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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리 Jun 17. 2022

네모난 못

written by 폴 콜린스 

폴 콜린스 Paul Collins : 미국 작가이자 편집자. 자폐 아들 모건의 이야기를 담는 이 책은 2006년 [네모난 못]으로 국내에서 번역 출판되었으나, 2019년 [틀렸다고는 할 수 없는]이란 제목으로 다시 출간되었다.





36개월 무렵 자폐 판정을 받은 작가의 아들 모건의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동시에 자폐로 의심되는 역사 속 인물들을 함께 들여다본다.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한 건 야생 소년. 내가 '늑대 소년'이란 이름으로 기억하는 이 소년은, 말 그대로 늑대 무리에서 자란, 마치 정글북 주인공 '모글리'와 비슷한 존재였다. 책에서나 볼 법한 실화하고는 거리가 먼. 그런데 약 200년 전 야생 소년이라 불리는 아이가 실제로 있었다고 한다. '피터'란 이름이 붙은 소년은 독일 하노버 지역 검은 숲에서 발견되었고, 영국 왕의 눈에 띄어 고향을 떠나 영국 런던으로 간다. 10대 초반 정도였던 소년에게 언어를 가르치려던 시도는 뚜렷한 성과를 남기지 못했고 그는 궁궐에서 농장, 지하감옥을 이리저리 오가다 생을 마감한다. 작가는 야생 소년이 역사적으로 오래전에 나타난 자폐증의 사례임을 알아간다.


야생 소년 외에도 자폐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뉴턴과 아인슈타인이 대표적이고, 수학자 파울 에르되시(헝가리 출신의 탁월한 수학자로 기이한 행동을 유명하다)와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캐나다 출생의 피아니스트로 바흐의 음악 연수로 유명하다)도 있다. 미국 팝아트의 대표주자인 앤디 워홀과 마이크로소프트 창립자 빌 게이츠도 있다. 빌 게이츠의 전기 작가 중 한 사람이 빌 게이츠에 대한 아스퍼거 증후군 가능성을 제시했는데, 사실 실리콘 밸리에 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소문도 무성하다.


만약 당신이 사람을 이해하는 척하긴 하지만 실제로는 이해하지 못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래서 당신은 머릿속에서 전부 예행연습을 해 본다. 노트에 정리하고, 사회적 행동을 모두 분석하고, 그걸 연결 지으려고 해 본다. 그렇게 해서 적절한 공식을 택하게 되면, 곧 적합한 행동 양식을 취하고 적당한 용어를 제때 사용하면 성공이다. 그러면 사람들 사이에 낄 수 있는 것이다. 삶 전체가 끝없는 튜링 테스트인 셈이다. 언제 사람들은 당신이 그들과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릴까?  


이 아이들은 어디로 갈 것인가? 알 수 없다. 자폐인은 스스로를 만들어 간다. 우리가 어떤 존재로 만들려고 아무리 애를 써 봤자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작가한테 자폐아 아들이 있는데 '정상' 학급에 들어간 뒤로 아주 불행해졌다. 누구나 다 그 아이가 다르다는 걸 알았다. 아이들은 그 아이를 놀리고, 괴롭히고, 따돌렸다. 작가는 결국 하는 수 없이 자기 아이를 자폐아 학교에 보냈다. 이제야, 아이는 처음으로 친구를 갖게 되었다.


남들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사회적 행동 양식을 습득하든, 아니면 자폐인들이 모인 세상에서 살아가든 두 형태의 삶 모두 완전해 보이진 않는다. 평범한 사람들 속에 살아가며 자폐인들은 자신의 다름을 수없이 인지하고, 자폐인 사회에 머물더라도 바깥세상에서 끊임없이 간섭을 받기 때문이다.


작가는 아들 모건이 남들과 다른 발달 과정을 밟고 있다는 의사 소견을 들은 이후 전문가들의 조언에 따라 언어 발달 수업을 듣는다. 작가는 여러 도구를 통해 모건과 의사소통을 시도한다. 단어가 적혀 있는 메모지를 활용하고, 엄마 또는 아빠라고 부르지 않는 모건을 위해 부부는 서로를 향해 엄마, 아빠라 칭하며 가르친다. 컴퓨터를 종료할 때 화면에 나오는 '정말 종료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를 보고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만든 뒤, 아이가 선택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사실 모건은 말을 할 수는 있다. 다만 그 말이 의사소통 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뿐이다. 모건에게 말하기란, 인상적인 문구나 노래 가사를 상황과 맞지 않게 반복적으로 소리 내는 것, 질문하는 사람의 말을 무조건 따라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모건은 자폐인에게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반향어를 그대로 보여준다. 모건이 가진 특징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모건이 뭔가 요구하기 위해 말 대신 아빠, 엄마의 손가락을 사용한 부분이다.


모건은 내 손가락 하나를 쥐고 그걸로 단어를 하나하나 짚으며 읽는다.


오래전 내 아이도 그랬다. 내 손가락을 잡고 소리 나는 장난감을 눌렀다. 내 손가락을 잡고 책을 읽으라고 했다. 뭐가 두려웠던 걸까? 손끝에 닿는 감촉이 싫었나? 아니면 자폐 관련 책에서 나온 그대로, 엄마의 손을 자신의 도구로 사용한 건가? 사람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에?


아들과 소통하기 위한 작가의 노력은 때로 눈물겹다. 그 노력에 부응하듯 모건은 아빠를 향해 드디어 "아빠!"라고 말한다. 이것이 그냥 우연인지 아니면 정말 아빠를 부르려는 시도인지 책에는 나와 있지 않다. 그럼에도 아마 작가는 전율을 느꼈을 것이다. 42개월 된 아이가 처음으로 자신을 향해 던진 '아빠'라는 단어에.  


사람들이 우릴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래도 괜찮다. 우린 서로를 이해하니까. 그리고 사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하고는 다르다. 이건 비극도 아니고, 슬픈 이야기도 아니고, 주말의 영화도 아니다. 그냥 우리 식구다.


작가는 모건을 네모난 못에 비유한다. 동그란 구멍에 맞게 들어가려면 네모란 못을 망치질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못이 망가진다는 것이다. 내가 늘 달고 다니는 고민이다. 억지로 둥근 구멍에 네모란 못을 욱여넣듯 아이를 사회에 적응하도록 만드는 게 옳은 일인가? 내 아이는 과연 행복할까?


모건이 처음 진단을 받았을 때,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은 오직 이것 한 가지뿐이었다. 어떻게 하면 고쳐줄 수 있을까? 어떻게 정상으로 만들 수 있을까? 그렇지만 '다시' 회복된다는 건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렇게 되기 '전'이 없기 때문이다. 모건은 처음부터 이런 아이인 것이다. 이게 보건의 본디 모습이다. 그런데도 나는 모건이 세상에 적응하기를, 모건이 다르다고 느끼지 않을 수 있기를 바랐다. (중략) 물론 그럴 수만 있다면 적응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적응하기만 한다면 살아가기가 훨씬 쉬울 테니 말이다. 그렇지만 만약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나는 항상 '아이가 적응하지 못한다면?' 같은 걱정을 안고 살아간다. 작가의 말처럼 다수에 속해야 안전하니까,  세상이란  그런 거니까. 아이에게 사회적 기술을 가르쳐 줘야 한다. 그리고 부모 노릇은 아마 평생 계속될 것이다. 슬퍼하지 않겠다. 포기하지 않겠다. 괜찮다.


자폐인은 생산과 독립에 대해 알게 된 뒤에도, 부모가 주입해 주어야 할 여러 복잡한 기능을 이해한 뒤에도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의 절반은 알아차리지 못한다. 자폐인은 이용당하기도 쉽고 스스로를 방치해 버리기도 하고, 아니면 사라져 버린다 할지라도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런 상태로 세상에 내보낼 수는 없다. 그래서 여러 세대가 계속 한 집에서 같이 살거나 아니면 이웃에 나란히 산다. 재능이 뛰어나지만 행동이 어색한 성인 자폐인은 우리가 아직도 부모의 집에 얹혀 산다고 괴상한 사람이라고 놀리는 바로 그런 사람들인 것이다.

 

자폐증은 능력이자 동시에 장애다. 무엇이 부족할 뿐 아니라 무엇이 풍부하기도 한 것이다. 인간을 인간이게 만드는 고유한 특성이 지나치게 많이 발현된 경우다. 동물 중에도 사회성이 있는 동물이 있지만, 추상적 추론을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인간뿐이다. 자폐인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데, 우리는 그 존재를 이해조차 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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