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 하는 사람
별의별 사람 중에 외상 하는 사람들이 또 외상을 달아놓고 간다. 돈에 맞춰서 가짓수를 줄이거나 당장 안 사도 될 물건은 빼면 될 텐데 무조건 사고 기어이 꼬리를 달아놓고 간다. 수중에 만 원짜리가 있으면서도 지폐를 헐면 푼돈이 된다며 100원 단위는 무조건 외상 하는 사람도 있다.
외상을 할 때 자기가 어디 사는 누구이며, 연락처 정도는 예의상 가르쳐주면 좋을 텐데 누구 엄마냐고 물으면 안 떼어먹고 갚을 거라며 안 가르쳐 준다. 돈 몇 푼 받으려고 찾아가거나 독촉 전화라도 할 줄 아는 모양이다.
어디 사는 뉘시냐고 꼬치꼬치 물어서 ‘누구 얼마 외상’이라고 적으면 우리 가게 문턱에 발 끊을 건 뻔하여 외상으로 가져간 사람들의 인상착의로 기억하고 메모를 한다. 그래야 다음에 다시 왔을 때 누가 계산대에 있더라도 외상값을 받을 수 있다.
외상을 자주 하는 손님 중에 파마기가 다 풀려 위로 솟구치는 머리를 보자기로 뒤집어써서 감추고 알록달록한 몸뻬를 즐겨 입는 아주머니가 있다.
“난 성질이 외상 달려놓고는 못 살아라우!”라며 갚곤 한다.
하루는 그 아주머니가 자기를 누구라고 적어놓는지가 궁금하다고 가르쳐 달라고 했다. 영업 비밀이라고 웃고 넘겼지만 차마 ‘촌티 나는 아지매’로 했다가 지금은 ‘키 작은 몸뻬 아짐’이라고 적었다고 말 못 하겠다.
몇 번 겪어 보았을 때 착실히 외상값을 갚던 사람이거나 안면이 있는 사람이면 나중에 주라고 얘기하는데 안면도 익지 않은 사람이 외상을 할 때가 있다.
“이따가 갖다주께라우.”
승낙이든 거절의 말이든 들어보지도 않고 막무가내로 가져간 후 열흘이고 보름이고 고무신 코빼기도 안 내비친다.
어쩌면 우리 점방을 피해 딴 길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행히 몇몇 고질적이고 불량한 사람들 빼고는 시일이 걸려도 갚으러 온다.
외상을 주면 돈도 떼일 수 있다는 감수해야 하고, 인심을 잃을까 전전긍긍하며 결국 줄 수밖에 없다. 외상을 안 주면 삐질 테고, 야박하다며 발길을 돌릴 것이다. 외상을 한 후 부득이하게 못 갚은 채로 시일이 흐르면 나중에는 미안하고 껄끄러워 가게 앞을 피해 다니는 사람도 있다.
미영이 엄마라는 머리 묶은 아줌마는 엊그제 길에서 마주쳤는데 고작 이백 원 달려놓은 외상 때문에 우리 가게에 안 오고 다른 가게에 들어가는 것을 봤다. 다시 오는 날 기어이 회수할 참이다.
일부 사람들이 고의든 아니든 안 갚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왕 외상 하는 김에 뚱땡이 어묵도 주소!”하고 갖고 갔는데 얼굴이 가물가물하다. 얼굴의 특징으로 기억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한근 엄마’라고 가르쳐 주고 가서 불러준 대로 믿고 적어놓은 것이 실수라면 실수다.
자기 아들의 이름까지 외상 명단에 올려놓고 다시 올 줄 모르는 그 아줌마. 이제는 받기 어려울 정도로 시일이 지나버렸지만 언젠가 또다시 자기 아들의 이름을 팔아 외상 명단에 올려놓으려는 날을 위해 그 증거자료로 제시하려고 보관하고 있다.
한 아줌마는 잘 모르는 사람이라 외상을 안 주려고 했는데 다른 아줌마랑 얘기하는 중에 울 남편이 병원에 근무했을 때 치료받은 적이 있다는 말을 나누는 것을 보고 다음에 주라고 했는데 소식이 깡통이다.
친분을 쌓았던 단골한테 뒤통수를 맞았을 때의 후유증이 크다. 우리 가게와 같은 건물 원룸에 사는 사람 중 왕년에 원양어선 선장이었다는 사람이 있다. 한동안 알아서 잘 갚곤 해서 믿고 준 외상이 점점 늘어나 5만 원이 넘었는데 여수 갔다 와서 다 갚겠다고 차비까지 3만 원 빌려 가더니 소식이 깡통이다.
아마 여수에서 배 타고 가다가 거북이를 만나 용궁에 따라가 버렸거나, 헤엄 실력 자랑하느라 갔다 오는 데까지는 석삼년이 걸리는가 보다, 추측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