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미애 Oct 27. 2022

동전 예찬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동전을 들여다보다가...

동전 예찬



퇴근길에 탔던 38번 시내버스가 조대 앞 승강장을 막 벗어나 횡단보도 앞에서 정차하고 있을 때였다. 무심코 창밖을 바라보다가 보도블록 바로 아래, 차도에 동그랗게 생긴 것이 눈에 띄었다.

‘으잉! 저것이 뭐다냐?’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다시 봤더니 100원짜리 동전이었다.

‘오메! 아까워라! 기사 양반한테 비상 깜빡이를 켜놓고 기다려달라고 할 수도 없고, 버스에서 뛰어내려 주우러 갈 수도 없으니 그림의 떡이네!’

다음 시내버스 기사한테 땅에 떨어져 있는 동전의 안타까운 눈길을 차마 외면할 수 없어서 앞차에서 잠시 내렸다고 시내버스 요금을 면제해달라고 통사정이라도 해볼까.

지금이야 환승 제도가 있으니 버스에서 내려서 동전을 주운 후 다음 시내버스를 타도 추가 요금을 내지 않아도 되지만 2000년 초반인 당시에는 시내버스 요금이 800원이었는데 버스를 갈아타면 무조건 요금을 새로 내야 했다.

그 순간 이십 년 묵은 때가 번들거리는 주판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떨고 셈하기를 떨어져 있던 동전 100원이요, 버스에서 내려 다시 탈 때의 승차권값 마이너스 800원이면 답은 얼마인가요?’

작달막한 키에 휑한 주변머리를 2대8 가르마로 무마한 금릉주산학원 원장의 비음 섞인 목소리가 귓전에 들리는 듯했다.

 저를 구해달라고 발을 동동 구르며 나에게 애원의 눈빛을 보내고 있는 듯 여겨졌던 동전에 대한 짠한 마음 때문에 내 고개와 시선은 꽤 오랫동안 이미 지나쳐버린 버스 뒤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길바닥에 떨어진 돈을 줍느라 허리를 구부리는 시간조차 아까워할 정도로 1분 1초의 중요성을 따지며 그냥 지나쳐버리기도 한다는데, 나는 길을 가다가 길바닥에 뭔가가 떨어져 있으면 설령 그것이 아주 하찮은 나사못이나 고무밴드 하나라도 그냥 지나쳐 가는 법이 없다. 그런데 내가 못 봤으면 모를까, 땅에 떨어져 있던 건 분명 100원짜리 동전이다. 빤히 보고도 주우러 내려가지 못한 아까운 마음은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돈이란 돌고 도는 것이며,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생기는 것이다. 저 길바닥에 떨어진 동전 역시 수많은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별의별 일을 겪으며 적지 않은 세월을 보냈을 텐데, 어쩌다 털털한 주인을 만나 길바닥에 내팽개쳐지는 신세가 되었을까?

미안하다. 동전아! 너 하나를 구하려고 도리어 한 움큼의 동전을 희생시킬 수는 없구나. 내가 아니어도 다른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이 너를 구원해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직장의 상사인 한 모 씨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명품으로 치장하고, 욕실에서 신은 슬리퍼도 20만 원짜리라고 자랑질을 하던데 나는 그녀처럼 가진 게 없으니 명품은 꿈도 못 꿔보고, 옷 사러 서울 가서 500만 원을 쓰고 왔다고 목에 힘 주고 자랑질을 할 때 부럽기는커녕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왕소금국(國) 백성의 대열엔 끼지 못해도 푼돈에 목숨 거는 건 어쩔 수 없는 천성이랄까.

물론 그만한 값어치가 있기야 하겠지만 물건의 가치를 돈을 얼마 줬느냐에 따라 값을 매기고, 가진 사람들의 자기과시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1원을 들고 동네 구멍가게에 가면 하얀 눈깔사탕을 열두 개나 사 먹을 수 있었다. 10원만 있으면 차부(버스정류장) 맞은편의 풀빵 파는 리어카에서 앙꼬는 안 들어 있어도 맛있는 풀빵을 열 개, 운 좋으면 열두 개도 먹을 수 있었다.

종이가 귀하던 시절이라 밀가루 포대의 누런 속지로 만든 봉지나 헌책을 쭉 찢어서 세모로 접고 말랑말랑하면서도 따끈따끈한 풀빵을 담아 설탕을 솔솔 뿌려주었다. 한입에 쏙 들어가게 작다고 얕잡아 보고 꿀떡 삼키려다 눈물이 핑 돌 정도로 목구멍이 뜨거웠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 공책 한 권에 5원, 10원, 질 좋고 두툼한 것은 20원이었는데 나는 누르스름하고 얇은 5원짜리 공책을 문방구에서 외상으로 갖다 쓸 때가 더 많았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쉬는 시간에 내가 금전출납부를 쓰고 있는 것을 반 친구인 정희가 신기해하며 들여다보더니 100원짜리 동전을 한 개 주면서 지가 줬다고 올려달라고 했던 적이 있다. 금전출납부 적요란에 ‘김정희’ 이름 석 자를 연필심 끝에 침 발라 또박또박 쓰고 수입란에 100원, 합계란에 100을 더한 숫자를 기재했더니 정희가 책상을 치며 어찌나 웃어댔는지, 지금도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공중전화부스에 누군가 전화를 걸고 남은 듯 반환되지 않고 남아있던 30원이란 숫자가 불을 깜박이며 출근길의 바쁜 발목을 부여잡기도 하고, 종종 길바닥에 떨어져 있던 10원짜리 동전을 주웠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턱을 치켜든 채 앞만 보고 걷지 않고 세월아 네월아 하듯 어기적어기적 걸으면서 길바닥에 코를 박고 다녀서일까? 뭔가 동그란 것이 떨어져 있는 걸 보고 그냥 지나쳤다가도 긴가민가하여 한걸음 되돌아가 찬찬히 들여다보면 역시나 동전이었다.     

며칠 전에도 보도블록 틈바구니에 끼어 있던 10원짜리 동전을 주웠다. 발행연도를 보니 내가 면사포를 썼던 해보다 훨씬 전이다. 우리 애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 황금빛으로 빛을 발하며 때론 가슴 뭉클함도 느꼈을 것이나, 믿었던 인간에게 버림받았거나, 스스로 탈출을 시도했다가 이리저리 밟히는 신세가 되었을까? 1오랜 세월 동안 이 사람 저 사람 손을 거치며 온갖 풍파 다 겪었는지 세파에 찌들고 퍼렇게 멍들어 ‘동전 맞아?’ 싶을 정도로 식별이 어려웠다.

 더는 동전이기를 거부하듯, 모든 것을 체념하듯 그렇게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져 나뒹굴다 뭇사람들의 발길에 채이기도 하면서 세상사 덧없다 체념하였을 너, 어스름한 가로등 불빛에 부신 눈을 비비며 네 곁을 지나치던 내 눈에 띄게 되었구나. 

너를 너의 동료 10원짜리들과 은행에 데려다 주었을 때, 그들 또한 천덕꾸러기 취급을 하면서도 은행 체면상 마지못해 받아줘서 통장에 보태기 숫자로 자리 잡고 앉았으나 넌 얼굴빛이 혐오스럽다고 청원경찰의 손에 의해 저지를 당했다. 지친 너에게 이제 그만 편히 쉴 곳을 찾아주려 했으나 은행에서조차 문전박대가 웬 말이래? 네가 갈 마지막 종착역은 한국은행이라는구나. 내가 너를 거기다 데려다 주면 난 너를 또 다른 네 친구로 교환할 수는 있지만 그럼 넌?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변색되고 멍투성이인 네 얼굴에 구멍을 뚫어 더는 네 이름으로 불리지도 못할 터······. 폐기처분된 명단에 더하기 10원으로나마 찾아볼 수 있을 터······.

내가 너를 거두리라. 오랜 세월 겹겹이 쌓인 묵은 때가 덕지덕지 붙어 군더더기 살이 되어버린 네 얼굴은 빨간 이태리타올로는 벗겨지지 않을 테니 철수세미에 돌가루 비누 듬뿍 묻혀 박박 문질러대느라 쓰라려도 이해해 주려무나. 닦고 또 닦아도 모진 세월 속에 찌든 흔적을 지울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마지막 종착역인 한국은행으로 보내지는 건 아직 이르지 않겠냐?

괴나리봇짐을 풀 새도 없이 언제 또다시 이리저리 옮겨 다니게 될지 알 수 없는 팔자지만 그래도 10의 자리 한 숫자로나마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다면 그 또한 보람이지 않겠냐? 너를 당분간이나마 내 곁에 두고 그동안의 묵은 상처를 위로해주려고 한다. 열심히 닦는다고 닦았다만, 아직도 피멍 든 자국이 채 가시질 않았어도 다보탑인지 석가탑인지조차 헷갈리던 탑의 형체가 서서히 드러나고 이젠 제법 동전이지 싶다.

가진 것 없는 내게 있어 넌 마음 끌리는 친구가 되어줄 듯싶고, 너 또한 기약할 수 없는 임시 거처지만 인연이 다하는 날까지 나와 함께 생사고락을 함께 하자꾸나!

이전 03화 보리굴비에 대한 꼬라지 견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