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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리 Apr 08. 2022

한스 아스퍼거 Hans Asperger

스티브 실버만 [뉴로트라이브]


한스 아스퍼거: 오스트리아 출신의 소아과 의사. 1990년 DSM-4에 추가된 '아스퍼거 증후군'의 기원이 된 인물이다. 한스 아스퍼거는 타인과의 접촉은 꺼리지만 특정 분야에 특출한 재능을 보이는 어린이들을 ‘꼬마 교수님’이라 부르며 이들을 관찰했다. 그리고 1944년 이 아이들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는데, 자폐 스펙트럼 아동에 대한 그의 태도는 현재 기준으로도 놀랄 만큼 깊은 통찰력을 보여준다.




[뉴로트라이브]는 스티브 실버만이 18세기부터 현재까지, 자폐에 대한 거의 모든 인물과 사건을 조사한 방대한 책이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라는 진단명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과 현재 진행 중인 신경다양성, 즉 자폐를 치료해야 할 병이 아닌 뉴로 트라이브로 인정하자는 운동까지 아우른다. 이 책은 대단히 흥미롭지만 다른 것보다 나를 사로잡은 건 바로 한스 아스퍼거, 80여 년 전 꼬마 교수님들을 진료하던 의사였다.

 

한스 아스퍼거는 1943년, ‘전혀 드물지 않은’ 포괄적인 스펙트럼이라는 개념을 가진 자폐성 정신병증에 관한 논문을 지도 교수 프란츠 함부르거에게 제출했고 이듬해 논문을 발표했다. 프란츠 함부르거는 나치에 충성을 맹세한 인물이었다. 안타깝게도 아스퍼거의 논문은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진다.


비슷한 시기인 1943년, 미국 소아정신과 전문의 레오 카너도 타인에게는 무관심하고 자기 세계에 갇힌 것처럼 보이는 11명의 어린이를 진료하며 이들에게 조기유아자폐증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레오 카너에 의하면 자폐증의 유병률은 대단히 드물었고 어린이에게만 나타났으며 주로 부적절한 양육 태도, 대부분 냉담한 엄마 때문에 발생한 비극적인 어린이 정신병이었다.


그러나 한스 아스퍼거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개념도 제대로 존재하지 않았던 때, 남다른 통찰력으로 아이들을 바라본 인물이었다. 아스퍼거는 냉정한 관찰자가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놀고 이야기하며 이들의 내면을 탐색했다. 그는 자폐 어린이들이 가진 독특한 소질과 기술, 태도, 능력을 통틀어 자폐성 지능이라 일컬으며, 과학과 예술 분야에서 성공하려면 약간 자폐증적인 성향이 반드시 필요한 것 같다고도 말했다.


아스퍼거는 소년들이 과학에 천부적인 소질을 보이는 데 무척 놀랐다. (중략) 나아가 아스퍼거는 환자들이 노골적으로 권위를 무시하는 태도를 가진 것이 과학자들에게 필수 불가결한 회의주의로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중략) 이 위대한 소아과 의사는 자신이 연구하는 증후군에서 이들이 타고난 천부적 재능이 그들이 겪는 사회적 어려움만큼이나 중요한 본질이라고 결론지었다. 사물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성향을 타고났다는 바로 그 이유로 인해 혁신가가 될 잠재력이 있다고 확신한 것이다. p141


물론 그도 모든 자폐 어린이들이 뛰어나 재능을 타고난 건 아니라고 보았다. 다만 그는 장애로 인한 어려움에 맞설 수 있도록 개인적 자원을 확보하면서 타고난 재능을 십분 발휘하도록 맞춤형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스퍼거는 자신이 진료를 보던 아이들 중 교사의 특별 지도 아래 학교에서 퇴학당하지 않고 대학 입학시험을 통과한 뒤, 유명 대학의 천문학과 조교수로 된 일도 인지하고  있었다.


사실 한스 아스퍼거 또한 놀라운 재능을 타고났지만 별난 아이로 취급받으며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그는 천재 시인 프란츠 그릴파르처의 시를 끊임없이 읊어대며 친구들의 짜증을 사기도 했다.


자폐증의 예는 비정상적 성격을 가진 어린이라도 발달과 적응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매우 명백하게 보여준다. 그런 발달과정에서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회에 통합될 가능성도 있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자폐증뿐 아니라 다른 유형의 다루기 힘든 개인들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가 명백해진다. 또한 이런 사실을 안다면 우리는 존재의 온 힘을 다해 이 어린이들을 대변해야 할 의무와 권리를 갖게 된다. p147


한스 아스퍼거의 한계는 내부가 아닌 외부에 존재한다. 오스트리아가 나치의 지배하에 있던 1938년부터 1945년까지, 나치 부역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아스퍼거가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NSDAP)에 입당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정적으로 그는 우생학이라는 명목 아래 장애 아동들을 안락사시키는 데 관여했다. 최근에는 아스퍼거가 열정적으로 나치의 우생학 정책에 헌신했다는 주장도 나타났다.


한스 아스퍼거가 세상에 다시 등장한 시기는 1981년 영국 정신과 의사 로나 윙에 의해서였다. 그녀는 자폐 아동의 어머니였다. 로나 윙은 자폐증의 개념을 확장하여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생각해냈고 “아스퍼거 증후군의 모든 특징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정상적인 사람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라는 말로 자폐가 극히 희귀한 성향이 아님을 드러냈다. 게다가 이들은 체계화되고 포용적인 교육법에 의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범주형 모델을 채택한 데 따른 또 다른 예기치 않은 결과는 전 세계에 걸쳐 자폐증의 추정 유병률이 급격히 증가한 것으로 인해 걱정에 휩싸인 부모들의 반응이었다. 윙이 제시한 새로운 기준에 따라 진단받은 어린이 중 은둔형 노벨상 수상자, 사회적 기술이 부족한 할리우드 스타 또는 빌 게이츠의 뒤를 이를 만한 인재가 될 것처럼 보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p64


다만 자폐가 다양한 증상을 가진 스펙트럼 장애로 바뀌면서 자폐에 대한 불확실한 논란도 우후죽순 나타나기 시작했다. 예방 접종과 수은 등 중금속의 영향으로 자폐증이 발생한다던가, 단백질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것이 주요 원인으로 소위 GFCF 식이 요법(글루텐과 카제인을 완전히 제거한 식단)으로 자폐증을 치료할 수 있다던가, 심지어 고압 산소실이 치료 효과가 있다는 말까지 등장했다.


특히 자폐 아들을 둔 심리학자 버나드 림랜드는 자폐증 치료를 위해 자신의 삶 전체를 바쳤다. 버나드 림랜드는 자폐가 부적절한 양육 방식에서 나타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리는 긍정적인 역할도 했지만, 한편으로 치료에 매몰된 나머지 판단력을 잃기도 했다. 버나드 림랜드는 비타민을 다양으로 투여하는 방식이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언질을 주기도 했다. 특히 그는 심리학자 이바 로바스라와 함께 강화와 처벌을 반복하는 행동치료를 연구했다. 응용행동분석이란 불리는 이 치료방식은 현재 ABA로 발전했지만, 한때 이바 로바스는 행동을 교정하기 위해 혐오 자극을 사용한다. 혐오 자극이란 전기 충격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자폐증을 대하는 방식을 두 가지다. 하나는 완전한 치료법을 찾는 것과 다른 하나는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사회적 서비스에 집중하는 것. 버나드 림랜드와 이바 로바스는 전자에 전 생을 걸었지만 간호사이자 자폐 아이의 어머니인 라이스트 설리번은 아이들을 따뜻하게 받아들이고 포용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데 온 힘을 다했다. 이후 자폐에 관한 논의는 급속도로 발달했다. 여러 이름의 자폐인 권익을 위한 단체가 생겨났다. 자폐를 소재로 한 영화 [레인맨]도 등장했다. 이어 자폐인 당사자들이 스스로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신경 정상 증후군이란 사회적 관심사에 대한 집착, 우월하다는 망상, 관습에 따라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특징으로 하는 신경생물학적 질환이다. 완치 방법은 없다. p568


스스로를 신경 다양인이라 칭하는 이들은 신경 전형인들에 대해 냉소적인 정의를 남기도 했다. 지금껏 보통의 사람들이 자폐인을 향한 정의에 대한 반격이었다.


NT(Nuro Typical, 신경 전형성)는 뇌가 연결된 한 가지 형태일 뿐이다. 하이테크 분야에서 일한다면 아마도 그건 열등한 형태일 가능성이 높다. 신경 다양성은 생물학적 다양성이 생명체 전반에 미치는 중요성만큼이나 인류에게 너무나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특정한 순간, 어떤 형태의 뇌 연결이 최선일지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p584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이름은 시대에 따라 변했다. 유아 조현병에서 유아 자폐증, 상세 불명의 전반적 발달 장애(PDD-NOS), 아스퍼거 증후군과 자폐 스펙트럼 장애까지. 현재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지금까지의 자폐를 일컫는 명칭 중 가장 넓은 범주를 자랑한다. 진단이 포괄적으로 변하면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 진단의 수도 늘어가고 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자폐인 집단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소수자 집단으로, 미국의 자폐인 수는 대략 유대인 전체 인구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한다. 이제 1990년대 자폐증으로 진단받은 세대가 성인이 되어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이론이 아니라 이런 어린이들을 수없이 다루어본 경험으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소년의 긍정적인 자질과 부정적인 자질은 조화롭게 짜인 단일한 성격이며, 자연스럽고 반드시 필요하며, 상호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소년이 겪는 어려움, 특히 다른 사람은 물론 자기 자신과의 관계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들은 그가 지닌 특별한 재능에 대해 치러야 할 대가라고 말입니다. p171 한스 아스퍼거



한스 아스퍼거가 남긴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나는 그의 말에 위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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