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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리 Apr 21. 2023

아들의 답장을 기다리며

written by 채영숙





절판된 책이  20년 만에 다시 세상에 나왔다고 했다. 


자폐 관련 책 읽는 모임에서 절판된 책을 돌려보다가, 새로운 에피소드를 몇 가지 덧붙여 복간을 결정했다고 한다. 책을 보며 함께 눈물을 흘렸을 이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얼마나 많은 가슴을 쓸어내리게 했는지. 


1990년에 태어난 호민 씨는 이제 서른세 살 어른이 되었다. 이 책은 호민이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될 때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호민이는 30개월 무렵 유사 자폐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그때까지 엄마는 아이가 몇 달 치료를 받으면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호민이는 1년 늦게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특수반이 없는 일반 초등학교에 진학해 통합교육을 받았다. 특수반 운영이 원활하지 않았던 그때 당시 최선의 선택이었다. 호민이는 또래 아이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반대로 따돌림을 당하거나 괴롭힘도 겪으면서 초등학교 6년을 지냈다. 무사히 지냈다는 말은 아마 맞지 않을 것이다. 크고 작은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호민이는 자랐고 호민이의 엄마도 자랐다. 


호민이를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닌 작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학부모가 필요한 일에는 앞장서 참여하고, 반 아이들에게 일일이 편지도 보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학교에 가고 호민이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함께 했다. 새 학년이 시작하는 3월 2일에는 아예 복도에서 보초를 서기도 했다. 학년과 반은 물론 담임 선생님부터 친구들까지 모두 바뀌는 것을 호민이가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엄청난 용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작가의 인터뷰를 보며 마음을 고쳐 먹었다. 그건 당연함이었고 절실함이었다. 호기심 많은 호민이가 동네 문방구, 슈퍼마켓, 사진관까지 들락거리자 작가는 가게 주인들과 친해지는 길을 택했다. 동네 반장을 하며 동네 사람들에게 호민이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 주기도 했다. 학교 생활도 비슷했다. 반 아이들의 이름을 대부분 알고 있었고, 선생님과도 호민이에 대한 고민을 적극적으로 주고받았다. 


현재 호민 씨는 장애자립센터에 다닌다고 한다. 때때로 작업을 하며 돈도 받는다고 한다. 고등학교 무렵 첫 번째 발작을 시작으로 여러 번 뇌전증이 나타난 이후, 직업에 대한 생각을 버렸다고 했다. 호민이의 중학교, 고등학교 시기, 작가가 또 얼마나 파란만장한 일을 겪었는지 나는 감히 상상을 하지 못하겠다. 


자폐는 다양하다. 자폐 스펙트럼에 속하더라도 말을 못 하는 사람이 있고 말을 잘하는 사람이 있다. 홀로 자립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누가 더 가슴이 아픈지 논할 문제는 아니지만, 이 책을 읽으며 힘들다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이 정도는 아니잖아,라는 마음도 들었다. 정말 미안하게도, 그랬다.  


책을 읽으며 눈물을 훔치던 순간도 있었다. 그럼에도 작가의 슬픔, 체념, 외로움, 억울함 등을 나 또한 느낀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다. 호민이가 작가와 같은 단단한 엄마를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우리에게는 아직 올라야 할 산이 멀기만 하다. 산꼭대기를 올려다보면 언제 저 산을 다 오를까, 한숨이 날 때도 있다. 그러나 이때까지 그랬던 것처럼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한 걸음씩 걷다 보면 정상에 서서 '야호!' 크게 소리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그날에는 외양이 좀 부족해도 괜찮겠다. 우리의 인생 여정에 반드시 올라야 할 큰 산이 하나 있었고, 우리는 그 산을 부지런히 올랐을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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