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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리 May 12. 2023

증상이 아니라 독특함입니다

written by 토마스 암스트롱 




평소 피하고 싶은 용어가 많았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 대신 자폐 스펙트럼이나 자폐적 성향이라 말하고 싶었고, 증상이란 단어 대신 특징이라 고쳐 쓰고 싶었다. 비슷한 이유로 치료 대신 훈련이라 생각했다. 이유는 명확하다. 자폐가 고쳐야 할 질병이라는 전제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자폐가 질병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다시 고쳐 써야겠다. 자폐가 장애가 될 수도 있고 축복이 될 수도 있다.

 
동성애는 과거 질병으로 분류되었다가 1987년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편람(DSM-III-R)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우리는 이제 동성애자를 동성애 장애라고 말하지 않는다. 물론 현실 속에서 이들이 받는 편견이나 차별이 사라진 건 아니다. 자폐 또한 아마 비슷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름은 대단히 중요하다. 자폐가 질병인가 아니면 신경다양성인가!


'부모와 교사를 위한 신경다양성 안내서'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자폐를 포함해 ADHD와 난독증, 기분장애(우울증과 조울증), 불안장애, 지적장애, 조현병까지 모두 일곱 가지 꼬리표가 가진, 강점과 재능을 탐구한다. 지금까지 뭔가 결핍되거나 부족한 상태로 간주했던 그 다름을, 전혀 다른 관점에서 잠재적 가치를 지닌 특징으로 바라보자는 의미다. 신경다양성은 생물이 모두 다르고 문화나 인종이 서로 다르듯 인간의 뇌 또한 다양하다는 데에서 출발한다. 책의 첫머리에 수록된 신경다양성의 여덟 가지 원칙을 요약해 봤다.


원치 1. 인간의 뇌는 기계가 아니라 생물학적 유기체다. 수백만 년의 진화를 거치면서 수천억 개의 뇌세포가 만들어졌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유기체 시스템 내에 조직되고 연결되어 있다. 뇌는 생태계처럼 변화에 대응하여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엄청난 능력을 갖고 있다.  


원칙 2. 인간은 역량의 연속선 위에 존재한다. 특정한 자질과 관련된 사람들 사이의 차이도, 연속선 위에 존재한다. 자폐 스펙트럼이기는 하지만 아스퍼거 증후군처럼 사회성이 좋은 개인이 있고, 연속선을 따라 이동하면 자폐 진단을 받을 정도는 아니지만 자신의 공동체에 섞이지 않으려고 하는 괴짜도 있다. 그다음에는 기질적으로 내성적이고 혼자 있기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 존재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정상적인 인간과 완전히 분리된 '무능의 섬'으로 동떨어져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모든 사람은 역량의 연속선 위에 존재하며 정상적인 행동도 연속선 위의 한 지점에 불과하다.


원칙 3. 인간의 역량은 자신이 속한 문화의 가치관에 의해 규정된다. 남들과 다르거나 비정상적인 아이들을 분류하고 딱지를 붙이는 가장 큰 이유는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함이고, 공동체는 사회적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어떤 행동이 비정상적인 기능을 보이는지 구분한다. ADHD는 집중을 방해하는 충동을 억제하고, 생선성을 위해 만족을 지연시키며, 부와 권력을 가지는 위치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회적 가치에 맞지 않는다.


원칙 4. 장애로 여겨질지 재능으로 여겨질지는 언제 어디서 태어났느냐에 좌우된다. 고대 문화에서는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조현병이 있는 사람들을 재능 있는 사람으로 여겼을 것이다. 정확한 의식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강박증이 필요할 수도 있다. ADHD 진단을 받은 사람이 수렵, 채집 생활을 하는 시대에 살았다면, 아마도 뛰어난 인재로 인정받았을 것이다. 현대의 학교는 읽기, 쓰기, 셈, 시험 보기, 규칙준수와 같은 능력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ADHD나 느린 학습자들은 배제된다.


원칙 5. 인생의 성공은 주변 환경의 요구에 자신의 뇌를 적응시키는 것에 기초한다. 우리는 현대를 살아가는 개인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고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규칙을 따르고 정해진 방식에 순응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약물도 고려할 수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신경다양성을 가진 사람들이 환경에 적응하는 것에서 나아가, 자신에게 맞는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원칙 6. 인생의 성공은 주변 환경을 자신의 고유한 뇌의 요구에 맞춰 수정하는 것(적소 구축)에 달려있다.
현대 사회는 대단히 복잡하다. 여기에서 자신에게 어울리는 환경을 찾고 스스로 만들어 간다면, 마치 거미가 거미줄을 치고 토끼가 구멍을 파듯,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적소를 구축할 수 있다면 인생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자폐인이 실리콘밸리로 직장을 옮기는 것도 적소 구축의 예이다. 이곳에서는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 작용하는 것보다는 기계나 컴퓨터에 대한 관심이 더 필요하다.


원칙 7. 적소 구축에는 신경다양성을 가진 개인의 특수한 요구에 맞는 직업 및 생활양식 선택, 보조공학, 인적 자원, 삶의 질을 높여주는 기타 전략이 포함된다. 부족한 점이 아니라, 자신의 강점이 환영받을 수 있는 직업을 찾아야 한다. ADHD는 고유한 강점을 살려 새로움, 변화, 신체 활동이 수반되는 직업을 고르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약점이 있다면 약점을 상쇄시킬 수 있는 보조공학 기기를 활용할 수 있고(난독증이 있는 사람이 휴대용 리더기를 사용하는 것처럼), 자신을 지원하고 도와줄 수 있는 코치나 치료사 등의 사람들을 주변에 두는 것도 중요하다.


신경다양성을 말하는 이 책은 존재만으로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사실 책을 읽기 전, 좀 억지스러운 면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신경다양성이라고는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의 아이가 신경다양성을 가진 아이가 되길 원하지는 않는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불편하기 때문이다. 어렵고 힘들기 때문이다. 살아남기 위해 개인이 해야 할 노력과 희생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들이 소수이기 때문이다.


특히 증상이 심각한 경우, 이를 질병이 아닌 다른 말로 부르기 애매한 경우도 분명 존재한다. 자동차에 몰입한 나머지 자신에게 어떤 위험이 닥칠지도 모르고, 달려오는 자동차를 향해 돌진하는 아이를 둔 부모에게 '괜찮다'라고 말할 수만은 없다. 그래도, 그래도, 이렇게 사람들은 서로 다르고, 그 다름이 세상에 필요한 특성이라고 바라봐주는 사람이 있어서 위로가 된다면, 그건 너무 낭만적인 생각일까?  


책에는 적소 구축이란 말이 자주 등장한다. 부족한 점을 최소화하고 자신이 가진 능력을 극대화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말하는데, 지금까지 아이의 변화에만 초점을 맞췄던 것에서 벗어나, 주변의 환경을 아이에게 맞게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그 방향성만큼은 소중하게 지켜주고 싶다.


정신질환의 '숨겨진 강점'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그 장애들로 인한 피해를 회피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게 사실은 장애가 아니라거나, 또는 어떻게든 그런 장애를 '차이'라고 부르면 고통이 모두 사라질 거라고 말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해도 고통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긍정적인 면에 집중할 때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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