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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리 Sep 01. 2023

아스퍼거 증후군이 아닌 척하다

written by 리안 할러데이 윌리




문체에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장황한 문장과 끝없이 이어지는 단락, 낯선 단어도 많아서 처음에는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다. 글자를 읽어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고 허공에 흩어지는. 아스퍼거 증후군 진단을 받은 요코미치 마코토 작가의 “우리는 물속에 산다: 발달장애로 살아가는 일의 감각적 탐구”를 읽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참고로 이 책은 다 읽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문득 아스퍼거 증후군이 느끼는 이 세상도, 마치 내가 이들의 책을 읽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생각이 스친다. 한없이 낯선, 이들을 이해하기 위해 특별한 노력이 필요한.


이 글은 아스퍼거 증후군 딸을 키우며, 자신도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여성의 이야기다. 세 살 즈음 “영재와 외곬”이라는 진단을 들었고, 남들과 거리를 둔 채 상상 속의 친구를 사귀며 유년기를 보냈다. 십대 시절에는 나름대로 학교에 적응하고 소수의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며 지낸다. 물론 고립되어 있을 때도 많았지만 자신의 관심사를 탐구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대학교 진학 후, 고향을 떠나 낯선 땅에서 고통과 불편함을 느낀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 강사나 초등학교 교사로도 일하지만, 상황 파악이 늦고 자주 패닉 상태에 빠지며 감각적으로 예민한 부분에 대한 자기 인식을 비로소 시작한다.  


이 책은 친절하지 않다. 책은 유년기부터 십대, 대학교 시절과 졸업 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기까지 순서로 되어 있으나, 대부분 구체적인 서사 없이 자기 독백으로 채워져 있다. 작가는 자신을 지지해줄 가족을 포함해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신경학적 정상과 아스퍼거 증후군 사이에서 균형 잡힌, 인생의 한 시점을 찾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이 같은 균형을 찾기 위해, 자신이 버려야 했던 아스퍼거 증후군으로서의 특성을 애잔하게 바라본다. 아스퍼거 증후군이란 어쩌면 작가에게 독특한 창조를 선물할 수도 있는 가능성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강한 지지 시스템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내가 아무리 많이 말한다 해도, 그것은 지나치지 않다. 친구들과 가족은 지지해 주는 지지팀의 당연히 중요한 구성원이다. (중략) 아마도 남편이 내 곁에 있지 않았다면 난 지금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함께한 세월이 항상 쉬운 것은 아니었다. 결혼한 다른 모든 부부처럼, 특히 많은 결혼을 깨트릴 만큼 큰 문제가 하나 생길 때마다 우리는 우리의 문제를 같이 나누었다. 대화를 하는 것이다. P95


톰의 도움으로, 어린 시절 내가 속했다고 결코 믿을 수 없게끔, 자폐증 범주에서 지금의 평범한 나로 바뀔 수 있었다. 그가 나에게 보여 준 선의를 증명하자면, 그는 내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내게 말할 때면 고개를 끄덕이거나 미소를 짓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를 안전하게 느끼게 했다. 나를 이끌었다. (중략) 내가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에도 그는 결코 한 박자도 멈칫하지 않았다. 내가 시작하지 않는 한 그는 절대로 먼저 언급하지 않았다. 내가 길고 지루한 독백을 하는 동안에도 절대 말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의 관계를 위해서라며 나의 열정을 죽이기 위해 그것을 무기로 절대 사용하지 않았다. P111


아스퍼거 증후군인 사람에게 “아스퍼거가 아닌 척 삶을 살라”고 말하는 것은 잔인하다. 그런데 또 다른 면에서는 아스퍼거 증후군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특성을 그대로 드러내며 살아가지 않는다. 나 홀로 사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에, 타인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나를 버리고 타인을 의식하는 삶도 바람직하지 않다. 내가 이 책을 통해 찾은 건 균형 감각이다. 자신을 지키면서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삶.


균형의 핵심은 끝이 없다는 데 있다. 평균대 위에서 한번 균형을 잡았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평균대가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아스퍼거 증후군이 아닌 척하는 것이 아니라, 신경학적 정상과 아스퍼거 증후군 사이를 넘나들며 지속적으로 균형을 잡아야 한다. 아마 피곤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분명 수만 번의 갈등과 선택과 후회와 절망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매순간 그렇게 균형을 잡으며 살아가야지. 아스퍼거 증후군이 아닌 사람에게도, 삶이란 본래 그런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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