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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애 Oct 13. 2022

만둣집을 찾아온 불청객

아파트 상가에 있는 '천냥생만두전문점'을 인수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한 초등학생이 전 주인아줌마의 안부가 궁금해서 그런다고 연락처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 

가게를 내놓으려고 셔터에 '임대'라고 써 붙여 놓으면 그때마다 단골 아이들이 가게를 못 내놓게 하려고 붙여 놓은 종이를 자꾸 떼어내곤 하더라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그때는 그냥 흘려들었다. 그런데 주인이 바뀐 걸 무척 서운해 하는 사람들이 많고, 꼬깃꼬깃 접은 천 원을 들고 닭꼬치나 아이스크림을 사러 오는 아이들 중에 안부 전화를 하려고 한다는 것은 인상이 후덕하게 생긴 아줌마가 항상 웃는 얼굴로 친절하게 대해줘서 그만큼 인심을 얻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줌마가 인심이 후하다는 소문은 비단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었다. 

가게를 인수한 지 보름 정도 되었을 무렵, 시골 들녘에서나 볼 수 있음 직한 여치, 사마귀, 사슴벌레를 비롯한 몇몇 곤충들이 가게 안을 기웃거렸다. 만둣집에 무슨 볼일이 있어서 문지방을 날아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소리 소문도 없이 왜 가게를 넘겼는지 뒤늦은 안부를 물으려 왔을까 추측할 뿐이다.


귀뚜라미는 아직 싸돌아다닐 계절도 아닌데 주인이 바뀐 게 얼마나 서운했는지 코빼기도 내보이지도 않으면서 주방 싱크대 뒤쪽에서 목청을 돋우며 종일 뭐라 떠들어댔다. 아직 임대 기간이 남아 있는데 왜 성급하게 내놓았는지 궁금했을 수도 있고, 경기가 어려워 문을 닫는 가게들이 많은데 장사에 경험도 없는 새 주인은 삼복더위에 무슨 장사가 되리라고 만둣집을 덥석 붙들었는지 걱정이 되었을 수도 있다.  

아파트 상가의 앞이 툭 트인 10평 남짓한 가게에 만둣집이 막 생겼을 때만 해도 값도 싸고 맛있다는 입소문을 타고 만두를 사러 오는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여덟 개의 찜기에 만두 판을 열 단씩 올려놓고 만두를 찌느라 무척 분주해 보였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터진 만두 파동의 여파로 손님이 절반으로 뚝 떨어지자 궁여지책으로 만두 외에 아이스크림을 팔더니 우리가 가게를 인수할 무렵엔 품목을 더 늘려 와플도 만들어 팔고 숯불에다 닭꼬치를 굽고 살얼음이 언 슬러시까지 팔았다. 그런데 도로변의 은행나무 가지에 걸터앉아 듀엣으로 노래를 부르던 매미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가게 안으로 날아들어 천장과 벽에 몸을 부딪치며 난무하다가 한 녀석은 벌겋게 일렁이는 숯불에 몸을 던져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다른 녀석은 하필 매콤한 양념 통에 빠져서 양념 묻은 날개를 파닥거려 나를 곤혹스럽게 했다.    


매미보다 더 난감한 불청객은 슬러시의 달콤한 맛을 음미하려는 듯 코를 벌름거리며 슬러시 기계 주변을 맴도는 시커먼 말벌이다. 흔히 볼 수 있는 벌의 세 배 정도는 되어 보였다.

슬러시 투입구에 종이컵을 대고 무심코 손잡이를 잡아당기다가 살얼음이 되어 나오는 슬러시와 함께 궁둥이에 털이 보송보송 나 있는 커다란 말벌이 슬러시 투입구에서 튀어나와 기겁을 한 적도 있다. 

제까짓 녀석이 작은 주둥이로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그러느냐고 인심이 야박하다고 여길지라도 말벌이 슬러시 기계를 넘보는 행위는 위생에 빨간불이 켜지는 것과 직결되기 때문에 나로선 그대로 묵과할 수 없다. 그렇다고 '말벌 통제 구역'이라는 문구를 써서 붙여 놓고 말벌에게 그 문구가 얼마나 위협적인지 가르쳐서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고, 슬러시 기계 앞에서 마냥 보초를 서고 있을 수도 없다.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불청객의 방문은 예고가 없다. 내가 취할 수 있는 최선책은 슬러시 기계 주변 청결에 보다 더 신경을 쓰면서 말벌이 날아들면 파리채로 휘저어 쫓는 방법밖에 없다. 그 후로 한동안 뜸하여 긴장이 풀려 있는 틈을 타서 또 시커먼 말벌 한 마리가 가게에 날아들더니 여지없이 슬러시 기계 주변을 맴돌았다. 

누가 볼세라 화들짝 놀란 내가 파리채를 집어 들고 힘주어 휘둘러서 위협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간땡이가 상당히 부은 녀석이다. 슬러시 기계 투입구에 과감히 착지하더니 세수도 하고 깨끗이 씻고 왔다고 여봐란듯이 제 머리를 쓰다듬고 짧은 앞발을 비비는 시늉까지 했다.

얼마나 슬러시가 먹고 싶었으면 위험을 무릅쓰고 날아들었을까, 마는 나 또한 위생에 비상이 걸린 문제인지라 기필코 슬러시 기계를 사수해야 했다. 

처음에는 될 수 있는 한 멀리 쫓아내려고 파리채를 휘저으며 경고를 했다. 녀석은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곱다는 말을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도망 갈 생각을 않고 투입구에 고개를 처넣으려고만 하였다. 나에게도 만둣집의 생사가 걸린 문제다. 더는 위협만으로는 안 되겠기에 파리채를 쥔 손목에 힘을 주어 녀석의 뒤통수를 향해 휘둘렀다. 한 번은 빗나가고 두 번째로 휘두른 파리채에 제대로 맞은 말벌이 '악!' 소리를 지를 틈도 없이 두 동강이 나서 허리 아랫부분은 슬러시 기계의 물받이 안에 떨어졌고, 윗부분은 바닥에 떨어졌다. 그러기에 가라고 경고했을 때 눈치껏 갔더라면 좋았을 텐데 어쩌자고 슬러시 기계를 넘봐서 불행을 자초하였을까, 짠한 마음이 들었지만 만두를 사러 온 손님이 와서 만두를 찌느라 두 동강이 난 말벌에 대해선 까맣게 잊은 채 세 시간 남짓 지났을 때, 바닥에 떨어져 벌러덩 뒤집혀진 말벌의 상반신이 한쪽 발과 더듬이가 미세하게 꿈틀거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반쪽 남은 말벌의 상반신이 그때까지 살아 있다는 사실이 내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가까스로 몸을 바로 한 말벌이 축 처진 날개를 남은 한 발로 질질 끌면서 기어가다 벌러덩 뒤집어져 버르적거렸다. 짠한 마음이 들어서 몸통을 바로 해주었더니 혼신의 힘을 다해 기어가다가 도로 뒤집어졌다. 나는 쭈그리고 앉아서 반쪽 남은 몸으로 기어가는 광경을 미안한 마음으로 지켜보다가 말벌이 벌러덩 뒤집힐 때마다 몸을 바로 해줬다. 허리 아래쪽이 아예 없다는 것도 의식하지 못한 듯 몸을 질질 끌며 기어가던 말벌이 기력이 쇠했는지 얼마 못 가서 마지막으로 발을 파르르 떨다가 더는 버르적거림이 없이 조용해졌다. 모진 목숨이 다한 것이다. 


말벌의 널브러진 잔해를 거두고 물받이에 고인 물을 비우려고 하는데, 그 안에 떨어졌던 말벌의 허리 아래쪽만 있는 궁둥이의 뾰족한 부분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몸이 두 동강 난 지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살려고 발버둥 치는 강한 생명력이 경이로웠다. 어떻게든 살아보겠다는 강한 의지 하나로 그때까지 정신을 놓지 않고 있었던 것일까.

봉합 수술을 해줬으면 예전처럼 날개를 파닥거리면서 슬러시 기계 주위를 다시 날 수 있었을까? 날아든 말벌을 그냥 쫓아버렸더라면 좋았겠지만 장사와 직결되는 위생 문제라 어쩔 수 없이 말벌에게 파리채를 휘둘렀던 나는 작은 미물의 생에 대한 처절한 사투와 처참한 모습을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런데 또 한 마리의 말벌이 날아들었다. 파리채에 비명횡사한 말벌과 만둣집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했었던 것일까? 말벌들만의 의사소통으로 마지막 가는 길에 구원의 텔레파시나 혹은 비명횡사를 예감하고 죽은 잔해를 잘 거둬달라는 유언의 목소리를 들었던 것일까?

날아든 말벌은 먼저 간 말벌이 배회했던 슬러시 기계 주위를 맴돌았다. 더듬이를 움직이며 동료의 반쪽을 찾는 듯했지만 아무래도 찾을 수 없는 반쪽을 향해 애도의 표시인 양, 원을 그리며 공중을 돌더니 그 슬픔을 주체할 수 없었나 보다. 닭꼬치 구이 판 위에 올라앉아 철판에 묻어 있는 달콤한 양념에 벌침을 꽂는 듯 싶더니 달궈진 숯불에 몸을 던져 동료의 뒤를 따라가고 말았다.

한갓 미물이지만 생명이란 모두 소중한 것인데 조금 전까지 날개를 파닥거리다가 어이없게 짧은 생을 마감한 말벌에 대한 강한 연민이 들었다.


'네 운명도 거기까지인 모양이구나. 어차피 한세상을 살아야 다음 생이 오는 것이라면 말벌로의 짧은 생에 대한 허망함은 잠시 잠깐일 것이니 부디 다음 생에선 명도 길고 좀 더 나은 생으로 태어나기를‘ 진심으로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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