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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리 Mar 17. 2023

나는 자폐 아들을 둔 뇌과학자입니다

written by 로렌츠 바그너 

헨리 마크람 Henry Markram :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학교 EPFL 신경과학과 교수. 자폐 진단을 받은 아들 카이를 보며 자폐 연구에 매달린다. 지금까지 이론과는 반대로, 자폐 스펙트럼 아이들은 감정을 느끼는데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너무 강렬한 감정을 느끼기 때문에 움츠려드는 것임을 증명한다. 헨리 마크람의 일대기를 독일 저널리스트이자 전기작가 로렌츠 바그너 Lorenz Wagner가 정리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나는 생후 13개월까지 완모했다. 친정 엄마는 그게 내가 한 일 중 가장 기특한 일이라고 말했다. 


모유 수유를 할 당시 나는 최대한 빨리 단유를 하고 싶었다. 내 속의 온갖 불안과 짜증과 우울과 스트레스가 농축된 모유를 먹이는 게 싫었다. 돌 이전 아이는 까칠했고 나는 그보다 몇 배로 더 까칠했다. [나는 자폐아들을 둔 뇌과학자입니다]를 읽으며 오래전 나를 떠올렸다. 너무도 민감한 아이에게, 내가 너무나 민감한 자극을 주었구나. 어쩌면 아이는 내 안의 온갖 불안을 눈치챘는지도 모르겠다. 초보 엄마의 서툰 손길과 요동치는 심장박동 소리까지도.   


풍부한 감정은 오히려 자폐인에게 감정이 결핍된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특히 세 개의 뇌 영역이 이와 관련돼 있다. 전두엽, 신피질, 그리고 편도체. 자폐증은 개개인에 따라 전두엽에 더 깊게 자리 잡을 수도 있고 대뇌피질과 더 강하게 연관돼 있을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세포들이 특히나 격렬하게 발화하고 어떤 사람은 조금 더 강할 뿐이기도 하다. 자폐증에 관한 최초의 포괄적 설명에 따르면 완전히 움츠러든 아이들의 뇌가 가장 성능이 좋다. 이는 무척이나 슬픈 일이다. 가장 많이 느끼는 아이들이 가장 적게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P196


헨리 마크람은 자폐 스펙트럼 아이들이 힘든 이유는 결핍이 아니라, 오히려 과잉이라고 지적한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바로 '초가소성'. 자폐인의 뇌는 자신을 위협할 것처럼 느껴지는 여러 자극을 차단하기 위해 뇌의 스위치를 끈다. 우리 세상을 둘러싸고 있는 수천 가지의 자극들. 사람들 말소리, 발소리, 자동차 소리, 강아지 짖는 소리. 소리만 그런 건 아닐 거다. 온갖 종류의 향수 냄새와 사람마다 다른 고유의 냄새, 부드러운 스웨터와 빳빳하게 다린 셔츠, 눈을 찌를 듯 밝은 형광등과 은은한 달빛. 좋든 싫든 세상에는 온갖 자극이 넘쳐대고 아이는 그것을 모두에게, 아니면 특정적인 자극 한 두 가지에 신경을 곤두 세운다. 아이는 귀를 막는다.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소리를 지른다. 발악을 한다. 그리고 부서진다.


헨리 마크람이 주장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혁명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나는 예민하고 민감한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그의 말에 대부분 긍정한다. 정리하자면... 


첫째, 자폐 스펙트럼 아이들은 한 번 더 여과된 세계에서 자라고 보호받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이 아이들을 놀라게 만들면 안 된다는 것. 무언가에 놀랐던 기억은 하나의 트라우마가 되어 아이들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둘째, 행동치료는 조심스럽게 진행해야 한다.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중단해야 한다. 행동치료의 목표는 아이가 자극에 익숙해지도록 만들어서 민감도를 낮추는 것이다. 
셋째, 약물은 뇌를 자극하지 말아야한다. 대신 진정시키고 성능을 제한하고 학습을 차단하고 망각을 촉진해야 한다. 
넷째, 자폐 스펙트럼 아이들이 하는 의례(의식)과 같은 행동을 그만두게 해서는 안된다. 의례(의식)은 아이들은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다섯째, 자폐 스펙트럼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안정감과 편안함, 따뜻함이다. 안아줘야 하고 공감해 줘야 하고 곁에서 지지해 주어야 한다. 


돌 무렵까지 이동의 삶이었다. 남쪽 해안 도시에서 친정 집으로 이동하는 삶. 아이가 백일을 맞고부터는 거의 3개월 단위로 움직였다. 15개월 즈음 오랜 명절을 친정에서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남쪽 도시의 삶에 적응하려고 했다. 그즈음 아이가 남들과 다르다는 걸 알았다. 아주 명징하게.


나는 도대체 너에게 어떤 자극을 주었을까? 예민한 아이를 데리고 대여섯 시간 되는 거리를 부지런히도 다녔다. 그나마 다행인 건 친정 엄마. 몸을 뒤로 젖히며 자지러 지게 울던 아이는 이상하게 친정 엄마가 안으면 울지 않았다. 아이에게 할머니는 편안한 안식처 같은 곳. 모든 자극이 멈춰 있는, 가장 편안한 곳.


헨리 마크람의 주장이 담긴 논문은 처음에는 환영받지 못했다. 그러나 점차 자폐 스펙트럼 아이들의 초감수성 및 예측가능한 세상에 향한 갈망을 담은 연구가 진행되었고, 과도한 뇌 활성화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말은 그 자체로 힘을 가진다. 모든 걸 떠나서, 자폐증은 결함이 아니라는 사실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오히려 자폐증은 초감수성, 과도한 뇌 활성화, 과잉과 맞닿아 있다. 어떤 면에서 자폐는 천재와 많은 부분을 공유한다. 놀라운 기억력과 세부적인 것에 대한 무서울 정도의 지각력, 그리고 그치지 않는 열정.  


인간은 살아 있는 구조물이다. 그리고 천천히 변화한다. 이를 위해 인간은 전체 구조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끄는 내부의 개혁가, 즉 스파이를 요구한다. 이 개혁가에게는 듣기에 거슬리는 학문적 명칭이 있다. 바로 돌연변이다. 돌연변이는 스스로 변화하며, 정상과는 다르다. 그래서 시스템에 문제를 일으킨다. 들어맞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생존을 보장한다. 돌연변이는 대안이며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스파이다. 진화 과정에서 돌연변이는 거의 살아남지 못한다. 그러나 그중 몇몇은 새롭고 더 나은 길을 보여준다. 구조물을 더 강하게 만들고 계속 발전시킨다. 돌연변이가 없었다면 깃털과 물갈퀴도, 직립보행도, 정신적 활동도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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