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이리 Oct 28. 2022

다루기 힘든 아이 문제는 따로 있다

written by 마야구치 코지 

마야구치 코지: 의학박사, 정신신경의학과 전문의이자 임상심리사. 의료 소년원에서 근무하면서 인지 기능이 약한 아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 인지 기능 향상을 위한 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케이크를 자르지 못하는 아이들]을 읽었을 때에도 느꼈지만, 작가가 강조하는 부분은 인지 기능이다.


다루기 힘든 아이들은 인지 능력이 또래에 비해 부족하다. 기억, 언어, 이해, 주의, 지각, 추론, 판단과 같은 학습과 직결된 인지 능력뿐만이 아니다. 대인 관계를 하는 데도 인지 능력은 필수다. 상대방의 기분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감정 조절에 어려움을 겪으며 융통성이 없는 것과 같은 사회적 인지 기능의 부족은 대인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또한 손재주가 없고 단체 운동에 서툰, 신체 능력의 취약함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케이크를 자르지 못하는 아이들]이 다소 도발적인 내용을 담았다면, 후속작인 [다루기 힘든 아이들 문제는 따로 있다]는 실용적이며 구체적이다. 학습 인지 능력, 대인 관계 능력, 신체 능력 부족으로 구분하고 이 아이들의 특징을 설명한다.


학습 인지 능력이 취약한 아이들은 보고 이해하는 능력, 듣고 이해하는 능력, 상상하는 능력이 약하고 공부를 잘하지 못한다. 반복 학습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부주의한 행동도 많다. 대인 관계 능력이 취약한 아이들은 사람의 기분을 파악하지 못하고 금방 화를 내며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든다. 한 가지 일에 몰입하면 주위의 것을 헤아리지 못하고 돌발상황에 약하다. 신체 능력이 취약한 아이들은 손재주가 없고 단체 운동에 서툴며 힘을 조절하지 못해 물건을 잘 망가뜨린다.

 

학습 인지 능력과 대인 관계 능력, 신체 능력이 부족한 아이들은 학교 수업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해 지속적으로 주의를 받거나 친구들과 적절하게 어울리지 못해 따돌림을 당하기 쉽다. 신체 능력 또한 아이들에겐 중요한 요소라서 몸놀림이 서툴거나 운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 놀림을 당하기 일쑤다. 어린이들의 세상은 순수하기도 하지만 무자비한 면도 있어서 약자가 도태되는 정글의 법칙이 그대로 적용된다. 어른의 역할도 중요하나 기능면에서 두드러지게 떨어지지 않은, 그레이존에 해당하는 아이들은 어른의 도움도 받지 못한다.


이 같은 아이들이 잘 성장하려면 아이의 특징을 파악하고 아이에게 든든한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 아이들이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안심의 토대'를 제공하고, 무언가에 도전해보고 싶을 때 옆에서 지켜봐 주는 '반주자'의 존재가 되어야 한다. 반주자란 너무 밀착하지 않고 너무 거리를 두지 않은 상태에서 도전을 지켜봐 주는 존재다. 여기서 가장 어렵고 절실한 부분은 아마도 부모의 역할일 것이다. 어떤 상황이든 아이가 자존감을 잃지 않도록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고, 아이에게 도움이 필요할 시 적절히 개입해야 한다. 그런데 이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


안심의 토대를 만드는 3가지 포인트
아이로부터 신호를 잘 알아차리자. 아이의 상태를 잘 관찰하자. 아이로부터의 신호에 잘 대응하자.
부모의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나가는 아이를 보살피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훈육도 좀처럼 성과를 내지 못하지요. 그럴 때는 "아, 나도 너무 난감하고 힘들다. 하지만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아이에게 안심의 토대와 반주자가 되어주고 싶다!"라고 입 밖으로 꺼내어 말해보세요.


대인 관계 능력이 부족한 내 아이만 해도 이렇다. 상대방의 감정을 읽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을 적절히 조절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다른 사람의 기분을 살피고 자신의 기분을 말로 표현하라고 수십 번 친절하게 알려줘도 아이는 머리로만 이해할 뿐 실제로 일이 닥치면 곧 백지상태가 되어버린다. 구체적 상황을 제시하고 여러 번의 역할극도 시도하지만, 이런 훈련이 며칠 만에 드라마틱한 변화를 주지 못한다. 대인 관계에 대한 인지 트레이닝은 굉장히 고단하고 지루한 반복 학습이 필연적이다.


친절하게도 작가는 책 후반부에 학습 인지 능력과 대인 관계 능력, 신체 능력이 부족한 아이들을 위한 간략한 인지 트레이닝을 제공한다. 아쉽게도 대인 관계 능력에 대한 인지 트레이닝은 여덟 살 내 아이에게는 시기상조인 듯하다. 인지 능력 향상 트레이닝과 신체 능력 향상 트레이닝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낮은데, 대인 관계 능력 향상 트레이닝의 경우 아이 스스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성찰'이 필수적이다.


가령 자신이 살았던 시간 중에서 좋았던 점과 안 좋았던 점을 표기해 곡선을 만드는 작업은 아이가 아마 열 살 정도는 돼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1주일 후 자신에게 편지를 쓰고 1주일이 지난 시점에 다시 그 편지에 답장을 쓰고, 1주일 후 미래의 나에게 편지를 쓰는 작업도 비슷하다. 자기 감정을 100%에서 20%까지 수치화해서 표현하는 것은 현재 아이가 하고 있는 트레이닝과 비슷하고, 불쾌한 감정을 글자로 적어보는 행동은 일기를 쓰는 방식으로 전환해도 괜찮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인지 능력이 부족해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은 어느 정도로 많을까 궁금해진다. 일단 아이큐를 기준으로, 아이큐 70 미만은 세계 인구의 약 2%, 아이큐 70부터 84 정도의 그레이 존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세계 인구의 16%에 해당한다고 한다. 지능에 대한 문제를 갖고 있지 않으면서 대인 관계 능력만 떨어지는 자폐 스펙트럼까지 포함하면, 다루기 힘든 아이들의 범위는 아마 더 넓어질 것이다. 여기에 유병율 10% 에 달하는 ADHD까지 추가하면 어떨까? 여러 문제를 중복해서 갖고 있는 경우도 물론 존재하겠지만, 그레이존의 수치는 보수적으로 잡아도 20% 이상이다. 다섯 명 중 한 명 꼴로 다루기 힘든 아이들이다.  


누군가 현대의 정신의학은 모든 사람들이 고유의 정신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듯하다고 말했는데, 나도 이 의견에 일부 동의한다. 여러 기능에서 고루 발달한, 특별히 모나지도 않고 지극히 평균적인 사람들이 과연 이 세상에 얼마나 존재할까?


그레이 존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다른 말로 가능성이 충분한 사람들이라 말하고 싶다. 관심과 배려, 개인의 노력에 따라 우리의 선입관을 넘어설 만큼 성장할 수 있다는 의미다. 책을 읽는 중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여한 일본인 감독의 인터뷰를 읽었다. 사회적 약자인 노인에 대한 감독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의 멘트가 계속 내 머리에 맴돈다.




흑백 논리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이지만,
분명히 나눌 수 없는 회색 지대가 사실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케이크를 자르지 못하는 아이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