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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리 Nov 25. 2022

나는 사고뭉치였습니다

written by 토드 로즈 

토드 로즈 Todd Rose : 중학교 1학년 때 ADHD 진단을 받았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이곳저곳 전전하다 뒤늦게 대학에 진학, 하버드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지성, 두뇌, 교육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개인학 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나는 사고뭉치였습니다]는 ADHD로 진단받은 작가의 자전적 에세이로, 고등학교를 중퇴한 작가가 하버드 박사학위를 받기까지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담았다.


태어났을 때부터 한시도 가만있지 않은 말썽쟁이, 가는 곳마다 사건을 일으키던 악동, 친구 하나 없이 학교에서도 외톨이였던 작가는 결국 낮은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그만둔다. 이후 선반 정리나 전화 응대, 제품 판매 등 여러 직장을 구하지만 그 어떤 일이든 쉽게 실증을 느껴 한 곳에 오래 머물지 못한다.


십 대에 결혼, 아들까지 있던 작가의 인생은 그야말로 바닥이었다. 그러나 작가는 이런 경험을 통해 자신에게 훨씬 지적인 모험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대학에 진학하기로 마음먹는다.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학교 등록조차 우물쭈물하던 작가는 아내의 도움으로 등록도 마치고, 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가장 흥미를 끄는 강좌부터 수강하기 시작한다. 강좌에서는 자신을 믿어주는 멘토 선생님을 만나고, 그동안 중단했던 리탈린을 복용하면서  최우수 학생으로 대학교를 졸업한다. 여전히 실수를 저지르지만 자신의 실수와 잘못된 판단을 기록하는 노트를 활용하며 하버드 대학원에 진학해 드디어 박사 학위를 받는다.


작가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을 위해 실질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팁들도 제시한다. 그 무엇보다 자신을 믿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의 힘과(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긍정적 피드백 루프) 내가 가진 다름이 오히려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마음 가짐이 중요하다.


나쁜 시기가 닥치면 곧바로 무너지는 아이들과 그런 시기를 뚫고 금방 회복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반복적으로 발견되는 그것은 바로 부모 말고 아이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는 어른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다.


나는 우아한 목적지로 이어진 길로 들어서는 방법을 찾아냈고 지금은 가장 똑똑한 학자, 기업자들과 협업하며, 쉽지는 않지만 흥분되는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영광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는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 새로운 일련의 상황 속에서 사람들이 나를 인식하는 방식은 완전히 달라졌다. 고등학교 때 무례하다고 여겨지던 행동은 아이비리그라는 영토에서 재치로 여겨지고 권리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는 인습을 타파하는 통찰로 받아들여진다. 행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기질은 이제 창의성으로 해석된다.


또 하나, 작가가 낮은 성적 때문에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변변치 않은 일자리를 전전하다 하버드 대학원 박사학위에 도전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작가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끊임없이 배움을 갈구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말한 무엇보다도 부모님이 나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준 것은 교육의 가치를 중시하는 삶을 몸소 살아온 것이다. 이것은 사실 부모와 아이가 가장 긍정적인 관계를 맺고자 할 때 자주 등장하는 “부모의 모범은 말 보다 훨씬 효과적이다”라는 조언을 그대로 실천한 것이다.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라, 무엇을 하지 마라, 말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그 일을 나에게 대입했을 때 말처럼 쉽지 않음을 깨닫곤 한다. 항상 생각하고 말해라, 다른 친구에게 양보해라, 바르게 앉아라, 먼저 화내지 마라, 한 가지에 집중해라. 그런데 그중 단 하나라도 일관적으로 내가 모범을 보이는 일이 있었나?


물론 나는 어른이기 때문에 각가지 상황에 대해 좀 더 유연한, 세련된 대처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나는 실수를 저지르고 다른 이들을 화나게 한다. 내가 한 다짐도 지키기 힘들다. 가령 하루 30분 운동하기. 그게 얼마나 지키기 힘든 일인지 나는 잘 알고 있다. 스스로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실패의 가능성을 잊지 않을 수 있다. 내가 계속 노력한다면, 이 모습이 아이에게 실질적인 조언이 될 것이다.


작가는 이후 [평균의 함정]과 [다크호스]를 펴내며 평균이나 표준화가 아닌 개개인성을 강조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것이 바로 표준화된 개념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변형가능성이다. 배우고 행동하는 방식은 아이들마다 다르고, 표준화한 시험은 평균적인 학생들 외 대다수의 아이들을 소외시킨다. 개인의 특징을 고려한 접근법이 필요하다. 디지털 기술이 이를 가능하게 해 줄 것이다.


높은 수준의 인간관계를 맺는 기회 또한 학생들에게 없어서는 안 되고, 학생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개개인의 흥미를 반영하여 수업 내용을 설계하는 과정도 대단히 중요하다. 지금 우리나라 현실에선 불가능해 보이지만, 남다른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아이의 흥미와 관심을 충족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 아이의 가능성을 믿으면서.


작가의 글 중 마음에 와닿는 것이 많아 아래 발췌로 대신한다.


오늘날 전 세계 대다수 학교에 만연한 시대착오적 관습은 기계식 암기를 가장 우선시하는 19세기 초반 프러시아 교육제도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러한 강압적 학교 제도는 충성스럽고 순종하는 군인과 공장 노동자를 빠른 시간 안에 대량으로 찍어내기 위해 설계된 것이다. 개인의 잠재성이나 창의성을 키우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 획일성과 복종을 주입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중략) 오늘날 학교 제도에서는 학생의 80% 정도가 실패할 수밖에 없다. 물론 다른 아이들 대다수는 학교를 끝까지 다닌다. 하지만 단순히 살아남는 것이 우리 교육 제도에 대한 기대 수준으로 삼을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학습차이, 기질 등 인간의 특성은 타고난 것과 길러진 것 어느 한쪽 만에 결과라고 말할 수 없다. 두 가지가 복잡하게 작동한 결과다. 피그말리온 효과가 보여주듯이 결과는 다른 사람의 기대에 따라 극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 명심하라. 아이들의 잠재력을 스스로 제한하고 축소하는 딱지를 절대 붙여서는 안 된다. 다른 학습/행동 장애와 마찬가지로 ADHD는 상당히 모호한 진단이다. 그러한 진단은 독특한 장점과 약점을 이해하고 적절하게 지원하기 위한 출발점(해결점이 아니다)이라고 생각할 때 가장 도움이 된다.


내가 ADHD라는 의학적 딱지를 사용하는 것에 전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ADHD를 적절한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예컨대 아이에 대해서 의사들이 말하는 것과 말하지 않는 것을 모두 이해한다면 ADHD 진단 자체에 반대하지 않는다. 제대로만 활용한다면 그러한 진단은 유용한 기능을 할 수 있다. 뇌의 변형 가능성이 높은 시기에 아이를 가족들이 좀 더 신중하게 배려할 수 있게 해 주고 좀 더 이상적으로는 약점을 최소화하고 장점을 최대화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진단 딱지는 또한 유용한 자원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연결해 줄 수 있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주어진 환경에서 아이가 어긋난 행동을 하면 무수한 부모, 교사, 의사가 무조건 장애라는 딱지를 붙여버리는 현실이다. 지금은 문제아라고 해도 그 아이가 좀 더 나은 학교에서는 아무 문제없이 행동한다면 그 아이들에게 결핍이나 장애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이 과연 정당할까?


 

나비의 날갯짓을 기억하라.
아이가 오늘 살면서 경험한 작은 변화가 엄청난 차이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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