸는데 '풀어주고'가 안 풀리고 막히다니, 그러니 함박눈으로 허허 웃어넘기지도 못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풀어지지 않아 '풀어주고'를 커닝했다.

시인님이 딱하다는 듯 줄곧 지켜보셨나, 마지막 행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풀리지 않던가 보네.' 


몇 번이고 외우고 까먹고를 반복하면서 한 편의 시를 외우고 다음 시로 넘어가 시 한 행 한 행을 음미하면서 중얼거리며 외운 것을 노트에 적어보고 잘 외웠나 대조를 해본다.

이번엔 잘 외웠다고 자신했는데 토씨 하나 감탄사 하나에서 딱 걸리고 만다. 


시 한 편을 온전히 외우고 다음 편으로 넘어간 후에도, 처음으로 되돌아가서 외운 시를 복습하는 과정을 거쳤어도 며칠 지나면 어느 한 구절에 딱 걸려 도무지 나아가지를 않고 '딱하기도 해라'와 '아무리 생각해도 풀리지 않던가 보네'는 시집을 통째로 다 외우게 될 때까지 줄곧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콩나물 시루에 물을 부으면 물이 시루 밑으로 다 빠져버리지만 콩나물은 자라는 것처럼 공부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엄마가 내게 들려주셨던 말씀을 떠올리며 외운 시가 시루 밑으로 다 빠져나가도 콩 껍딱(껍질)이라도 남겠거니, 하며 까먹고 다시 외우기를 반복했다. 


난 워낙 '용두사미 띠'라 살아오면서 뭔가를 계획했던 일을 이제까지 제대로 끝을 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더더욱 '시집 한 권 통째로 외우기'를 성공시키고 싶었다.

끊임없이 막히고 외웠던 부분을 돌아서면 도로 까먹기를 반복하면서도 외운 시가 한 편 한 편 늘어가는 데에 희열을 느꼈다. 공부를 그렇게 했더라면, 이란 말이 절로 나왔다.


날개 조향순 시인님의 『풀리는 강가에서 』를 필사하고 놀다 보니

80편의 시를 전부 외우게 되었는데 시집을 갖고 노느라 너무 몸살 시켰나 보다. 


이제 방이고 거실이고 눈에 띄는 머리카락이나, 머리숱이 없어 오솔길이 난 내 뒤통수가 거울에 비치면 나를 버린 머리카락이 눈을 흘기는 듯했다.


<장판을 새로 깔았더니

나를 버린 머리카락들의 꼬리가 보입니다


안방에서도 나를 버리고

거실에서도 나를 버리고

주방에서도 나를 버립니다


이미 버렸는데도

따라다닌다고 눈을 흘깁니다

이제 가보라고 합니다

모질게도 등을 돌립니다>-<풀리는 강가에서> '머리카락' 전문-


소파 아래며 책장 위에 앉은 해묵은 먼지가 입이 있으면 욕을 할 것이란 생각이 들어 가구며 책을 먹어치운 <먼지>와 싸우느라 한바탕 재치기를 해대다가 <싸움>의 시를 떠올린다.


<겨울 한낮에 집에서 쉬려고 하면

먼지가 슬슬 싸움을 걸어옵니다


내가 일어나면 따라서 일어나고,

내가 누우면 따라서 눕습니다


꽃들도 책들도 먹어치웁니다

움직이지 않고 있어도

주변을 서성거리며 지킵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싸울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같은 편이었습니다

어우러져 껴안고 춤 출 사이였습니다

흐느끼며 같이 무너질 우리 사이였습니다> -<풀리는 강가에서> '싸움' 전문- 


잠이 안 오면 나도 모르게 <잠>에게 말을 건다. '왜 안 오니? 어디서 자고 있니?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는 너의 외박 이유.' 

잠을 자다 무슨 꿈인가를 꾸었을 땐 내용은 생각이 나질 않는데 <빈 논> 시와 연상되었는지 발끈해서 '벼하고 피하고 같이 자랐나 보네!'라는 말이 불쑥 튀어나왔고, 약국에 감기약을 사러 갔다가 세 번을 허탕치고 왔을 땐 <수련>의 모방시가 절로 나왔다. 


수련/조향순


세 번이나 찾아 갔는데도

수련은 자고 있었다

자는 척 눈을 감고 있었다


다시는 안 온다

세상에 꽃이 너뿐이더냐


너는 늘 눈을 감고 있다.

모르는 바 아니지만

한 번쯤 눈 떠주면 어디가 덧나나


다시는 안 본다

세상에 사람이 너뿐이더냐


너뿐이더냐 너뿐이더냐

너뿐···

 

약국(모방시)


세 번이나 찾아 갔는데도

약국은 닫혀 있었다.

불만 켜놓은 채 잠겨 있었다.


다시는 안 온다

점방을 비우고 오는 일이 쉬운 일이더냐


약사는 번번이 출타 중이었다.

속사정이야 있겠지만

이렇다 할 메모 한 장 붙여놓으면 어디가 덧나나


다시는 안 본다

점방 인근에 약국이 여기뿐이더냐


여기뿐이더냐 여기뿐이더냐

여기뿐···


<수련>에서 '세상에 사람이 너뿐이더냐' 부분을 모방시 <약국>에서 '세상에 약사가 너뿐이더냐'로 할까 하다가 '점방 인근에 약국이 여기뿐이더냐'로 한 것은 차마 <수련>의 '너'까지는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시인님의 '너'의 의미까지 퇴색시키고 싶지 않아서다. 그리고 그해 연말 송년 모임에 참석했을 때는 유난히 넓은 탁자 한가운데 놓인 떡을 못 집어먹고 온 것에 내심 미련이 남아 <가을 강>이 <송년 떡>이 되었다.


가을 강/조향순


강이 식었습니다


그대의 고백이

물을 건너오지 못합니다


물은 깊고

배도 없고

날도 저물어갑니다


나는 물 건너가서

물에 빠지는 그대의 고백들을

구경합니다


식은 하늘도 보입니다

 


송년 떡(모방시)


떡이 식었습니다.


그대의 정성에

손이 가지 못합니다


탁자는 넓고

떡은 멀고

팔은 턱없이 짧았습니다.


나는 침을 삼키면서

먹음직스런 떡이 식어가는 것을

구경합니다


탱글탱글한 밀감도 보입니다


시집을 필사하면서 '산책길에 잔뜩 토라진 그림자가 너를 데려 오라고 합니다 나참 어디 가서 너를 데려 옵니까'<그림자>나, '몸살하고 일어나고 몸살하고 일어나다 보니 오늘을 까먹었습니다'<기일> 부분이나 '먼지 한 점 바람 한 점 덤비지 못하게 대문 기둥에 바짝 붙어 지켜달라고 했다'<문패>를 외울 때는 내 아버지를 떠올렸고 시인님을 떠올렸다. 그리곤 가슴이 먹먹하기도 했지만 내가 시집을 외우는 동안 내가 미처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그 시를 통해 느낄 수 있어서 좋았는데 내 글에 정작 조향순 시인님이 아무 말씀이 없으시자 <부처님 오신 날>이 <덧글>로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부처님 오신 날/조향순


오시긴 오셨습니까

오시면 뭣 합니까


버려진 것도 없고

벗어진 것도 없잖아요


두어 번 혀만 차시고 그냥

가셨나 봅니다



덧글(모방시)


보시긴 보셨습니까

보시면 뭣 합니까


잘 읽었다는 말도 없고

잘 쓰란 말도 없잖아요


두어 번 고개만 흔드시고 그냥

가셨나 봅니다


그렇게 시인님의 마음 가까이 다가가 <풀리는 강가에서>와 한바탕 신명나게 놀았을 뿐인데 <사람마다 바라는 바가 다 다르겠지만 바라는 바를 다 얻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의 귀한 가슴에 심어졌다면 그것으로 할 일 다 했고 얻을 것 다 얻었으니 세상에 왔다 간 충분한 흔적과 보람이 되겠다.>란 시인님의 최고의 찬사에 뭔가를 해냈다는 뿌듯함을 느꼈다. 조향순 시인님과 더 가깝고 깊이 알게 된 것 같아 좋다.                               



입을 다물 줄 모르는 시집


80편의 시를 외우느라 '풀리는 강가에서'와 놀다 보니 시집을 너무 몸살 시켰는지 엉덩이로 깔고 앉아 눌렀어도 입을 다물 줄 모른다. 

이제 앞집 담장 너머로 고개를 내미는 철 늦은 장미에게도 슬쩍 눈길 한번 주고, 생기다 만 화단에 아주 잠깐 화려한 자태를 뽐내다 스르르 져버리고 잎이 단풍 든 모란에게도 내년엔 더 더 아름다워지라고 오며 가며 말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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