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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리 Feb 04. 2022

쥘리 다셰 Julie Dachez

제가 좀 별나긴 합니다만…

쥘리 다셰: 프랑스 출신의 사회 심리학자이자 자폐 권리 운동가. 성인이 되어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진단받은 뒤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심리학을 공부했다. 사람들이 알기 쉽도록 만화로 된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았는데 아스퍼거 증후군, 특히 여성으로서 겪는 아스퍼거 증후군에 대한 설명이 디테일하다. 아스퍼거 증후군은 남성과 여성의 비율이 4:1 정도로 알려져 있다.

쥘리 다셰 Ted 강연
https://www.ted.com/talks/julie_dachez_can_you_imagine_a_world_where_you_are_the_minority_jan_2018 




실제 인물이자 이 글을 쓴 주인공 마그리트는 스물일곱 살 평범한 직장인이다.


특정 시간에 같은 스타일의 옷을 입고 늘 똑같은 길을 걷고 동일한 메뉴로 아침을 먹는 점만 제외하면. 아! 또 있다. 다른 사람들이 내는 갖가지 소리에 스트레스를 받고 사람들이 하는 말의 속뜻을 잘 알아채지 못하며 때로 솔직하다 못해 다소 직설적인 말을 내뱉기도 한다. 오래도록 함께 지낸 남자 친구가 있긴 하지만, 사회적인 관계를 즐기는 남자 친구와 달리 홀로 있는 시간을 즐긴다. 자신과는 뭔가 다른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늘 괴리감을 느낀다. 뭔가 다름을 인지한 마그리트는 자신이 자폐증이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하고, 지능검사와 정신운동 검사, ADOS 검사(자폐증 진단 관찰 척도), 전문가 면담을 통해 자신이 아스퍼거 증후군에 속함을 깨닫는다.


아스퍼거 증후군이 맞았어.
결국 넌 자폐인이네.
축하하자!
그래, 너한테는 확실히 기쁜 소식이네...
당연하지! 내가 ‘비정상’인 건 지극히 정상이야. 멋지지 않아?



마그리트는 자신이 아스퍼거 증후군임을 알게 된 후 매우 기뻐한다. 심지어 남자 친구와 축배를 든다. 그녀는 아스퍼거 증후군이란 진단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다고 말한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홀로 스트레스를 받으며 자신을 숨겨야 했던 지난날에 대한 의문이 모두 해결됐기 때문이다. 이로서 마그리트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갖고 있다는 장애인 증명서를 발급받고, 회사에 그에 따른 업무 환경을 조정해 달라고 요구한다. 그 요구는 철저히 무시당하지만 그녀는 이로 인해 사회 심리학을 공부하고 ‘자폐’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에 대응하고 제대로 된 정보를 알리기 위해 블로그를 시작한다. 이 책은 바로 그 결과의 산물이다.





책을 읽으며 나는 자연스럽게 동성애자들을 떠올렸다.


'이성을 사랑한다'는 너무도 당연한 사회적 명제 아래, 동성에 대한 감정을 억눌러야 하는 사람들. 어떤 사람들은 ‘동성애’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당당히 커밍 아웃하기도 한다. 이후 이들은 상상할 수 없는 사회적 편견과 마주하겠지만.


자폐증을 인정하고 커밍 아웃하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사회적 편견과 차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다름을 즐겁게 밝히는 마그리트는 내게 놀라움 그 자체였다. 내가 만약 아스퍼거 증후군 진단을 받았다면, 그냥 조용히 정체를 숨기며 살아가는 것을 선택할 것이다. 그것이 고통스럽더라도 삶을 살아가면서 부딪혀야 할 냉랭한 시선을 견딜 자신이 나에겐 없다. 내 아이도 이 길을 걷기를 바란다. 철저하게 자신을 숨기는 마스크를 쓸 것. 결국 선택은 아이 몫이지만 아직까지 마스킹에 대한 내 생각은 변함이 없다.


마그리트의 용기 있는 선택은 응원하지만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힘든, 매우 소심하고 내성적인 사람이 ‘난 아스퍼거 증후군이니까 그런 거야’라고 말한다면 - 어쩌면 조금 더 노력해서 다른 이들과 함께 지낼 수 있음에도 - 아스퍼거 증후군이 하나의 도피처가 될까 우려스럽다. 어쩌면 내가 아스퍼거 증후군이가 아니기 때문에, 이들의 힘듦을 짐작조차 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한 번은 노력해 봤으면 좋겠다. 여러 사람과 함께 지내는 것에 즐거운 척할 필요는 없지만, 마음이 맞는 몇 명의 친구는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니까. 다른 이의 마음에 공감하는 게 더없이 어려운 일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함께 지내다 보면 다른 이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기적 같은 일도 일어나지 않을까?


이쯤에서 필요한 건, 나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다. 너와 나를 구분 짓지 않고 오로지 한 인간으로 바라보는 태도.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꼬리표 안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이 지금껏 밟아온 삶의 궤적을 찬찬히 살펴보는 따뜻한 시선. 그런 우아함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이 많아진다면....
이들도 자신을 숨길 필요가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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