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 반달살기 일지 (3)

2025. 03. 09부터 2025. 03. 11까지

by 양양

<2025. 03. 09>


오늘은 그야말로 마켓데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볼트를타고 코코넛마켓 오픈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사람도 별로 없고, 가게들도 아직 다 오픈을 안 한 상태였다. 블로그에서는 분명 오픈 시간을 꼭 맞춰가라고 했던 것 같단 말이지. 이번에도 괜히 나 혼자 들떴었나 보다. 혼자 사진도 좀 찍고 이름 모를 코코넛 디저트와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그리고 찡짜이 마켓으로 이동했다. 원래는 택시를 타고갔어야 하는데, 갑자기 걸어갈 수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에 택시비도 아낄 겸 걷기 시작했다. 내가 왜 그랬을까? 가다 보니 갑자기 인도가 끊기고, 구글맵에는 웬 강을 건너가라고 나오는 게 아닌가. 정말 멘붕이었다. 어찌저찌 육교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을 찾아 무사히 도착하기는 했다. 제발 쓸데없는 짓 말고 얌전히 택시

타자.

생각보다 휑했던 코코넛 마켓
코코넛 디저트들
험난했던 찡짜이 마켓 가는 길

마켓 입성 전 궁금했던 로띠를 먹었다. 달달하니 맛있었다. 근데 이게 완전 오리지널 로띠는 아닌 것 같은데..진짜 로띠도 궁금하다!

크리스피 로띠

찡짜이마켓에서도 일단 먹는 것부터 시작했다. 한국의 부추전과 같이 보이는 음식과 코코넛 팥 부꾸미 (?)를 먹었다. 둘 다 꽤 맛있었다. 아침부터 너무 주전부리만 먹었더니 속이 느글느글거리긴 했지만.


커피 한 잔으로 잘 눌러주고 본격적인 마켓 구경을 시작했다. 배가 차서 그런지 그때부터는 소비욕이 마구 들끓었다. 거금을 주고, 고양이 피규어와 반지를 구입했다. 굿굿즈라는 스토어에도 귀여운 게 많기는 했지만, 가격대가 좀 있길래 과감히 포기했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돈 왕창 쓰기 참 좋은 곳이다.

활기가 넘치는 찡짜이 마켓
한국 돌아오니 생각이 많이 나더라. 맛있었다.
직접 내려주시는 커피. 줄이 꽤 길다.
지금도 책상 위에 고이 모시고 있다


마켓 구경을 마치고 숙소에서 잠시 쉬며 시원하게 샤워도 했다. 아침부터 너무 숨 가쁘게 돌아다녔어. 조금 이따가 치앙마이 최대 야시장 '선데이마켓'과 내가 반해버린 치앙마이의 아이돌 3D 밴드 공연을 보러 갈 거다!

숙소에서 쉴 때 가장 행복한 여자

늘어지는 몸을 간신히 일으켜 선데이마켓을 보러 나갔다. 새러데이 마켓보다 규모가 클 수 있을까 싶었는데, 크더라. 확실히 크더라. 가도 가도 끝이 안 난다. 파는 물건들은 거의 비슷한 느낌이라 살 만한 건 없었지만 치앙마이에서 지낸다면 한 번은 꼭 와봐야 할 곳 같다. 20바트 주고 꼬치도 사 먹었다. 그리고 오후 7시 30분이 좀 안되어서 미리 재즈바로 왔다. 이따 8시가 넘어가면, 분명 자리가 없을 테니까.


그런데 3D 밴드 공연이 시작하기 전, 첫 타임 밴드의 공연에 노스게이트에서 인상 깊게 보았던 드러머 분을 다시 뵙게 되었다. 물론 그분은 나의 얼굴조차 모르시겠지만, 괜시리 인연 같아 혼자 반가웠다. 이따 3D 밴드 공연도 더욱 기대된다. 몰랐는데, 나는 은근 재즈를 좋아하는 인간인가 보다. 아니, 그냥 모든 음악을 사랑하는 건가?

선데이 마켓의 풍경
역시 야시장은 길거리 음식
북적거리는 야시장
치앙마이는 음악을 즐기기 좋은 도시다.


<2025. 03. 10>


오늘은 올드타운을 떠나 님만해민 쪽으로 옮겨가는 날. 아침에 부지런히 짐을 챙겨 지역을 옮겼다. 아침으로는 <카오쏘이 매싸이>에서 카오소이 국수를 먹었다. 맛이 있기는 있었는데, 고수향이 좀 났다. 그리고 꽤 정신없이 먹었다. 사람도 많고 가게 자체가 분주한 편이다.


호텔 체크인 시간이 좀 남아서 <graph> 카페에 다시 방문했다. 이번에는 시그니처인 오렌지 커피를 시켜봤다. 보고 있던 넷플릭스 시리즈인 '레오파드'도 다 보고, 자문자답 다이어리도 쓰고, 책도 좀 읽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이 지역에는 빈티지 샵들이 좀 있길래 일단 'surtrict store'부터 가보았다. 너무나도 깔끔하고 예쁜 흰색 니트를 발견해서 구매할 수밖에 (?) 없었다. 슬슬 돌아가는 길 캐리어 무게가 걱정이다. 위탁 수하물도 신청하지 않고 왔는데 괜찮겠지?

카오소이 국수. 한 번쯤 먹어봐야 할 음식이다.
오렌지 커피는 새콤씁쓸한 맛.
카페에서 끄적거리는 시간은 늘 소중하다.
마음에 드는 옷이 참 많았던 빈티지샵.

2시 정각이 되어 세 번째 숙소에 체크인했다. 화이트 톤에 넓고 나쁘지는 않은데, 생각보단 좀 낙후된 듯하다. 그래도 3일 정도 묵으면 되니 잘 지내봐야지.

그래. 지내다보면 정 들겠지!


짐만 살짝 정리하고 나와서 'september sunshine vintage'와 'karbor vintage clothes shop'도 둘러보았다. 이 두 곳은 따로 살 만한 옷이 있지는 않았다. 아쉽다.

여행을 할 땐 그 나라의 빈티지샵을 꼭 들러본다.


가는 길에 매대에서 판매 중인 'cheva&chavee' 도넛을 만나서 바로 구매했다. 안 그래도 본점에 가는 길이었는데 이게 무슨 행운이람! 중독성 있고 담백 폭신한 도넛이었다. 맛있어...

별 거 없는 맛인 것 같지만 계~속 생각난다.


다음 코스는 '치윗치와 망고스티키 라이스 빙수'. 사실 나에게는 이미 한국에서 설빙으로 단련된 경험치가 있어서인지 아주 새로운 맛은 아니었는데, 아마 현지 분들에게 인기가 있는 듯하다. 어떠냐! 한국 빙수의 맛이! 우하하.

1인 1빙수는 필수지


부지런히 낭만을 구경하러 다녔다. 서점들도 많고, 편집샵도 보고. 확실히 님만 쪽이 좀 더 트렌디한 느낌은 있다. 원님만 쇼핑몰도 들렀는데, 안의 상점들보다는 쇼핑몰 야외 광장이 더 마음에 들었다. 광장이 탁 트여서 속이 뚫리는 느낌.

북스미스 서점
이름 모를 서점. 예뻤다.
광장을 보니 속이 탁 트여 한참을 머물렀다.


플레이웍스 편집샵을 들렀다가 나오는 길 횡단보도에서... 민정님과 또 마주쳤다.

*민정님: 올드타운에서 지낼 때

우연히 커피와 블루누들, 재즈바를 함께 가게 된 인연!


진짜 말도 안 돼. 이런 우연이 있다니. 게다가 mr. roti에서 산 로띠가 좀 남았다고 하셔서 덕분에 방문하지 않고도 먹어보고 싶던 오리지널 로띠를 한 입 얻어먹을 수 있었다. 만난 김에 같이 림핑 마트도 둘러보고 헤어졌다.

우연히 만나 마트를 쇼핑하러 가는 재미란!


헤어진 뒤에는 나 홀로 마야몰 4층에서 팟타이도 먹고, 열심히 돌아다녔다. 태국 현지인들이 일상을 즐기는 걸 보니 왠지 신기하게 느껴졌다. 영화 보고, 즉석 사진을 찍고. ㅋㅋ


그리고 마야몰은 옥상에서 내려다보는 풍경도 참 좋다. 일몰 때 한 번, 야경 한 번 보고 숙소로 향했다.

여행이 길어져서인지 슬슬 힘들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다. 그래도 3일 후면 돌아가야 하고 그땐 분명 지금이 그리울 테니 마음껏 즐기자 이 순간을.

여행할 수 있는 오늘 하루를!

그 유명한 마야몰 팟타이
마야몰 옥상은 일몰과 야경을 구경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2025. 03. 11>


오늘은 미리 신청해 둔 투어가 있는 날. 오전 9시 30분에 픽업 차량이 호텔 앞으로 도착했다.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가족들과 한국 여성 두 분이 함께 했다. 첫 코스는 '엘리핀 팜'. 그야말로 코끼리를 볼 수 있는 곳이다. 먹이를 주는데, 코끼리가 생각보다 더 저돌적이고 무슨 기계처럼 바나나를 받아먹어서 웃기고 신기했다. 베리 스무디 하나 시켜놓고 멍 때리다가 출발 시간이 다 되어서야 허겁지겁 코끼리를 열심히 관찰했다.


이렇게 가까이서 오~랫동안 코끼리를 본 적이 있었나? 새삼스럽게도 코끼리가 정말 '생명'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보통은 어떤 이미지나 캐릭터로만 접했기도 하고, 노래 가사 중에서는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 이래..'라는 가사도 있으니까. 그냥 하나의 대상으로만 취급했나. 내 앞에서 돌아다니고, 찬 물을 끼얹으며 더위를 식히는 코끼리들을 보니 생명의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저 코끼리들에게 삶이란 뭘까? 그저 본능에 충실할 뿐인 걸까?

어색하게 출발하는 차 안
엘리핀팜 카페
덜덜 떨며 먹이를 주는 나
코끼리는 생각보다 더 사랑스러운 동물이었다.


다음 코스는 'cypress lanes'. 크게 관광명소라기보다는 인생샷을 남기러 가는 곳이라고 한다. 나도 50바트를 내고 들어가 보려고 했는데, 아니 거슬러 줄 수 있는 잔돈이 없다고 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쿨하게 포기하고 주변 좀 어슬렁 거리다가 차에서 다른 분들을 기다렸다.

그냥 멀리서 눈으로만 보자


마지막 투어 코스는 '반캉왓 마을'. 마치 우리나라의 인사동처럼 예술가들이 모여 공예품들도 만들고, 팔기도 하는 곳이다. 나는 일단 먹어보고 싶었던 반노피를 파는 카페 < ob choei original homemade>로 갔다.

돌아다닐 시간이 부족할까 봐 허겁지겁 급하게 먹었는데도 정말 맛있었다. 티라미수 케이크와 바나나, 초콜릿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조금 더 음미할걸. 늘 마음이 급해 깊이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반캉왓에서는 살만한 것이 많지는 않았는데, 공간 자체가 예쁘고 낭만 있어서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날씨가 너무 더워 힘들기는 했지만.

꼭 꼭 먹어봐야 한다. 순식간에 행복해지는 맛
예술가들의 바이브가 가득한 반캉왓


모든 투어가 끝나고 땀에 잔뜩 절여져서 호텔에 도착했다. 재정비하고 한숨 돌린 다음, <klay cafe>로 브런치를 먹으러 왔다. 님만해민 쪽에는 이런 브런치 가게들이 많아서 좋다. 역시 사람은 어디에서 지내는지 환경이 중요한 걸까? 브런치 가게에서 커피와 브런치를 먹으니 조금 더 천천히 분위기를 느끼며 먹게 된다. 오랜만에 태국 음식이 아닌 빵과 베이컨 등을 먹으니 맛있게 느껴지기도 한다.

* 유튜브에 있는 '마음이 조급할 때 듣는 브금'을 틀고 생각을 정리해 본다! 추천합니다.

각 재료가 모두 맛나다


당연한 거지만, 이제 아빠가 주는 용돈이 절반으로 줄었다. 교통비와 휴대폰 요금을 내고 나면 어떻게 생활을 해야 할지, 내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길이 보이지 않아 실제적 무서움을 느끼고 있다. 앞으로 이렇게 궁핍한 삶을 살아갈 일만 남은 걸까? 다른 사람들처럼 반복되는 일상을 살며 가끔 떠나는 여행으로만 삶을 채우고 싶지는 않은데... 이제 내가 나를 책임져야 하는 만큼 고민의 무게도 무겁다. 뭐, 고민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겠지만.


중요한 건, 다시 한번 적어보지만 정신줄을 부여잡고 똑바로 살아야 한다는 것. 더 이상 불안한 마음, 깊은 우울에 빠져 있을 시간이 없다. 삶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살아가자. 어떤 인생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활동적으로, 건강하게 살아보고 싶다. 그리고.. 나는 내가 그렇게 살 수 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최근 본 블랙핑크 제니의 인터뷰도, 런던 베이글 창업자인 료도, 배우 김민하도. 헛으로 산 사람은 없었다. 모두 각자의 최선을 다해 길을 걸어왔다. 나의 내면을 많이 들여다보았으니 앞으로는 주어진 세계에서 겁먹지 않고 내가 하고자 하는 것들을 진심으로 해내자.

나는 여전히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맞아. 어쩌면 나는 조금 늦게 어른이 되었다는 생각도 들어. 좁은 울타리 안에서 편안하게 살았지. 내가 무언가를 회피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너무 오래 겁먹고 산 건 아닐까?

나가자. 세상 밖으로 나가자. 힘들고 무서워도!

고민을 잔뜩 안은 채로 한참 걷다가 만난 거리의 풍경들. 잊을 수 없는 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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