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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리 May 26. 2023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written by 룰루 밀러




자폐가 전면에 등장하지는 않는다.


연결점을 꼽자면 작가의 큰언니가 자폐 성향을 갖고 있다는 사실 정도.


나의 상냥한 언니는 쉽게 불안해하고 사회적 신호를 잘 이해하지 못했으며,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손을 심하게 흔들어대고 속눈썹과 눈썹을 뽑고는 했다.


과학전문기자 룰루 밀러의 논픽션인 이 책은 우리가 믿고 있는 질서와 경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생명체를 구분하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지만 기실 구분자체가 불가한 것인지 모른다.(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아래 글은 보지 않는 게 좋겠다.)


룰루 밀러는 동성애자다. 자폐 진단을 받은 아이의 엄마로서, 소수의 위치에 있다는 점에서 가끔 동성애자를 떠올린다. 동성애는 정신장애 명단에서 사라졌지만, 그럼에도 차별은 여전하다. 하물며 자폐는? 스스로 묻지 않을 수 없다.


룰루 밀러가 탐구했던 실제 인물,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자연의 질서를 밝히고자 했다. 데이비드는 어류를 분류하고 이름을 붙이던 어류분류학자였다.  그의 열정은 숭고해 보였다. 어떤 고난에도 움츠리지 않는 사람. 집요할 정도로 매달리는 그의 고집을 보며 전율을 느끼기도 했다. 문제는 '분류'란 작업에 개인적 신념을 얹었다는 점이다. 생명을 분류하다 보면 그 안에 숭고한 질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란 신념이었다. 바로 그 믿음 때문에 그는 우생학자가 되었다.


생명에 대한 이런 시각에는 어떤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


신념은 어떤 면에서는 효과적이고 또 다른 면에서는 위험하다. 균형을 지켜야 한다. 정도를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과연 무엇이 균형이고 정도인지, 누가 설명할 수 있을까? 자기 계발서를 읽다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자신에 대한 믿음, 끝까지 밀고 나가는 투지. [그릿]은 아예 대놓고 이 점을 강조한다. IQ, 재능, 환경을 뛰어넘는 열정적 끈기의 힘, 그릿 Grit. 자기 계발서에서 그토록 강조하는 확고한 믿음은 전혀 다른 결과를 낳기도 한다. ‘지구에서 생물의 배열을 결정하는 자연선택의 힘이 존재한다’는 우생학적 신념을 끝까지 믿었던 데이비드처럼.


우생학은 1883년 프랜시스 골턴이란 영국의 과학자가 만든 단어다. 우월한 유전자와 열등한 유전자가 각기 존재하고, 유전자는 대를 거듭하며 이어지며, 우월한 유전자를 유지하고 확장하기 위해 열등한 유전자를 가진 인간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방법은 강제적 불임. 나치즘 시기에는 건강해 보이지 않거나 장애가 있는 사람들 - 부적합이란 이유만으로 - 을 한 곳에 가두고 조용히 제거했다.


공교롭게도 아스퍼거 증후군이란 이름을 남긴, 오스트리아 출신의 의사 한스 아스페르거도 우생학자다. 그는 나치의 우생학적 관점에 따라 살 가치가 있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를 구분했다. 아스페르거가 말한 꼬마 교수님들(이 단어도 그가 사용했는지 확실치 않다)은 특출한 재능으로 살아남았다. 그 외의 아이들은.... 자폐인에 대해 행해졌던 잔인하고 슬픈 역사다. 그렇다면 지금은 좀 나아졌을까?


책의 첫머리에 혼돈에 대한 설명이 등장한다.

엔트로피는 증가하기만 할 뿐, 우리가 무슨 짓을 해도 절대 줄어드는 일은 없다.

혼돈의 세계에서 경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름도 없고 범주도 없다. 우리는 이 세계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의심해야 한다. 나는 무지의 상태를 인정하는 것이야 말로 첫걸음이라 믿는다. 자폐의 경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스펙트럼이란 단어 그대로, 어디부터 자폐이고 어디부터 자폐가 아닌지 알 수 없다. 한 사람을 바라봐야만 한다. 오로지 한 사람. 그 누구도 아닌 독자적인 인간으로서.


질서는 자연에 질서 정연한 계급구조가 존재한다는 추정 – 인간이 지어낸 것, 겹쳐놓기, 추측 – 에 따른 것이었다. 나는 이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 계속 그것을 잡아당겨 그 질서의 짜임을 풀어내고, 그 밑에 갇혀 있는 생물들을 해방시키는 것이 우리가 인생을 걸고 해야 할 일이라고 믿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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