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느려도 성장한다
written by 도조 겐이치
도조 겐이치 : 자폐 진단을 받은 딸을 키우며 이 책을 썼다. 책의 상당 부분이 ABA(응용행동분석)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자폐 진단을 받은 사람뿐만 아니라 평균적인 사람에게도 유용한, 응용행동분석을 기반으로 한 과학적 학습법을 소개한다.
프롤로그가 범상치 않았다.
자폐 진단을 받은 자신의 딸을 보며 엑소시스트의 귀신 들린 소녀를 떠올린 작가의 표현은 강렬하다 못해 충격적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뭐가 그토록 힘들었을까. [아이는 느려도 성장한다]는 자폐 진단을 받은 딸의 이야기인 동시에 지독한 가난에서 탈출한 뒤,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탄탄대로를 걷다 딸이 태어나면서 인생이 바뀐 작가의 이야기다.
극단적인 까치발로 걸어다니고 위험을 전혀 감지 하지 못한 채 무작정 앞으로만 뛰는, 손을 잡으려고 해도 야수처럼 거칠게 저항하는 아이를 위해, 약 3년간 최대 주 40시간 ABA 집중 치료를 시작한다. 다섯 명의 대학원생으로 구성된 한 팀이 번갈아 작가의 집을 방문하면서, 작가의 집은 곧 ABA 훈련을 받는 공간이 되고 작가는 매일같이 연구원들의 수업을 지켜본다. 치료비만 해도 매달 350만 원에서 500만 원에 달하는 엄청난 과정.
작가는 ABA 훈련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여러 과학적 이론과 심리적 용어에 낯선 우리들에게 ABA 훈련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기도 한다. 강조하는 ABA 규칙은 세 가지다. 첫째, 지시는 간결하고 단호한 어조로. 둘째, 지시를 하는 동시에 직접 도움을 주어 실패를 경험하지 않도록 하되, 점차 도움을 줄여가면서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독려할 것. 셋째, 강화는 신속하게, 아무리 늦어도 60초 안으로.
작가는 이 같은 규칙이 평균적인 사람들에게도 효과적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가령, 바쁜 종업원에게 "실례지만 물 좀 한잔 가져다주실 수 있을까요?"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물 좀 주세요."라고 간단하게 말하는 게 적절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두 번째 규칙인 실패를 경험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비슷하다. 자전거를 탈 때 양쪽에 보조 바퀴를 달고, 다음은 한쪽 보조 바퀴를 떼고, 마지막엔 양쪽 보조바퀴를 다 제거하는 것처럼 자전거를 탈 수 있다는 성공 경험이 중요할 때도 있다. 즉각적인 강화도 물리적인 보상이 아니더라도, 상대의 눈을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미소를 짓는 것으로도 효과가 있다.
작가는 올인이라고 할 정도로 아이에게 헌신했다. 아이는 비로소 자신의 이름을 말할 수 있게 되었고 3천 개가 넘는 어휘를 습득했다. 그런데 그다음은... 어떻게 되었을까? 3년 간의 ABA 훈련을 마친 작가는 우울증 진단을 받은 뒤, 더 이상 회사에 나갈 수 없을 정도로 기력이 쇠한다. 아이의 치료비도 그렇지만 이전의 소비 습관을 고치지 못해 빚은 늘었고, 아이의 성장도 작가가 원하는 수준에까지 이르지 못했기 때믄이다.
딸아이의 지적 성장이 어느 정도까지 급성장하다가 멈춰버렸다는 것이다. 딸아이는 눈부실 정도로 발전했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보통 아이들 정도의 지능지수를 따라가지는 못했다.
'어째서 보통 아이들처럼 되지 못했을까? 응용행동분석을 일 년만 더 일찍 시작했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다시 희망을 찾는다. 무작정 아이를 데리고 돌고래 여행을 하던 중, 자신의 얼굴이 사람들을 편하게 하는 인상으로 바뀌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지난 3년 간, 아이와 시간을 보내면서 얻은 커다란 수확이었다. 대출받은 돈은 더 이상 갚을 길이 없고, 직장도 다니지 않으며, 이제 막 우울증의 나락에서 간신히 벗어났지만, 작가는 아이를 위해 ABA 훈련을 하며 자기 자신도 함께 훈련을 해왔음을 깨닫는다. 그 결과는 바로 사람 좋은, 웃는 얼굴이었다.
돈도 일도 에너지도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모두 잃었다고 생각했는데 딸아이한테서 웃는 얼굴이라는 최고의 선물을 받았음을 지금 이 순간 깨달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