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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리 Apr 22. 2022

루돌프 코는 정말 놀라운 코

written by 고윤주 

고윤주: 심리학 박사. 2006년 예일대 의대 김영신 교수와 함께 자폐 스펙트럼 장애 유병률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이 책은 지난 15년간 자신이 본 자폐 스펙트럼 아동들의 다양한 사례를 중심으로 자폐 스펙트럼의 특징은 물론 성인이 된 아이들의 예후까지 소개한다.




[루돌프 코는 정말 놀라운 코]는 ‘루돌프연구소’로 유명한 고윤주 소장이 쓴 책이다.


작가는 2005년 루돌프연구소를 설립하여 지금까지 약 3,000명이 넘는 아이들을 진단하고 치료했다. 자폐 스펙트럼이란 카테고리만 놓고 본다면, 국내에선 꽤 오랜 시간 자폐를 연구한 일인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루돌프연구소는 자폐적 성향이 아주 경미한 아이들조차도 자폐 스펙트럼이라고 진단을 내린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도대체 이곳에서 자폐가 아니라고 판정받는 아이가 있을까요?’라는 의문이 제기되는 식이다. 루돌프연구소에 대한 여러 소문처럼 이 책이 말하는 자폐 스펙트럼 범위는 생각보다 넓고 광범위하다.


작가에 따르면, 전문가인 자신의 눈으로   자폐 스펙트럼으로 의심되는 사람이 상당 수라고 밝혔다. 여기에는 의사도 있고 정치인도 있고 교수도 있었다. 오로지 심증만으로 정확하게 진단을 받지 않은 사람들을 자폐 스펙트럼 선상에 올려놓는 태도에서 오만함을 느끼기도 했다. 이런 예는  둘이 아니다.



공대 교수인 남편 주변에는 친구들을 포함해서 자폐적인 대학교수나 연구원들이 많다. (중략) 거기 모인 사람들의 행동과 대화가 자폐적인 경계를 넘나 든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P114
현재 우리나라는 물론 다른 나라들의 정치인들 중에 내 눈에는 자폐적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꽤 있다. 정치인으로 성공한 사람도 있고 성공하지 못한 사람도 있다. P142
소수이기는 하나 군대 생활을 좋아하고 실제로 직업 군인이 된 경우도 봤다. 연구 케이스로 루돌프 연수소에 온 한 아이는 아빠가 직업 군인이었다. 아이의 검사 결과를 보고하는 날 엄마와 아빠가 함께 왔다. 나는 한눈에 아빠가 자폐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P147
나는 자폐적인 셰프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기도 하지만 미식가들 중 자폐적인 사람들이 많을 것으로 추측한다. P157
지능이 높은 자폐적인 사람들은 전문직에 종사할 가능성이 높다.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잘해서 그 방면으로 진출해 두각을 나타내거나, 학업을 일찍 중단하고 특별한 일에 집착해 파고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거나 다른 취미를 함께 즐기기보다는 혼자서 많은 시간을 자기 분야에 몰두한다. 안 그래도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 어려운 자폐적인 사람들이 자기 세계에만 빠져 편협한 사람이 되기 쉽다. 내 주변에는 괴팍함을 뛰어넘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자폐적인 학자’들이 여럿 있다. P263
수영이는 여전히 정신과에서 약을 처방받고 있으며 상담을 받기도 한다. 최근에는 동네 정신과 병원에 다니는데, 의사 선생님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그 사람에게 약을 처방받고부터 수영이가 아주 편안해 보인다고 했다. 의사 이름을 듣고 나는 바로 이해했다. 내가 본 적이 있는 그 정신과 의사는 자폐적인 성향이 있는 의사다. 어쩌면 환자를 아주 잘 이해해서 정확하게 필요한 약을 처방하고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니 수영이 엄마도 수긍이 된다며 나와 함께 빙긋이 웃었다. P330


이런 부분은 작가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다. 물론 과도한 진단에 대한 장점도 분명 있을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상처받기 쉬운 자폐적 아이들에게 치료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사실에도 동의한다. 나는 진단이 이정표보다는 꼬리표가 되기 쉬운 현실에서, 자폐 진단은 대단히 신중하고 정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단을 했더라도 그 진단에 대해 전문가적 확신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도 루돌프 연구소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 진단을 과도하게 한다는 이야기도 듣고, ADHD 아이들도 자폐 스펙트럼 장애로 진단한다는 이야기도 듣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일반 학교에서 찾아낸 자폐적인 아이들은 일상생활에 문제가 없는 아이들이 아니었다. P324


자폐 스펙트럼 아동이 제대로 된 진단을 받지 못하고 ADHD 진단을 받은 뒤, 이에 맞춰 약물을 복용하고 부작용을 호소하는 사례도 분명 존재한다. 다만 ‘자폐 스펙트럼 진단을 얼마만큼 정확하게 내릴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가시지 않는다. 자폐 스펙트럼의 범위는 전문가마다 이견이 있다. 어떤 병원에서는 ADHD라 하고 어떤 병원에서는 자폐 스펙트럼이라고 한다. 물론 두 가지 다 갖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건 또 다른 문제다.


나를 포함하여 모두 6명의 연구자가 진단에 참여했다. 한국에서는 연세 세브란스 병원 천근아 교수와 내가 참여했고, 미국에서는 예일대학교 김영신 교수와 워싱턴대학교의 김수정 교수가 참여했다. 모든 아이에 대해 한국 연구자들과 미국 연구자들이 따로 진단을 한 후 양측의 결과를 비교해 같으면 진단을 확정했다. 다른 진단 결과가 나온 경우에는 증거들을 검증하며 진단 여부에 대해 양측이 동의할 때까지 논쟁했다. 이렇게 해서 나온 1차 진단 결과를 20년 이상 자폐 장애 어린이들을 진단하고 치료했던 경험을 가진 일리노이대학교의 레벤탈 교수와 맥길대학교의 폼본 교수가 2차 점검했다. P196


자폐 스펙트럼 장애 유병률을 공동으로 연구하하는 중, 작가는 자폐 진단을 위해 여러 사람 간 검증을 거쳤다고 썼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한 아이의 진단을 두고 이렇게 치열하게 검증을 거치는 곳은 국내에 존재하지 않는다. 전문의는 10-20분 아이를 보는 것만으로 자폐를 진단하기도 한다. 임상심리사를 통해 자폐증 진단 도구인 ADOS & ADI-R 검사를 하며 자폐를 진단하기도 하지만 이 역시 완전하지 않다. 자폐 평정 척도인 CARS도 마찬가지다.


나는  책을 읽으며 역으로 이런 질문을 던져 보았다. 자폐라는 말도 제대로 몰랐던 40-50  태어나 성장한 자폐적인 성인들은 아무런 치료도 받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에 자리를 잡았다. 여기에 우리가 엘리트라고 여기는 의사와 교수 등이 포함되어 있다. 만약 작가가 언급한 자폐적인 사람들이 정말 ‘자폐적이라면, 나는  사람들이 지금까지 이룬 성과에 박수를 보내는  맞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들이 사회적 관계에서 어느 정도의 미숙함을 보이는지 알지 못한다. 이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내게 중요한  아무런 개입 없이 지금의 위치에 자리한 이들의 노력이다. 단순히 지능이 높다고 의사나 교수, IT관련 전문가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이들은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눈초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향해 전진할 가능성이 높다. 나는 여기에서 희망을 본다.


작가도 언급하긴 했지만 나는 ‘자폐’라는 말을 정말 싫어한다. 이 말이 갖고 있는 의미도 그렇지만, 이 단어가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절망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자폐적이란 단어 말고 다른 단어를 사용하고 싶다. 사회적 관계에 대해서는 미흡하지만 자신의 관심사에 대해서 만큼은 그 누구보다 열정적인 사람들. 치열하게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들.


언젠가부터 연예인들이 상담 프로그램에 나와 정신적 문제를 토로하기 시작했다. 공황장애부터 시작해 양극성 장애와 경계선 인격 장애. 사람들은 이들에게 연민의 눈빛을 보낸다. 다만 자폐 스펙트럼은 다르다. 아동기에 많이 나타나는 ADHD,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에 대한 인식도 자폐 스펙트럼보다는 나은 편이다. 심지어 ADHD는 치료약이라도 있지만 자폐 스펙트럼은 불안이나 우울 증상을 개선시킬 약만 존재할 뿐, 치료약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상황이니 만큼 자폐 진단은 더 명확하고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한편 이런 생각도 든다. 이걸  치료해야 할까? 지금까지 아무런 개입 없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생각보다 많은 ‘자폐적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있다. 유병율로만 보면 100  2-3, 우리나라 5000 인구  100만에 가까운 숫자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지금   있는  무엇일까? 적어도 자폐 진단을 받은 아이들은 ABA, 언어 치료, 놀이 치료, 인지 치료, 감각통합치료, 플로어 타임  온갖 이름의 훈련을 한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상상도   없는 과정을 거친. 비자폐적인 사람들은  이상 이들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에게 필요한  어쩌면 포용일지도 모른다. 바로 서로 다름에 대한 이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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