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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리 Jan 13. 2023

친구 지키기

여덟 살 아이의 겨울(2022.12-2023.02)



놓치지 않을 거예요.




어린이집에서 단짝처럼 놀던 친구가 있었다.


아이 인생 7년 중에 가장 좋아하는 친구였다. 지금도 같은 초등학교에 다니지만, 반이 달라 하굣길에서만 가끔 마주치는, 주중 며칠은 방과 후 수업 스케줄이 달라 한 달에 한두 번 마주칠까 말까 한 존재였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질 것 같은데, 아이는 잊을 만하면 이 친구의 이름을 말했다.


“너는 네 친구 중에 누가 제일 좋아?”
“OOO”
“걘 너희 반도 아니잖아. 잘 만나지도 못하고. 그런데 왜 좋아?”
“예전에 같이 놀던 기억이 마음속에 남아 있어서.”


언젠가 자폐 성향을 가진 아이들의 기억력이 특출하다는 글을 읽었다. 과거의 고통스럽던 기억이 너무 선명하게 다가와서 힘들 수 있다고. 이 글의 논지는 스트레스 내성에 관한 것이었는데, 내 아이는 기분 좋았던 한때를 이야기하고 있다. 아이에게 기분 좋은 추억을 가능한 많이 만들어 주고 싶다. 마음속에 남아 있다,라는 말이 지금 내 마음속에도 고스란히 남았다.


며칠 전, 거의 한 달 만에 이 친구를 만났다. 서로 부둥켜안은 모습에 나는 코끝이 시큰했다. 저리도 좋을까. 내 아이가 친구를 향해 말한다.


“내 베스트 프렌드야."


뜬금없는 말에 친구가 머뭇거리자 내가 거들었다.


“자기가 아는 친구 중에 일등으로 좋대.”
“너는 85%로 일등이야.”


재차 아이가 말했다. 가끔 좋아하는 친구에 대해 퍼센트로 설명하며 이야기 나누곤 했다. 이 친구는 85%, 저 친구는 60%. 사실 100% 좋아하는 친구는 없었다. 현재로선 85%가 최고점이다.


며칠 전 이 친구와 같이 집으로 돌아오는데 작은 사건이 터졌다. 눈이 내리는 중이었고 아이들은 눈장난하며 뒤따라 오고 있었다. 길가에 쌓인 눈을 손에 쥐고 서로를 향해 흩뿌리던 중 내 아이가 살짝 미끄러졌다. 여기서 아이의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너 때문에 넘어졌잖아. 이 녀석!”


곧장 달려가 안 다쳤으니까 괜찮다고 아이에게 말했다. 친구가 눈이 휘둥그레 뜬 채 가만히 서 있었다. 나는 그 친구를 데리고 앞으로 나아갔다. 아이는 살짝 울먹이며 가만히 서 있었다. 상황을 잘 모르는 친구의 할머니가 되려 친구를 나무라려고 하자 내가 제지했다.


“혼자 넘어져서 속상해서 그래요.”


아이는 구시렁대면서도 나를 따라왔다. 실제로도 눈 내리는 길을 걸었지만, 진짜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아이의 화가 어떻게 뻗을지 알 수 없었다. 함께 논 기억이 마음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친구를 잃어버리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나는 걸음을 재촉했다. 혹여 아이가 화를 낼까 아무 말하지 않았다.


다행히 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서로의 집까지 1-2분 정도 남은 상태였고, 아이는 친구와 할머니께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헤어지자마자 아이가 내게 말했다.


“친구에게 복수할 거야. 나를 넘어뜨리다니.”
“그 친구가 밀쳤니? “
"아니."
"그럼 그 친구 때문 아니야. 그냥 바닥이 미끄러워서 넘어진 거야."
"친구가 눈을 나한테 뿌렸잖아."
"너도 마찬가지잖아. 서로 장난치다가 우연히 그렇게 된 거잖아. 그건 친구 잘못이 아니야. 복수는 하지 않아도 돼. 복수를 하면 친구를 잃어버릴 거야."
"그럼 복수 안 할게. 미안하다고 사과할게."
"미안하다고 사과하지 않아도 돼. 대신 다음부터는 화내지 말고 친절하게 얘기해 줘. 미끄러져서 놀랐다고."


그럴 땐 놀랐다고 하는 거야,라고 재차 강조했다. 더 길게 말할 수 있었지만 말을 아꼈다. 어쩌면 앞의 말도 모두 군더더기일지 모르겠다. 단호하게, 전하고싶은 말만 깔끔하게!




그럴 땐 놀랐다고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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